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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지 Sep 13. 2024

쇼츠, 다시금 끊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끊은 줄 알았다.

한때 쇼츠 영상을 끊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 차려보니 출근길 지하철 내 손에는 쇼츠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것이 릴스인지 틱톡인지, 유튜브 쇼츠인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말이다.


나는 김포에 살았고 지금은 인천 1호선 근처에 산다. 매일 서울로 출근하려면 지옥이라 불리는 골드라인과 9호선, 붐비는 1호선 급행을 타곤 한다. 그 정신없고 사람이 빼곡한 출근 지하철은 견디기 참 힘든 곳이다. 많은 인파와 흔들리는 지하철, 앉아 있지 않다면 무언가 집중하기 여간 힘들다.


그래서 쇼츠를 켠다. 나는 매번 쇼츠를 보는 시간을 의미 없는 시간이라고 빗대어 ‘뇌 녹이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뇌 녹이기’는 출퇴근에 참 요긴하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든 버티게 해주니 말이다.


그럼에도 안다. 쇼츠가 삶에 혹은 나에게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 음악을 들어도 되고 롱폼 영상 속 다양한 유익한 혹은 재미난 것들을 보면 된다. 이제는 쇼츠를 보다 보니 10분짜리 영상도 빠르게 유익한 혹은 재미난 자극이 없다면 지루해진다.


반면 나는 사색을 좋아한다. 뜬금없이 어떤 것을 보거나 듣거나 맡고 나서 갑자기 든 생각에 빠져 상상이라는 이름의 사색을 즐겨한다. 그러나 사색은 하기 위해 조건이 맞아떨어지기 어렵다. 갑자기 어떤 영감이 떠오르거나 진득하게 무언가 고민하다가 연결되기에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사색을 즐기기란 어렵다.


(다른 이야기지만 이런 점에서 이어폰 없이 스마트폰도 보지 않고 출퇴근을 하는 와이프는 무서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물론 사람들은 종종 아무것도 하기 싫고 쉬고 싶다는 의미로 “아~ 침대에서 쇼츠나 보고 쉬고 싶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소위 말해 “빈둥거리고 싶다”로 해석된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허송세월 보내고 싶을 때 쇼츠는 나름 괜찮기도 하다.


아무튼 다양한 이유로 쇼츠를 즐긴 지가 오래됐다. 요즘에는 다시금 끊으려고 노력 중이다. 이유는 이러하다. 쇼츠를 출퇴근에만 보다가 점점 아무 때나 틈만 나면 버릇처럼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사례로 회사 사람들과 쇼츠 관련 이야기를 나누다 ‘아 나 쇼츠 끊었는데’라고 말하려는 찰나에 이미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정수기에서 물을 받는 찰나에, 회의실에 몇분 먼저 와서 기다릴 때 쇼츠를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때 스스로 보고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버릇이 됐구나 싶었다.


왜일까 가만히 생각해 봤다. 결론은 이랬다. 나는 잠깐의 지루함도 못 버티는 수준이 됐다. 쇼츠 때문에 지루함을 버티는 역치의 기준이 낮아진 이유다. 요즘 소위 말해 쇼츠는 도파민 중독이다. 지속적으로 자극적인 쇼츠를 보고 도파민이 뿜어져 나오니, 잠시의 지루한 순간을 못 버티는 것이다.


오늘부터는 다시금 쇼츠를 지워보려한다. ‘출퇴근에만 봐야지’라는 생각은 결국 생활 속으로 이어진다. 차라리 쇼츠를 끊었을 당시 스마트폰 속 다양한 활자들을 찾아다니던 그 시절로 돌아가야겠다. 생각보다 스마트폰은 좋은 책이니 말이다.


(오늘의 글은 '쇼츠를 끊은 줄 알았는 데 사실 아니었던 것'을 깨닫고 혼자 한심한 사색이 빠진 후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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