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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벋으훈 Mar 13. 2021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땐 라면을(2018)

2021년, 지금은?


2018년에 쓴 글,


어제 누군가를 울렸다. 화낼 일이 있었다. 그래도 그 정도까지 할 필욘 없었는데 5년동안 알고 지낸 사이라 그럴까. 21살 때로 돌아간 것 마냥 모진 말들이 입에서 마구잡이로 튀어나왔다. 망치로 두개골을 내려치는 것보다 뾰족한 바늘로 아킬레스건을 찌르는 게 더 타격이 크다는 걸 증명했다. 배려심이라곤 시험이 끝난 과목의 내용들처럼 깨끗이 지워버린 채 그의 급소를 후벼팠다. 그냥 누구라도 원망하고 싶은 일상이 하필 그 친구에게 짜증으로 표출됐다. 카톡탈퇴 할 시기가 점점 다가온다. 교회가서 회개하듯이 잠수를 타며 리셋할 필요가 느껴진다. 조모임만 끝나라.



대대적인 전환은 관계의 차단을 필요로 하지만 간단히 기분전환하고 싶을 때마다 하는 일은 조금 다르다. 바로 라면 끓여먹기! 일상에서 잠시 탈피한 후 돌아오면 이전보다 조금은 나아져있달까. 그래서 라면 끓여먹는 건 여행을 떠나는 것과도 마찬가지다. 여행은 내게 일탈로서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피부 때문도 있지만 군 복무 시절에 라면을 질리도록 먹은 이후로 라면을 웬만해선 먹지 않는다. (일본라멘 제외) 생라면도 하루에 두세개씩 먹기도 했다.(너구리 생라면이 다시마향이 베어있어서 젤 맛있다. 질감은 사천짜파게티.) 그리고 정도에 따라서 밥까지 말아먹는다. 면만 먹어도 배부르긴 하지만 밥을 꾸역꾸역 쑤셔 넣으며 몸을 혹사시킨다. 죄책감을 덜어내는 면책과정이다.


살면서 기분전환의 행위들이 바뀌어왔다. 제일 먼저 생겼던 방법은 양말을 사는 거였다. 소비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은데 돈은 없어서 고1때부터 양말을 엄청나게 샀다. 그래서 고1 때는 한 달동안 양말을 안 겹치게 신은 적도 있었다.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서 자리잡은 양말은 늘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느낌까지 선사해줬다. 그 이후엔 노래방, 술, 이모티콘 구매 등등이 잇따라 등장했다. 술이 한동안 주요 수단이었지만 피부 때문에 포기했다. 마음 아프군.


최근 들어선 기분이 별로일 땐 라면 먹는 것과 더불어서 이렇게 글을 쓴다. 나의 상태를 조목조목 짚어보기도 하고 해결가능한 부분인 건지, 가능하다면 어떤 방법으로? 물론 글로써 정리한다하더라도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순식간에 기분이 바뀌진 않는다. 다만, 통제하는 느낌이 불안을 덜어준달까. 내 우울한 기분을 기다려주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빨리 원상복귀해야하니까. 해야할 일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니까. 그 일들을 미룰 순 없어도 기분은 잠시 미뤄둘 수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읽을 이들에게 미안하지만 잠시 어제의 사건으로 비롯된 기분을 이 글에 담아둔다. 그 기분을 썰어서 라면과 함께 끓여 먹었다. 그래도 남은 감정의 찌꺼기를 이 글에 담아서 잠시 봉인.




2021.03.13


기분 전환을 위한 행위가 없다. 기분이 나쁘지도 좋지도 않아서 그런 일이 필요하지 않기도 하다. 글은 기획안 쓸 때나 끼적이고 생각 정리할 때는 공들이지 않는다. 17~18년도에 쓴 글을 가끔 꺼내보면 그때의 내 생각과 문체 그리고 표현은 지금의 것과 다르다. 훨씬 자유롭게 뛰어다닌다. 앞으론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그때의 글을 소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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