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의무와 책임을 몸에 새기는 이방인, 균열 공동체
휴가를 마무리 짓는데 웃음이 들리지 않았다. 들리지 않는 말이 어딘가에 살아있음을 느낀다. 들리지 않은 웃음을 만나려 했다. 언어화되지 않는/않은 것들의 언어화를 꿈꾸다가 마주하는 직관의 요구는 둘 중 하나를 덧없게 바라보라는 주문 같다. 만나지 못한 웃음이 사라질 거란 짐작은 억울함과 비슷하다. 그저 밉다. 좋다의 반대로 싫다가 아닌 밉다를 말하며 또 다른 밉다를 찾는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에 해야 할 것의 위치에 대해 생각했다. 결정과 선택이 아닌 의무와 책임을 몸에 새기기로 마음먹었다. 해야 할 것과 각인된 책임이 달라서 만들어낸 충돌의 파편을 주워 담았다. 그 조각으로, 흐릿해져 지워질 수 있는 흔적을 남겼다. 자발적으로 의무에 대해 적었다. 물러섬에 다가갔다. 다가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과 비슷하게 들렸다.
열려는 노력의 부자연스러운 전제가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닫힌 곳을 바라보며 열쇠가 없는 문이 떠올랐다. 손가락을 접다가 포기했다. 나는 손가락이 있고, 그것은 10개다. 열 개의 알파벳이 각 끝에 적혀 있다. 닫혀 있지 않다면 노력은 필요 없다. 손끝에 적힌 단어들이 손가락과 함께 움직인다. 노력이다.
닫힌 문을 열지 않고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노력 없는 대화에서 손가락의 움직임은 보다 자유롭다. 보이지 않는 그들이 말을 한다. 언어를 쓰지 않는 감각이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문을 경계로 보지 않는 이들의 감각이다.
알 수 없는 말을 기록하다 보면 알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알게 됨을 알다 보면 알게 됨을 알 수 없게 된다. 불가능성을 분리 짓는 (불)이 우습다. (무) 가능성, 가능성과 함께 불가능성 또한 사라지는 상상을 접는다. 어떤 것들을 우스운 불가능성에 넣는 상상을 편다.
무한히 반복됨이 하나의 값으로 달리는 이의 뒤를 쫓는다. 잠시 멈추되 머무르지 않는다. 추방된 이방인이 스스로 발을 떼기 시작한다. 그는 내쫓긴 바 없다. 이방인 옆에 이방인이 선다. 그 균열의 공동체는 잠시 멈추되 머무르지 않는다. 닫힘을 몰라서 열림도 감각할 수 없다. 닫힌 문을 열지 않고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