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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Jul 09. 2021

1500차? 더 이상 놀라지 않으리라

1500차 수요집회를 기다리며 할머니 말씀대로 우리의 마음은 지지 않는다

2021년 7월 14일이 1500차? 당황스러움에 잠시 생각이 멈췄다. 1000을 지나 500이 더해진 시간을 지나왔구나. 1000을 기념했던 그 시간을 떠올렸다. 2011년 12월 14일. 1000번째 수요 집회가 열린 날이다. 나는 그날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일본대사관 앞에 있었다.


1992년 1월 8일부터 매주 수요일이 쌓이고 쌓여 1은 1000으로 바뀌었고 1992년은 2011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1000번째 수요집회에는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 환호 속이든 야유 속이든 얼굴을 들이밀었고 수많은 인파 속에서 나는 우리반 학생들이 할머니에게 쓴 편지를 집회 관계자에게 겨우 전할 수 있었다. 1000번째 수요집회가 수많은 관심 속에서 치러져서 기뻤고 이제 1000이란 숫자는 곧 자가증식을 멈추리라 희망을 품었다. 곧 그렇게 되리라 낙관했다.

제1000차 수요시위, 평화상(서울=연합뉴스)

그러나 순진한 낙관은 좌절을 거듭했다. 이어지는 보수정권 기간 교육과정 개정에 따라, 초등 사회 교과서 현대사 내용은 조금씩 달라졌고 일제 강점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기술하는 분량은 줄어들고 표현하는 단어는 더욱 애매해졌다. 나에게 현대사 수업은 역사에 대한 기록과 기억을 이어나가는 투쟁이었다.


2015년 12월 박근혜 정권이 합의금 몇푼으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에 대한 기억과 투쟁을 능욕했을 때 내 마음과 같던 더 큰 우리가 수요집회를 지키고 주요 도시와 학교에서 소녀상 건립을 이어가는 흐름을 보았다.


위안부 평화비 소녀상[연합뉴스 자료사진]


사실 2001년만 해도 이길지 질지도 모르는 싸움을 10년째 하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그런 싸움엔 끼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싸움의 물결은 강해지고 있었고 어느샌가 나는 그 물결에 함께 몸을 싣고 있었다.


그리고 2019년. 우리학교 6학년은 현대사 수업이 마무리될 즈음 수요집회에 참여했다. 처음 현대사 프로젝트 수업을 설명할 때만 해도 일본대사관 앞에 간다니 일본까지 어떻게 가냐며 걱정하던 학생들은 식민지 국가에서 어린 여성이 어떤 착취를 당하며 살아남거나 죽었는지 알게 되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남은 이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이해했다. 그래서 할머니께 전해드릴 편지에는 "수요시위 우리가 계속 이어갈 거예요. 할머니 걱정 마세요"란 말로 가득 찼다.


수요집회 1500! 이제는 수요집회 숫자가 어디까지 흘러가든 놀라지 않으려 한다. 할머니들 건강하시라고 우리가 수요집회 이어가겠다고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던 우리반 학생들의 목소리가 내 마음에 남아있고 무엇보다 시간은 힘 있는 자들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투쟁하는 이들이 지배한다는걸 나는 수요집회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은 단단한 흐름으로 이어지고 숫자는 계속 늘어나겠지만 그만큼 기억하고 연대하고 투쟁하는 이가 늘어나리라 믿는다. 그래서 1500 수요집회를 지금까지 이어온 우리의 마음에 감사인사를 낸다. 할머니 말씀대로 우리의 마음은 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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