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 라이더를 2시간 기다린날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6시에 배민으로 저녁을 시켰는데 배민 고객센터에서 죄송하다는 말을 정신 못차리게 날리며 배달불가로 주문을 취소한 시간이 8시였다. 2시간을 기다리다가 영혼을 털린 우리 가족은 조리시간까지 20분만에 와주는 동네 중국집 덕에 저녁을 겨우 해결했고 밥을 다 먹고 배가 부르니 아까보다 더 많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배민 라이더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민망한 이유로.. "라는 말이 귀에 맴돌았다. 고객센터 상담원에게 라이더가 교통사고 난거 아니냐고 별 문제 없는거냐고 물어봤을때 돌아온 대답이었다. "네. 저희가 생각해도 너무 민망한 이유로 배달을 못해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100% 배민 라이더 과실입니다."
너무 민망한 이유가 뭘까? 내 짧은 상상력으로 몇가지를 떠올려보았다. 배달을 가는 도중 "아.. 왜 나는 금요일 저녁에 일을 해야할까?" 하며 갑자기 슬퍼져서 음식을 들고 집으로 가서 술한잔을 했을까?
배달을 가는 도중 갑자기 너무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들렀는데 그 사이에 음식이 사라져 애라 모르겠다 위치 수신기 끄고 어딘가로 사라졌을까?
배달을 가는 도중 길거리에서 나오는 노래에 헤어진 옛 연인이 생각나 전화를 해보았는데 "나도 너가 그리워"란 말에 바로 음식 바닥에 내 던져버리고 달려갔을까?
그렇게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순간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이 생각났다. 어쩌면 배민라이더는 소문이처럼 악귀를 잡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우리집에 오고 있는데 마침 악귀가 나타났고 무고한 시민의 생명을 구하고 사회정의를 구현하느라 배달을 못해준거지.
그러다 생각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나는 돈을 환불받았고 식당은 음식값을 받았을테니 배민라이더가 음식값 49,500원을 물어줬겠다 싶다. 그런데 대충 따져봐도 20번쯤은 음식을 배달해야 벌 수 있는 돈인데다가 내가 주문한 음식은 쌀국수였기 때문에 나중에 대워서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못되니 배달 사고 한번으로 배민라이더가 감당해야할 몫은 우리가 기다린 2시간보다 더 커보였다. 그러니 사고로 몸을 다친게 아닌 것만으로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서 나는 얼빠진 생각에 빠졌다. 그 배민라이더가 사실은 국내 50대 재벌 안에 드는 사람을 뒷배로 가졌고 남들보다 신체능력이 2~3배쯤 뛰어나고 악귀 소탕하는 능력을 가졌는데 신분을 속이기 위해 배민라이더를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이기를. 그래서 [경이로운 소문]이 아니라 [경이로운 배민라이더]였기를 말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판타지 드라마로 현실을 치환하려는 이유. 그렇다. 코로나로 멈춰버린 세상에서 부디 누구도 몸을 많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고 너무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무기력해서 땅속으로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고 약간의 활기를 어떻게든 유지하며 이 시간을 잘 살아냈으면 좋겠나보다. 나를 포함하여 말이다.
경이로운 소문이처럼 경이롭게 이 시간을 잘 견뎌내는 우리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