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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Jul 25. 2020

[결국은 부비부비]

외로움에 취약한 어른들에게 보내는 안부

언젠가 30대를 앞둔 제자들이 나에게 물었다. "결혼 꼭 해야하나요?" 대답을 망설이며 나는 생각했다. 딴건 솔직히 다 필요없는데 다정하게 체온을 나눌 사람이 있는건 참 좋은 것 같다.


아침 출근길 자고 있는 아들 머리맡에 앉아 머리카락을 쓸어주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부벼주며 좋은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할때 느껴지는 안정감과 따뜻함. 잠자리에 들기 전 나에게 다가와 잘자라며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가는 딸 덕에 오늘 하루도 무사했음을 감사하며 행복함을 느끼는 순간. 밖에서 너덜너덜 내상을 입고 돌아와 지쳐 쓰러져있으면 까슬까슬한 얼굴을 내 볼에 부비며 괜찮냐고 힘드냐고 물어봐주는 남편에게 폭풍수다를 떨며 두려움과 괴로움을 털어내는 순간. 그리고 한겨울 몸이 꽁꽁 얼어붙어 집에 들어왔을때  침대 속에서 만져주고 부벼주며 둘이 함께  36.5도가 되고 그러다가 띠리리 하다보면 36.5도가 확 넘어버려서 이불을 차내게 되는 순간. 그런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평생 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고 오히려 과하게 해서 이비인후과 진료를 필요로 하게 한다는 문제의 귀지 파기를 여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내 허벅다리에 머리통을 올려 놓고 귀를 잡아 당기며 달그락 달그락 귀지를 파는 행위. 사실 뭐 귀속 먼지를 청소하는게 목적이겠느냐. 그냥 약간의 긴장감과 위험함을 감수하며 만지고 부비면서 느끼는 친밀감이 전부 아니겠는가.  


그래서 가끔 왜 사람은 무리지어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해보면 그게 전부인것 같다. 서로 부비고 체온을 나누고 다정하고 따뜻하게 마음을 나누는게 건강한 생존에 있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사자에 관한 수업자료를 찾다가 보았다. 암사자는 자기 무리를 먹이기 위해 사냥을 하다가 결국 다른 사자 영토를 침범한다. 결국 그 사자 무리에게 심하게 공격당해 다리가 너덜거리는 치명상을 입고 무리로 돌아온다. 그런데 그 사자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다른 사자들과 목덜미를 부비며 체온을 나누고 새끼사자들을 핥으며 다정하게 애정을 표현하는 일이었다. 그러고 나서야 마지막에 자기 몸의 상처를 혀로 핥았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alther&logNo=221619818892에서 가지고 왔어요


이 영상을 보면서 나는 결심했다. 외로울땐 또는 상처받았을땐 고슴도치처럼 굴지 말아야겠다고. 내상을 입었을땐 집으로 돌아와 아무말 하지 않고 안아달라고 부탁하고 그렇게 위로 받고 회복해야겠다고. 상처가 너무 아파 고슴도치처럼 굴면 누구도 가시에 찔릴 것을 각오하면서 나를 안아주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자고.


그래서 제자들에게 조심조심 얘기했다. 살다보니 체온을 부드럽게 나누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 때가 있더라. 그럴때 따스하게 다정하게 체온을 나눌 사람을 만드는게 필요한데 합법적으로 가장 간단한 방법이 대한민국에서는 결혼인 것 같다. 그런데 결혼해서 막상 이런 관계를 만들지 못하면 사실 혼자 사는 것 보다 더 외로울 수 있으니 결국은 결혼을 하든 안하든 부비부비할 수 있는 편하면서 따뜻한 관계를 만드는게 숙제인 것 같다. 


몸이 너무 커버려 아무한테나 안기지도 못하고 안아달라고도 말할수 없는 외롭고 취약한 어른들에게 주어진 중요하고 어려운 숙제. 부비부비. 좋은 사람들과 마음으로든 몸으로든 부비부비 하며 시원하고 편안한 주말 되시길~~^^


https://youtu.be/UqKM0CjnnO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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