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팽이 Jan 12. 2022

빠다코코낫과 희망 한조각

출퇴근길 누군가의 뒷모습이 나에게 걸어오는 말 첫번째 이야기

인천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출퇴근길 가끔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깊게 빠져드는데 문득 글로 풀어내고 싶어졌습니다. 뒷모습이 나에게 걸어오는 말! 즐겨주세요



신길역 1호선에서 5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지나가야 하는 꽤나 길고 반듯한 통로. 나는 보통 아침 8시쯤 그곳을 지나 일터를 향한다. 그곳을 걸을 때마다 나는 감탄한다. 수많은 사람이 앞사람과 부딪히는 일 없이 같은 속도로 한 방향을 바라보며 어딘가를 향해 한치의 망설임 없이 걸어간다. 가끔 어떤 날은 등속 운동이 만들어내는 완벽한 질서를 깨뜨리고 싶은 심술이 치밀어 오른다. 그래서 아무나 붙잡아 도대체 표정 없는 그 얼굴로 어딜 그리도 열심히 가는 거냐고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그 질서를 깨뜨려본 적은 없다. 나 역시 그들과 똑같은 표정으로 등속 운동이 만들어내는 질서에 온전히 합류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나는 이 등속 운동을 완전히 무너뜨리며 자기 속도로 걷고 있는 이를 발견했다. 그는 다른 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인지 오른쪽 벽에 기대듯 붙어 서서 아주 천천히 걷고 있었다. 등속 운동에 동참하고 있던 나는 곧 그를 추월해서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볼 수 없게 될 것이 뻔했기에  서둘러 왼쪽 벽에 붙어서 그와 같은 속도로 걸었다.


그는 검은 정장에 흰 셔츠를 걸치고 있었다. 깡 마른 몸에 걸쳐져 있는 옷은 한없이 구깃거렸고 지저분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듯한 위태로움으로 한발 한발 쉬었다 걷기를 반복하며 그곳을 통과하고 있는 그의 손에는 까만색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그 까만색 비닐봉지에는 터질듯 무언가가 담겨 있었고 빠다코코낫과 칸초가 비닐 밖으로 얼굴을 삐죽이 내밀고 있었다. 아침시간 과자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저리도 지친 몸으로 그는 도대체 어딜 가고 있는 걸까? 길고 긴 신길역 환승통로를 포기하지 않고 걷고 있는 그는 누구에게 저 과자를 건네고 싶은 걸까? 그의 발걸음과 몸짓은 절망을 말하고 있지만 그의 손이 쥐고 있는 과자가 담긴 비닐봉지는 같은 무게로 희망을 말하고 있었다.


아침시간 좀비 때처럼  방향을 바라보며 돌진하는 출근 무리 속에서 절망과 희망 사이 어딘가를 갈팡질팡 비척거리며 걷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나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랑 여기 잠시 기대앉아서 얘기  나눌  있을까요?  당신 쥐고 있는 비닐에 담긴 희망이 궁금해서요. 저는 지금 희망이 너무 고프거든요. 저에게 조금만  희망 나눠주실  있을까요?" 


그렇게 우리 둘은 신길역 환승통로 어디즘 벽에 기댄 채 주저앉아 한참을 이야기 나눴다. 그는 나에게 지친 목소리로 힘겹게 희망을 나눠주었고 나는 그가 희망을 나눠준 값으로 어깨를 조금 내준 채 김광석의 "일어나"를 조용히 흥얼거렸다.


검은밤의 가운데 서 있어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하나 어디에 있을까

둘러봐도 소용없었지

인생이란 강물 위를 뜻 없이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어느 고요한 호숫가에 닿으면 물과 함께 썩어가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한번 해보는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그렇게 나는 출근 경로를 벗어나 낯선 이와 잠시 다른 차원으로 접속하는 상상 속에 빠져들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전철은 5호선 서대문역을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나는 도착했다. 까만색 비닐봉지에 삐죽이 튀어나온 빠다코코낫 마냥 너무나 간절해서 누구도 감히 찬물을 뿌리지 못할 어떤 희망을 간절히 품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1500차? 더 이상 놀라지 않으리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