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층이 소비를 지향하는 이유
불경기다, 불경기다 하는 말을 불경 읊듯이 하는데, 웬걸. 지난번 찾은 백화점 명품관엔 대기줄이 어마어마했다.
줄 서 있는 사람들을 쭉 스캔해 보니 대부분이 내 또래인 2-30대로 보였고, 몸에는 이미 명품을 지니고 있었다.
눈을 돌려 주위를 살펴보니 그들뿐만 아니라 백화점 안을 지나다니는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의 반 이상이 그랬다. 손목엔 명품 시계가, 손아귀엔 명품 백이 들려있었다.
그들은 대체 어떤 집안의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길래 저렇게 비싼 물건을 많이 가질 수 있는 걸까.
어마어마한 금수저인가. 아니면 뭐 다들 잘 나가는 사짜 직업이라도 되는가.
아니, 전부는 아닐 것이다. 왜냐면 이 이야기는 내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단 나. 나는 전혀 금수저가 아니다. 잘 나가는 의사 변호사도 아니고 그냥 월급쟁이 회사원이다.
그런 나 역시 명품이라고 불리는 브랜드의 가방이 한 개 두 개 세 개... 다섯 개나 있다!
개중 선물 받은 것들을 빼더라도 그 돈 모아서 적금이나 부었으면 아마 지금쯤 목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가방을 사 모았을까? 아마 이런 이유들이 있었던 것 같다.
요즘은 자기표현의 시대다. SNS라는 플랫폼을 통해 자신에 대한 많은 정보를 불특정 다수에게 공유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맘껏 뽐내고 과시할 수도 있으며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고 인기도가 높아진다. 마치 결점 없는 완벽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일수록 그렇다.
그런 SNS 계정에 들어가 보면 명품은 기본이요 비싼 차에 비싼 레스토랑, 해외여행 사진들로 피드가 꽉꽉 채워져 있는데, 보다 보면 왠지 모를 상대적 박탈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스스로가 초라해 보이고 인생이 재미없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왠지 나도 명품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고, 하나 가지니 두 개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고.
그러다 맛 들리는 거다. 사람들 시선과 대우도 사뭇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아, 역시 사람들은 보이는 걸로 평가해.'라는 생각이 자리 잡아 기왕이면 좀 더 뽐낼 수 있는 걸 찾게 된다.
처음엔 남들만큼만 갖자는 생각에서 비롯되지만 결국 비교대상은 더더욱 커진다. 어쨌든 남과 비교하며 사는 삶이 당연해진 현 세태에 동화되어 소비를 지향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 엄마, 아빠 때까지만 해도 월급 받아 착실히 저축하면 높은 이율로 돈을 불려 내 집 하나 장만할 수 있었고, 수도꼭지 하나만 만들어도 대박이 났다.
그렇지만 현세대를 살아가는 이삼십 대들은 그런 것들은 꿈도 꿀 수 없으며 직장에서 받는 월급을 모으기만 해서는 절대 서울에 내 집 갖기란 불가능하고, 설상가상으로 대출을 풀로 당겨(대출도 많이 안 해주니 이것도 선택받은 자.) 하나 장만했다 쳐도 평생을 대출금 갚는 신세로 살아가야 한다.
꼭 서울이 아니더라도 어디 외지 아니고서야 웬만한 수도권 집 값은 서울 변두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치솟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 터. 평범한 집안 자식으로 태어난 우리 세대들은 포기하는 것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그래서 N포세대라는 비참한 수식어까지 붙여졌으며(연애, 결혼, 출산, 주택구입...등등을 포기)
당장 이 백을 산다고, 이 차를 산다고 해서 미래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에 저축보단 소비를 지향하게 되는 것이다. 뛰어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혀 아예 넘기를 포기했다고 표현한다면 적절할까.
아무쪼록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명품이나 비싼 물건들의 소비를 지향하는 현실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닌,
이렇게 된 현실에 대해 논하고자 함이다.
그렇다, 우리는 힘든 시대에 살고 있는 게 확실하다.
지금 이삼십대의 소비는 사실 절망의 폭주이다.
그러니 기성세대들이 자신들이 살아온 삶만을 토대로 우리 세대에 손가락질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더 이상 세상이 제멋대로 우리에게 <포기하는 세대>, <욜로족> 따위의 수식어를 막 갖다 붙이지 못하게 하면 어떨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진실로 원할 때 소비하고,
집을 사지는 못할지언정 다른 나머지는 포기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저축하면서 살아간다면 어떨까?
그러기 위해선 여러 가지 해결되어야 할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겠지만, 그래도 우리 나름대로 주체적이며 건설적인 삶을 살다 보면 상황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함께 고민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