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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다빈 Dec 31. 2019

방황하는 어른이라도 괜찮아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가뿐하던 어깨에 삶의 무게가 10kg 정도 실린 느낌이야."

"퇴사? 너무 위험해. 밖은 더 전쟁터일걸. 그리고 이 나이에 또 어딜 가겠어."

"야. 꿈은 무슨,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어떻게 살아."

"철 좀 들어라, 철 좀."


"이게 정말 우리가 원하던 삶이야? 이렇게 살기 위해 살아왔단 말이야?"



간혹 내 눈 앞의 삶이 흔들려 초점 없이 보일 때마다, 가슴속에 품고 있던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전부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 반대 길로 핸들을 틀고 싶은 욕망. 그런 것들이 밀집해 만들어진 용암 같은 존재. 그것은 꿈이라고 해야 하나. 아님 그냥 끓어오르다 식어버릴 거품이라고 해야 할까.


얼마 전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해져 '진로 탐색', '적성 검사', '유망 직업' 따위의 단어들을 열심히 검색하다 한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하게 되었다.

<진짜 내가 원하는 일을 찾고 싶다(진로, 이직, 취업, 퇴사, 꿈, 창업)>이라는 제목에 홀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서둘러 결제하고 회사 달력에 표시까지 해두고서는 그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거기 가면 뭔가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와 설렘으로 기다리던 중 마침내 그 날이 왔고,

퇴근을 마친 나는 쏜살같이 수업 장소로 갔다.


거기엔 나처럼 회사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중엔 마흔이 다 되어가는 분도 계셨다. 마흔이나 되어서도 아직 진로를 고민하다니. 마흔이면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맘 편히 지낼 나이 아닌가? 스물일곱의 나는 새삼 놀랐다.

그러나 이어지는 강사의 말에 귀가 번쩍 트여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오디세이(Odyssey) 시기를 겪고 있는 겁니다.
개개인의 '신화'를요.
인간은 20대부터 40대까지 인생의 오디세이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 시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방황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 헤매죠.
그러니 여러분이 오늘 이 수업에 오신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입니다.


개개인의 신화라니. 내가 알던 신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밖에 없는데.

나도 마흔을 앞둔 저 사람도, 여기에 있는 모든 어른들은 아직 자라고 있던 거구나.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보통 한 사람이 20대에 대학을 졸업하면 모든 성장을 끝마친 어른으로 취급한다.

곤충으로 따지면 성충이고, 고양이로 따지면 성묘, 인간으로서는 '성인'이 되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사회적인 수순대로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클리어 해 나가며 타인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질타받고 동정받으며 실패한 인생 취급받기가 십상이니까.

그래서 나도 남들이 좋다고 하는 대학에 가길 원했고, 남들이 좋다는 직장에 취업하기로 했었다.

그것을 이뤄냈을 때 쏟아지는 박수세례에 잠깐은 짜릿했지만 결국 나는 머지않아 시들었다.

왜? 그건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니었으니까.

지금 나도 오디세이를 겪고 있는 거다.

그러면서 강사는, 이 시기에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오래 그 일을 할 수있고 그 결과 그 분야의 성공적인 전문가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말했다. 다만 그런 일을 찾기까지 스스로가 만든 규제에 갇혀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뿐이라고.


생각해 보면 나 말고도 방황하는 어른들을 꽤 많이 보았다.

인터넷에 고민 글을 올리는 네*트 판이라던지, 라디오라던지 티비 프로그램에서도 수없이 많은 어른들이 아직도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곤 한다.

"30살 대기업 사무직, 퇴사하고 프리랜서가 되고 싶어요."

"공기업 그만두면 후회할까요?" 뭐 이런 류의 고민들이 난무한다.

인터넷 익명게시판에 이런 글들이 올라오면 그 밑에 줄줄이 달리는 댓글들이란 대부분의 경우 현실의 냉혹함에 대해 한번 더 꼬집으며 글쓴이의 기를 한 풀 더 꺾어 놓는 말들이 주를 이루고 또 그게 베스트 댓글이 된다.

처음엔 나도 그런 댓글을 쓰는 사람들의 편에 섰었다. 세상살이가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너무나 많이 주입당했기에,  용기를 가지라는 말보단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측이 편하다고 말했다.

그치만 이제는 아니다. 이제는 방황하는 어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자기 자신을 잘 안다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세요.
어차피 인생 길지 짧을지도 모르는데
기왕이면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살아야 잘하게 될 확률도 높아지고,
 더 길게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길지도 모르잖아요.
적어도 지금 하시는 일보단 오래 하실 수 있을걸요?


그 때의 수업은 두 시간 넘짓의 짧은 강의였지만 진액만을 농축한 건강음료처럼 영양가 있던 시간이었다.

"어떤 직업을 가지시오. 어느 길로 가시오."라는 명쾌한 해답을 주기보단 나라는 인간에 직면할 기회를 주었다.

거기서 나는 나의 기질을 탐색하기 위해 내가 가장 원하는 단어들을 찾아내는 작업을 했는데

<표현하다>, <글 쓰다>, <말하다>가 최종으로 선정된 세 가지 단어였다.  

역시 나는 끊임없이 자아를 표출하고 쏟아내야만 살아지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실체적으로 깨닫진 못 했었다.

좋았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서 유익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한 층 더 또렷해졌다.

나는 이제 지속적으로 글을 쓰려 한다. 한 때는 글로 먹고 살기를 꿈 꿨지만, 현실에 치여 잠시 읽고 쓰기를 멀리했었고 그 결과 나는 전보다 빛을 잃었다.

이제 다시 그 빛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날 것이다.

지금 당장 퇴사한다는 말은 아니다. 퇴사해야만 이룰 수 있는 일도 아닐뿐더러 아직은 떠날 채비를 하는 단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 그 빛을 완전히 되찾아 스스로 빛 날 수 있는 단계가 되었을 때는 과감히 퇴사할 생각도 있다.


지금에 와서는 방황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집으로 돌아와 엉엉 울며 키보드를 두들기고, 긴 새벽 잠 못 이루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제 발로 돈 내고 원데이 클래스 들으러 가길 정말이지 잘했다.

괴로우면 살 길 찾아 구만리라도 떠나는 게 어찌 보면 생존본능처럼 당연한 일.

원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뒤, 나는 전보다 더 살고 싶어졌다.

그러니 이 세상의 방황하는 모든 어른들이 적어도 자기 자신을 자책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자신이 뒷전이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지키고 책임져야 할 것들은 바깥에만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있음을 부디, 알아줬으면 좋겠다.


괜찮다. 방황해도 좋다.

우리는 모두 각자만의 멋진 신화를 쓸 것이다.


사진 출처: tumbl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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