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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리틀 Apr 06. 2023

데스노트로 흉악범을 죽이는 것은 정의로운 일인가?

뮤지컬 ‘Death Note’

샤롯데시어터에서 김준수, 고은성 주연의 데스노트를 관람했다. 벌써 네 번째 뮤지컬이다. 홍광호가 부른 가장 유명한 넘버 ‘데스노트’ 덕에 알게 된 뮤지컬이었지만, 끝나고 나니 ‘죽음의 게임’이 베스트 넘버가 되었다. 뮤지컬은 순수한 고등학생이었던 ‘야가미 라이토’가 데스노트를 손에 넣게 되면서 흉악범들을 처단하고 세상의 정의를 바로잡겠다 마음먹으며 시작되고, 이를 익명의 수사관 ‘엘’이 야가미의 뒤를 쫓으며 진행되는 야가미 라이토와 엘 간의 두뇌 게임이자 심리전을 다룬다.


뮤지컬의 연출도 훌륭했고, 배우들의 연기력과 가창력, 시나리오는 논할 필요도 없기에 뮤지컬을 보며 생긴 나의 의문을 글로 풀어본다.


정의란 무엇인가

또, 데스노트로 흉악범을 죽이는 것은 정의로운 일인가?


그렇다면 이 나라의 정의란 뭘까. 바보 같은 권력의 도구. 정의란 건 과연 누가 정한 걸까. 저 눈먼 권력 가진 놈이 정해놓은 기준.
제대로 된 정의 진정 원한다면 제대로 된 지도자를 찾아내는 일이 중요해. 그게 가능한 걸까. 절대 불가능해.
그 무언가 나의 마음을 채운다면 그것이 정의라고 할 수가 있어. 그게 답이야.
- 정의는 어디에 (Death Note 中)


태워버려야 해 불길한 노트. 그렇지만 결국 썩은 인간들은 언젠가는 제거해야 해. 이상하다. 온 세상이 더 아름답게 빛나고. 이건 꿈이 아냐 지옥 같은 세상 뒤엎을 수 있어. 심판의 시간. 이젠 나의 손에 맡겨진 이 정의의 심판. 세상을 내 뜻대로 세워볼까. 각오했어. 나의 인생. 난 정의로운 세상을 내 손으로 만들 거야. 오직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야. 새로운 세상의 신이 되리라.
-데스노트 (Death Note 中)


칼날 같은 너의 심판. 키라, 키라, 이건 뭐야. 가짜 구세주. 숨겨진 그의 정체는 그냥 어린아이.
악마인 걸까? 신일까? 키라, 숨겨진 너의 정체, 그냥 너란 녀석.
너 혼자 이 세상을 바꾼 줄 안다면 진실을 알려주지. 사실 바뀐 건 네 이름뿐이야. 그렇지 키라?
넌 구세주가 아니야. 키라. 멍청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거야.
-키라(Death Note中)



라이토는 스스로를 구원자라고 부른다. 썩어빠진 세상을 바로잡을 구원자. 뉴스에는 날마다 살인범들이 나와 설치고,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법을 탓하며 이 세상의 정의가 무엇인지 묻는 라이토. 해당 넘버에서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자신만의 정의를 찾으라고 하고, 라이토는 정의를 ‘나의 마음을 채우는 것, 그것이 정의‘라고 정의했다.



혼자 곰곰이 정의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정의의 사전적 정의는, 1)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2) 바른 의의 3)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게 하는 공정한 도리라고 한다. 너무나 사전적 정의고, 사실상 우리가 지켜야 할 범이나 규범이 객관적인 정의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상하게 정의라는 단어가 내 귀에 너무 익숙한 것이다. 매일 정치 섹션의 기사 타이틀에는 꼭 정의는 죽었다느니, 정의로운 해결을 바란다느니, 정의를 실현했다느니 하는 말들에 절여져 있어서일까?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정의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고, 유튜브에서는 범죄자들을 직접 벌하는 행위를 ‘정의 구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우리들은 정의를 참 좋아하는 듯하다.


그런데 나는 정의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이 외쳐대는 정의는 ‘공공의 정의’다. 정의롭지 않은 일들을 바로잡겠다고 정의롭지 않은 행동을 하며 정의를 부르짖는 꼴은 좀 기괴하지 않은가. 정의를 무기 삼아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느 새부터 사회의 정의는 수단이 되었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 나의 사상을 증명해 낼 수단, 도덕적 우월감을 얻기 위한 수단 등.



관련 저서를 찾다 보니 ‘정의감 중독 사회’의 저자 안도 슌스케가 공공의 정의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제시한 ‘빅 퀘스천’이 흥미로웠다.

“긴 안목으로 보았을 때 나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건전한가? “

이 질문은 네 부분으로 뜯어볼 수 있다.

1) 긴 안목으로 보았을 때 2) 나에게도 3) 다른 사람들에게도 4) 건전한가?


답하기 쉬운 순서로 따져보자.

‘데스노트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나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건전한가?’

나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 관객들이 라이토의 데스노트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어가 흉악범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어를 흉악범이 아닌 사람으로 바꾸어 봐야 한다. 우리는 흉악범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것이다. 흉악범을 죽이는 것 역시 엄연한 살인이다. 처벌은 국가가 정해진 법에 따라 집행할 문제이지, 개인의 사견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또, 라이토의 경우 극의 후반으로 가며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상황이 되자, 아무 죄 없이 자신의 뒤를 쫓는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직접 살을 찢고 토막을 내지 않아 살인에 대한 죄책감도 없었고, 오로지 광기 어린 정의감만이 불타고 있어 생명의 무거움을 경시하게 된 것이다.


 

그럼 다음으로, ‘긴 안목으로 보았을 때, 데스노트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나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건전한가?’

이 질문은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넘어, 훗날 이어진 결과가 좋았냐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지금까지 라이토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 했으니 이제 극을 넘어 현실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혹자는, 아니 나 역시도 대체 왜 흉악범들의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지 궁금해한다. 최근 사형수 1명의 유지비가 9급 공무원 초임 연봉보다 많다는 조사가 발표되며 또다시 해당 이슈가 불거진 바 있다. 이번 기회에 검색해 보니 생각보다 쉽게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1997년 사형 집행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사형집행을 하고 있지 않다. 사형제도는 법적으로 존재하나, 실제 집행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사법부나 법무부의 처벌의사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외국의 여러 나라와 ‘범죄인인도조약’ 및 ‘형사사법공조협약’을 맺기 위해서다. 범죄를 저지르고 외국으로 도주하는 사례는 미디어를 통해서 많이 접했듯 아주 흔한 일이기에 이 협약들은 상당히 중요하다. 그런데 EU를 비롯한 영연방국가(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는 사형제도가 있는 나라와 해당 조약 및 협약을 맺지 않기로 했기에 대한민국이 실질적 사형폐지 국가가 된 것이다.



물론 미국은 여전히 사형을 집행하고 있고, 이것이 본보기가 되어 사회악의 근원을 영구히 제거해 사회를 방어하는 공익적 목적이 있다고는 하나, 여러 요건들을 고려해 궁극적으로는 범죄율을 낮출 수 있는 최선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은 분명하다. 다만, 생명이 달려있는 문제이며 흉악범들에게도 믿기지 않겠지만 ‘인권‘이 있으니 국가는 인권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어 신중히 검토해야 할 문제이다.


누군가를 단죄하겠다는, 정죄하겠다는 마음이 또다른 악의 시작이다. 머릿속에 떠올랐던 질문에 어느 정도 해답을 찾았다. 이제야 뮤지컬의 커튼콜이 끝난 것 같다.


끝도 없는 욕망에 꼼짝없이 붙들려 또 하루를 살아가네. 애를 써봐도 기다려봐도 아무 소용없어.
인간의 눈은 어차피 어떤 진실도 볼 수없어. 꿈에 사로잡혀서 눈을 가린 채 사랑 노래에 또 춤추네.
인간의 삶은 어차피 빠져나가는 모래알을 계속 주워 담으며 기회가 올 날만 기다리면서 한숨 쉬네.
그저 꿈에 취해 기도하다 저주하며 살다 죽고, 사랑하고 다시 증오의 춤을 춰.
-어리석은 인간(Death Note 中)


감독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 생각해 보며 온전히 소화시키는 시간이 소중하다. 글쓰기 수업의 교수님이 글을 쓰는 것은 잠시 멈추어 서는 것이고, 멈추어 서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마음에 와닿는 말이다. 나도 글을 쓰며 멈추어 서서 생각하고, 내 생각을 다듬었다. 글쓰기는 스쳐 지나가는 경험들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좋은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삶은 유한하고, 인간은 정의롭지 못하며, 욕망에 붙들려 발버둥 치는 삶이라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고뇌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넘버 몇가지를 남길테니 한번 보시길!


https://youtu.be/rrI7tOhoVzA


https://youtu.be/ABcajO6abzY

웃기지만 진짜 잘불러서 추천..


https://youtu.be/bFNAKvNY33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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