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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리틀 Nov 27. 2022

혐오와 갈등의 시대

뮤지컬 ‘Westside Story’


지난 금요일, 충무아트센터에서 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를 보고 왔다. 이야기는 뉴욕의 웨스트사이드를 배경으로 백인 갱단 '제트파'와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갱단 '샤크파'가 구역을 두고 대립하는 과정을 담았다. 제트파의 리더 '리프'와 그의 절친한 친구 '토니', 샤크파의 리더 '베르나르도'와 그의 여동생 '마리아'가 주연이다. 토니는 갱단에 손을 떼고 바르게 살아보고자 배달일을 하고있다. 그러던 중 댄스파티에서 마리아를 보고 한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게 되고, 마리아의 부탁으로 제트파와 샤크파의 싸움을 말리러 갔다가 사건이 발생한다. 베르나르도가 리프를 칼로 찔러 죽이자 흥분한 토니가 베르나르도를 칼로 찌른 것이다. 토니는 마리아에게로 가 이 사실을 고백하지만, 마리아는 그를 용서하고 숨겨준다. 그러나 베르나르도의 친한 친구이자 베르나르도가 마리아의 결혼 상대로 생각해두었던 '치노'가 토니를 쏴 죽이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웨스트사이드스토리는 셰익스피어의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졌다. 두 집단의 극심한 갈등이 젊은 남녀의 죽음으로 해소되었다는 점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간다. 뮤지컬의 무대장치나 안무와 같이 시각적인 부분은 굉장히 신경을 쓴 것 같았지만, 사실 뮤지컬의 스토리 자체는 개연성도 부족하고, 감정선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마리아와 토니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이 너무 부족했고, 자신의 오빠를 죽인 남자를 용서하고 사랑한다는 부분에 있어서도 충분한 서사가 필요했지 않나 싶다.


주연들의 서사는 아쉽지만 조연들에 대한 연출과 설정이 감명 깊다. 시대적 배경과, 캐릭터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나니 감독이 주고자 한 메시지에 대해 깊이 고민해볼 기회를 준 뮤지컬이었다. 이 스토리의 키워드는 '갈등'이다. 사실 스토리 내내 백인 갱단 제트파가 이민자인 샤크파를 조롱하지만 제트파 역시 조금 더 일찍 미국 땅에 발을 들였을 뿐, 같은 이민자이다. 먼저 온 이민자가 뒤에 온 이민자를 배척하는 셈이다. 백인 경관 '크럽키 경관'은 이들을 철저히 이용하면서도 두 갱단을 '인간쓰레기'라고 부르며 혐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갱단의 남성들은 여성을 겁탈하고 성적으로 조롱한다.  이처럼 인종, 국적, 성별, 계층 간의 끝없는 대립과 갈등이 담겨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 세대는 다른가? 우리 세대는 더 극심한 혐오의 시대에 살고 있다.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를 혐오한다. 젠더갈등, 지역갈등, 빈부갈등과 같이 사회에 도처한 혐오의 원인은 무엇일까.



젠더갈등

20대 청년들은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에 젠더갈등을 꼽았다. 실제로 주위에서 '여시(여성시대)만 안 하면 돼.', '펨코(에펨코리아) 남만 아니면 돼'와 같이 이야기하는 사람을 정말 많이 봤다. 20대 남녀는 서로를 혐오한다. 20대는 진로를 결정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다. 진로 결정에 가장 큰 관문인 취업. 한때 치고받고 난리가 났던 부분이 남성이 취업을 할 때에 '군 가산점'을 주느냐 마느냐였다. 황금 같은 20대의 1년 반이라는 시간을 군대에서 보낸 청년들에게 주던 징병 보상제도는 여대생들과 여성 단체의 강력한 반발과 시위가 거듭되자 결국 '위헌'이라는 결정 하에 폐지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남성들은 여성의 육아 휴직, 생리 공가와 같은 부분에 불만을 제기했고, 여성 공무원들의 근로 형태가 남성과 동일하지 않다는 부분에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느 집단에 대한 특혜는, 집단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상대적 불이익으로 다가온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불안한 청년들에게는 더욱 예민한 문제다. 모종의 사건들을 통해 여성들은 자신들을 사회적 약자로 규정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여성이 피해자인 범죄에 '여성 혐오'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가해 남성을 일반화하여 남성 집단 전체에 칼을 겨누며 20대 남녀는 더더욱 극으로 나눠졌다.


지역갈등

의외로 적은 득표율이지만 지역갈등이야말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묵은 갈등이 아닐까 싶다. 영남과 호남의 갈등. 선거철이 되면 영호남 지역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이 글을 작성하며 여러 문헌들을 찾아보았더니 이 지역갈등이 조선시대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라도 백성들의 풍속은 다른 도와 비교할 것이 아니어서 예부터 성질이 완악하였으니 다만 미천한 백성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품과의 무리들도 시골에서 세력을 부리어... <성종실록>"와 같이 조선왕조실록에는 전라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다. 현대에도 대표적으로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이 했던 "호남 출신들은 뽑지 말며 뽑더라도 절대 요직에 앉히지 말라."가 있다. 난 정치적으로는 오른쪽에 서있지만, 사회생활을 할수록 호남에 대한 지역 소외와 고립이 호남의 타 지역에 대한 혐오 감정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느꼈다.

지역이 요즘 세상에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옆집에도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르는 세상이다. 다만 내가 살고 있는 우물 안에 계속 돌이 들어오니 들어온 돌은 밖으로 던져내야겠다는 심산일 것이다. 어느 지역이던 젊은 청년들은 계속 깨어나고 있고, 이번 대선에서는 괄목할만한 결과가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이던 전라도 광주에서 이대남(20대 남성)의 70%가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것이다. 이 좁은 땅덩이에서 자라나는 청년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깨우칠 기회를 주려거든, 해묵은 지역감정 해소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이다.


빈부갈등

40대 이상은 빈부갈등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가장 경제적 문제를 체감하고 있는 세대일 것이다. 부자는 빈자를 도태되었다고, 빈자는 부자를 시기 질투하며 악하다고 칭한다. 40대, 부모의 입장일 그들의 자녀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월거지','휴거', '개근 거지'라는 말을 쓴다고 한다. 대체 무슨 말인가 하고 봤더니 '월세 사는 거지', '휴먼시아(임대아파트)사는 거지', '여행을 못 가서 개근하는 거지'라는 뜻이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커뮤니티에서나 쓸 법한, 아니 듣지도 보지도 못한 단어들을 아이들이 쓰고 있다. 저런 혐오 단어를 남발하는 아이들은 이미 빈자에 대한 혐오를 배웠고, 가장 정서가 예민할 나이에 거지라는 조롱을 듣고 자란 아이들은 분명 부자에 대한 혐오 감정을 가지게 된다. 자본주의는 잔인하다. '돈'을 모르면 평생 빈자로 살 수밖에 없다. 부자를 시기하고 끌어내리려 하지 말고, 돈이라는 도구를 사용할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 도구가 바로 '금융 교육'이다. 어릴 때부터 돈에 대한 확실한 개념을 정립시키고, 자본주의에서 내가 어떠한 스탠스로 살아갈 것인지를 교육해야 한다. 빈부격차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사회든 있을 수밖에 없다.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빈부갈등 해소를 위해서는 금융에 대한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




갈등은 해당 집단에 대한 일반화로 이어지고, 집단에 대한 일반화는 혐오로 이어진다. 정치권은 이러한 혐오를 철저히 이용한다. 한 집단의 편을 들어 소외된 집단을 공격하여 내부를 결속화한다. 단단한 코어층을 만들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이다.


그렇다면 갈등 해소를 위해 우리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갈등은 언제나 발생한다. 위와 같은 갈등이 사라진다한들 공공의 적이 사라지면 집단은 또다시 타겟을 찾아 나선다. 갈등 예방보다 해결방법이 중요하다. 현실은 상대방이 꼭 잃어야만 내가 얻는 게임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상대를 이겼다고 해서 'You Win! Next stage!'하고 아이템 상자가 떨어지지도 않는다. 우리에게 주어진 파이의 크기는 한정되어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고속성장기를 겪으며 모든 사회적 시스템이 세팅된 듯 보이지만, 아직도 성장하고 있으며 서로를 가두고 있는 혐오의 프레임을 거둬낸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웨스트사이드스토리의 넘버 중 갱단 청년들이 부모와 사회 탓을 하며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는 부분이 인상깊어 첨부한다. 주연배우들이 나오지 않아선지 공개된 영상이 없어 스필버그 감독이 리메이크한 영화 버전의 한 장면으로 대신한다.


My father is a bastard,
My ma's an S.O.B.
My grandpa's always plastered,
My grandma pushes tea.
My sister wears a mustache,
My brother wears a dress.
Goodness gracious, that's why I'm a mess!
-Gee, Officer,Krumke


https://www.youtube.com/watch?v=UwrfS54yhk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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