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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리틀 Nov 06. 2022

I’m too Blonde?


“You are too blonde”

 영화 ‘금발은 너무해’ 중 하버드 법대에 다니는 남자 친구가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이별을 고하며 던진 대사다. 서양권에서 금발의 여자는 머리가 나쁘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한다. 예쁜 여자는 예쁜 외모를 믿고 공부는 소홀히 할 것이라는 편견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영화 속 여주인공 역시 화려한 금발머리에 온몸은 핑크로 도배하고 반짝대는 구두를 신은 전형적인 금발의 핫걸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늘 4점대 학점을 유지하고 학생회장을 도맡아 할 정도로 리더십이 있으며 잡지 모델로도 활동하는 적극적인 학생이다. 천진난만하고 긍정적인 그녀는 누군가가 곤란에 처하면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고, 타인의 곤란한 비밀은 반드시 지켜주는 의리 있는 모습도 보여주지만, 이런 그녀의 장점은 그녀의 남자 친구조차 알아주지 않는다.



 이 영화 원래 제목은 ‘Legally Blonde’, 의역하자면 ‘법도 모르는 금발의 백치’ 정도라고 한다. 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이 타인의 시선에 어떻게 비치고 있는 지를 관통하는 제목이다. 영화 시작부터 금발 머리 주인공은 늘 주변에서 외모 칭찬을 받고 있다. 앞서 나온 이별의 대사 역시 ‘You are too blonde’,’ 넌 미래를 함께할 지적인 여자가 아니야. 예쁘기만 한 여자 애지.’ 영화는 계속 그런 그녀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화려하고, 엉뚱하고, 종잡을 수 없는 그녀의 모습. 그럼에도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편견을 깨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극의 후반부로 진행되며 그녀에게 인턴쉽 자리를 준 교수가 그녀의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추행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장면은 보게 된 동료는 ‘재판을 이기려면 배심원이랑도 자겠네?’라고 비꼰다. 예쁜 여자에게 남자들이 원하는 것과 이를 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 무엇 하나 낯설지 않다. 아무튼 엄청난 노력을 했음에도 아직도 자신의 외모만을 보는 사람들로 인해 주인공은 도망치지만 다시 돌아와 멋있게 인정받고 이 모습에 반해 전 남자 친구가 돌아오지만 멋지게 뻥- 차 버리고 졸업 축사를 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사실 이 영화가 내 마음에 쏙 든 것은 아니었다. 클리셰 범벅에, 희극적인 요소를 넣은 것이겠지만 주인공은 영화의 결말까지 모든 사건을 극복해 나감에 있어 ‘파마’, ‘지방흡입술’ 등 그녀의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단서들을 뽑아낸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그저 그런 하이틴 영화라고 생각해 넘겼는데, 최근에 이 영화를 다시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전 직장을 퇴사하며 친했던 직장 동료가 편지에 써준 말이 있다. “00 씨가 외모로 관심받는 사람이어도 좋겠지만 한 영역의 전문가로서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스스로 원하고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잘 선택해요.” 당시에도 이 편지를 받고 많은 것을 느꼈다고 생각했는데, 목요일 밤 집에 돌아와 이 편지를 다시 읽으며 한참을 울었다. 속상했고, 슬프고 마음이 아팠다. ‘왜 꼭 나는 모든 일을 겪어야 깨달을까.’ 싶어 자괴감도 들었다.


 나는 주인공만큼 아름다운 외모는 아니지만 꾸미기를 좋아하는 탓에 어딜 가든 튀곤 했다. 핑크, 리본, 반짝이 옷, 짧은 치마에 높은 구두. ‘지금 아니면 언제 입겠어?’라는 마음으로 예쁜 옷을 입고 예쁘게 머리를 말았다. 출근 시간보다 1시간 전에는 자리에 앉기 위해 더 이른 시간에 일어났고, 열심히 꾸미고 나왔어도 업무가 남았다면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금주에 크지 않지만 작지도 않은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사실 꽤나 충격을 받았다. 사실 관계를 파악한 과정에서 꽤나 마음이 아픈 말을 들었다. “쟤넨 네 업무적인 부분엔 관심 없어.“ 그러려니 넘기려고 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마음이 추슬러지지 않았다. 성적 희롱이 담긴 말들보다 훨씬 더 마음에 깊게 박혔다.



 이러저러한 이야기로 흘러 멀리까지 왔지만, 이 글은 그저 한 사건을 그저 해프닝으로 넘기고 싶지 않아 스스로 적는 경위서 같은 것이다. 지금까지 많이 즐겼으니 이제 새로운 내 스타일을 찾아봐야겠다. 주말에는 스파를 하고 쇼핑을 다녀왔다. 몸도 개운하고, 새로운 스타일의 옷들을 잔뜩 사 와서 옷장도 든든하다. 이 역시 내가 더 성숙해지는 과정일 테니 이번에도 한 단계 성장했다고 생각해야지. 어차피 난 뭘 입어도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니 이젠 정말 조직에 맞는 사람이 되어보겠어요.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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