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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리틀 Apr 09. 2023

영업정지를 당해도 좋으니 날 좀 가만히 냅둬!

'백종원의 골목식당 예산 국밥거리'로 보는 노인들의 고집

“영업 정지 1년 당하던 천만 원을 물던지 해도 내가 그렇게 할 테니까 제 장사는 그렇게 하고 싶어요.”

최근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예산 국밥거리가 화제다. 백종원 대표는 7년 전부터 당시 군수의 부탁으로 백종원 국밥거리를 탄생시켰고, 국밥집의 위생과 품질 향상을 위해 노력했으나 일부 업주들이 백종원 대표와의 약속을 어기고 위생과 맛이 개선되지 않아 결국 백종원 대표의 이름을 빼기로 했다는 결정이다. 음식을 만드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위생문제로 백종원과 상인들은 계속 부딪혔다. 예산 시장의 한 상인은 “시장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인데 사소한 거 다 참견하면서 사람을 어렵게 하니까 너무 어렵다. 나는 빼달라.”라며, “영업 정지 1년 당하던 천만 원을 물던지 해도 내가 그렇게 할 테니까 제 장사는 그렇게 하고 싶다.”라고 호소한다. 너무나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이다. 백종원이 손만 대면 줄 서서 먹는 대박집이 되는데, 그까짓 고집 때문에 일생일대의 기회를 날린다고? 대체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걸까?


나는 이런 상인들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위생문제를 다루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이 글은 이 상인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된 글이다. 예산시장의 상인들은 대부분 노인이다. 노인들은 이상하리만치 어떠한 부분에서 대화가 수바퀴가 돌아도 타협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노인’과 ‘고집’을 키워드로 접근을 하던 중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정서적 최적화

‘EBS 다큐프라임: 100세 쇼크‘에서 초고령기에 들어선 노인들의 생활을 촬영했다. 99세 할머니는 아침마다 아들의 셔츠를 다리고, 수건을 가지런히 개킨다. 며느리가 말려도 소용이 없다. 시골에 혼자 사시는 102세의 할아버지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산책하고, 자신의 방안 모든 것을 익숙한 동선에 맞게 세팅해 두고 생활한다. 한국사진작가협회를 만드신 102세 할아버지는 매일 같은 시간 사진관에 나타난다. 매일 똑같은 과자를 사고, 그 과자를 매일 점심을 먹을 식당의 사장님에게 선물하고는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음식을 먹는다. 할아버지는 죽기 전까지 같은 생활을 할 거라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노인의 습관 내지 고집은 정서적 최적화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노년이 되면 젊은 시절 가장 잘하고 인정받았던 일들을 계속하려고 하는데, 이것이 정서적 최적화다. 이러한 특성은 초고령자가 될수록 더 강하게 나타난다. 노년기에는 새로운 일이나 경험을 피하고, 대신 익숙한 일들을 선택하려 한다. 정서적으로 편안한 일들을 선택하려는 욕구다. 노인들의 이해할 수 없는 고집스러운 행동들이 이 때문이다. 매일 아들의 셔츠를 다리는 할머니는 시집을 와서 다림질을 잘한다는 시어머니의 칭찬을 떠올리며 내 아들의 셔츠만은 꼭 내가 다리는 것이다.

출처: EBS다큐프라임 ‘100세 쇼크‘

고집을 부리거나 말이 너무 많거나, 이해가 어려운 행동을 하는 노인들을 보고 ‘나잇값을 못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그게 나이가 든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기존에 해오던 행동들을 고집하는 것. 다큐멘터리를 보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습관으로 자리 잡은 것을 고치기는 너무나 힘들고, 새로운 것을 찾기보단 기존의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그렇게 보니 나의 최대 5배를 살아온 사람의 익숙함이 문득 무서워졌다.


글을 쓰다 문득 우리 회사 미화 여사님이 생각났다. 회사 화장실을 청소해 주시는 미화 여사님은 나이가 60은 넘으신 것 같고, 70은 안되신 것 같다. 가끔 삶은 단호박을 나눠주시고, 아침에는 루즈를 바르고 머리도 드라이하시고, 반갑게 인사해 주시는 모습이 해맑아 좋은 분이다. 회사 지하에 휴게실이 있다고는 하나, 늘 화장실 한편에서 쭈그려 앉아계신 모습이 마음이 아팠고, 치약이 다 떨어졌는데 직원들이 쓰는 치약을 쓰면 싫어할까 싶어 묻고 쓰시는 모습이 또 마음이 불편했다. 정년이 지난 나이에 새벽에 나와 청소를 하고, 쓰레기통을 비우는 일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가끔씩 별난 행동을 하곤 하신다. 화장실 한편에서 무얼 먹거나, 신발을 빤다거나. 여사님은 자신이 일하는 화장실을 우리의 사무실과 같이 생각하고 계신 것 같다.


우리는 살면서 답답하고, 몰상식한 노인들을 마주하곤 한다. 어쩌면 매일 마주치고 있다. 출퇴근길에 우악스럽게 나를 밀치고 가는 할머니들이나, 식당에서 버럭 소리를 지르는 할아버지, 청소 여사님들이나 경비아저씨등 곳곳에서 말이다. 난 원래도 화가 잘 나는 편은 아니지만 나이가 든 사람들에게는 화라는 감정도 잘 생기지 않는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늘 가까이 살아와서 그런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노인들이 대게 그런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설사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한들 나이 든 노인에게 내가 화를 내봤자 이틀은 마음을 불편해할 것을 알아 그냥 묻어둔다. 노인은 원래 그렇다. 원래라는 말이 웃기겠지만, 노화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다. 나는 그들의 세상을 존중한다. 내가 행동을 고치라 이야기할 자격도 없고, 있다한들 노인을 상대로 그러고 싶지 않다. 특이한 행동을 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MZ’라는 면죄부를 주듯, 우리도 노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어떨까. ‘MZ이해하기’ 컨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노인을 이해하기 위한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44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를 첨부한다. 내용이 꽤 괜찮아서 후반부에 다뤄지는 노인의 감정에 대해서도 공부를 더 하고 글을 써보고 싶다.


https://youtu.be/Qn3628MQkMM


https://n.news.naver.com/article/009/0005111389?sid=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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