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독립탐정언론 <신흥자경소>에 2024년 8월 30일(오후 6시 52분) 올라온 기사입니다. ->원문보기
[신흥자경소] 필자는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 활발히 축구를 즐기던 아이였다. 일반 아이들과 섞여 볼을 찰 때면, 제법 몸놀림이 좋아 잘하는 축에 들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난생처음으로 ‘벽’을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된다. 초등학교에는 없던 ‘전문 축구부’가 중학교엔 있었던 것이다. 실제 전국대회에도 출전하는 ‘진짜 축구선수’들이 나와 같은 나이라니. 동갑이지만 일반 아이들보다 3~4살은 더 나이 들어 보였던 축구부 아이들은 중학교 각 반에 대략 1~2명씩 배치됐었다. 그 아이들은 일단 발육 상태가 일반 아이들보다 훨씬 좋았다. 대부분 키가 컸고 몸에 말근육 같은 게 장착된 느낌이었다. 그 아이들은 가끔 수업에 들어와 맨 뒷자리에서 잠만 자다 가곤 했다.
하지만, 체육 시간만 되면 그들은 날아다녔다. 물론 체육시간조차 축구부 애들을 보기는 쉽지 않았지만, 가끔 참여하는 날이 있곤 했다. 그때면 그 아이들은 본업인 ‘축구선수’ 몸짓을 제대로 보여줬다. 우리 ‘일반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환상의 몸놀림이었다. 진짜 축구선수들의 플레이를 직접 겪은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저 멍을 때리거나 ‘아!’ 하며 탄식을 지를 뿐이었다.
그런데 ‘축구를 잘하는 아이’라는 정체성이 있던 당시의 필자가 느낀 감정은 특히 더 복잡했다. 일반 아이들 사이에선 ‘좀’ 하던 필자는 ‘진짜 선수’들 사이에선 아예 상대도 되지 않았다. 선수들의 볼을 건드릴 수도 없었다. 처음 보는 신기 어린 몸놀림 앞에서 그저 몸이 굳어버릴 뿐이었다.
필자 삶에서 처음으로 ‘벽’을 느낀 순간이었다.
그때 필자가 그 의기소침과 좌절을 어떻게 이겨냈는지는 불분명하다. 너무 오래전 일이어서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희미한 기억 속의 나는 약 2년여 뒤인 중3이 되어서야 다시 축구를 활발히 했던 것 같다. 처음 벽을 느낀 후 약 2년여간 축구를 거의 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어린 내가 조용히 혼자서 겪어야 했던 그 ‘좌절감’은, 무려 2년이 지나서야 극복할 정도로 결코 만만치 않았던 셈이다. (14~16살 시절의 2년은, 성인으로 치면 훨씬 더 긴 기간일 것이다)
이후로도 그런 비슷한 류의 경험은 더 있었다.
고등학생 1학년 때부터 기타를 쳤던 필자는, 20대 초반에 홍대에 위치한 어느 라이브클럽을 방문했었다. 오디션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필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한 ‘기타 천재(男)’를 마주하게 된다. 그는 나보다도 나이가 2살 정도 어렸고 성인이 된 지 갓 지났는데도 직접 차를 몰고 왔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교수였고, 본인은 당시 국내 최고 명문 공과대학교를 다닌다고 했다. 고등학생 때 월반해 빨리 대학을 갔다고 했다. 문제는 그러한 스펙이나 배경이 아니었다. 그의 오디션 무대를 지켜본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그저 경탄밖에 할 게 없었다. 지미헨드릭스 무대를 처음 본 일반인들 심정이 그랬을까. 그의 신기 어리고 완벽한 지판 위 연주는 너무나 높은 경지에 있었다.
다만, 당시 내 자존심을 지켜줄 만한 요소가 없진 않았다. 오디션 무대에서 나는 창작곡을 선보였었고, 그는 유명한 곡을 카피한 기타 연주를 했을 뿐이다, 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창작곡이라고 무조건 더 높은 점수를 줘야 할까. 당시 그 천재의 현란하고 완벽한 기타 연주 앞에 내 ‘창작’ 자존심은 잠시나마 내면에서 작게 ‘자위’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 뿐, 현실적으로 당도한 패배감 자체를 쉽게 떨칠 수는 없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나보다 기타 연주를 훨씬 원숙하게 잘하는 동년배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