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멘탈(申興Mental)]
이 글은 독립탐정언론 <신흥자경소>에 2024년 9월 20일(오후 6시 38분) 올라온 기사입니다. ->원문보기
[신흥자경소] #1. 30대 초반인 A씨(男)는 계속 자신을 괴롭혀온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본인은 ‘정규직 직장생활을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는 거였다. A씨는 회사에 정규직으로 입사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대부분 몇 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뒀다. 그래서 제대로 된 직장 커리어가 없었다.
그 자괴감을 풀어내려면 제대로 정규직 직장생활을 치열하게 해봐야 할 터였다. 스스로도 ‘적어도 3년은 한 업종에서라도 진득이 버텨내야 이 숙제가 풀린다’고 ‘답’을 내린 지 오래였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렇게 하지 못했었기에, 그 문제가 마치 ‘숙제’처럼 남아 계속 내면을 고통스럽게 갉아먹고 있던 것이다.
물론, 그에게도 변명거리가 없진 않았다. 각종 악폐습과 정치질·친목질로 뒤덮인 모순적이고 비합리적인 대한민국 직장을 온전히 다니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거였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A씨는 ‘다수가 체험하는 직장생활을 왠지 나만 제대로 해보지 못한 것 같은’ 자괴감이 내면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걸 막을 순 없었다. 마음 깊은 곳에선, ‘적어도 30대 중반까지라도 직장생활을 하며 사회를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급기야 A씨 마음에선 <직장인을 향한 콤플렉스>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주변 시선을 굳이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생각해 왔어도, 왠지 남들 앞에서 떳떳하게 행동하기도 어려웠다. 실상은, 본인도 알고 있는 것이다. 깊은 무의식에선 이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나는 ‘해야 할 때’ 정면승부 하지 못했다”
A씨는 이 숙제를 풀고 싶었다.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갖은 변명과 회피 심리를 넘어서, 이제는 치열하게 직장생활을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운 좋게 새로 취직이 됐다. 아주 작은 회사였다. 총 직원 수가 10명 내외에 불과했다. 하지만, A씨에겐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소중했다. 그래서 그는 목숨을 걸고 달려들었다. 이제껏 지녀온 변명과 회피, 자기 합리화의 그늘을 벗어나 결연한 투신(投身)의 의지를 품은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걸었다. 물론 직장 세계에서 그는 부족한 것 투성이었다. 거기다 직장 내 여러 인간 군상들로부터 별 모욕적인 일을 다 당했다. 그래도 그는 계속 버티며 자기가 맡은 일에 몰입했다. 그러자 방해공작으로 A씨를 괴롭혀온 주변인들조차 감화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A씨는 일에 완전히 빠져 극도로 몰입한 상태였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니, 어떤 경우엔 회사 동료·선배들이 꺼리는 일조차 다 떠맡게 되기도 했다. 그래도 A씨는 불평하지 않았다. 많은 날을 극심한 과로에 시달렸다. 하지만 A씨는 불만을 품지 않았다. 그저 했다. 그저 달려들었다. 그저 투신(投身)했다.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 A씨에게, 기존 관성에 찌든 나태한 직원들은 이미 업무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여러 성과를 냈다. 그러다 이직을 통해 연봉을 높이 올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각종 인간 군상들의 시기질투와 음모, 모함에 시달렸다. 그런 상황에서도 기어이 성과를 내는 분투(奮鬪)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게 3~4년 여를 그 업종에서 불평불만 없이 최선을 다해 일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공황장애 발병으로 회사를 퇴직해야 했다. 하지만, A씨는 여한(餘恨)이 없었다. ‘직장생활을 제대로 한번 해보지 못했다’는 응어리를 마침내 풀어냈기 때문이다. 공황장애가 걸릴 정도로 화끈하게 투신해서 10년 차 이상 직장인이 겪을 일을 몰아서 다 당해본 느낌도 들었다. 그랬기에 어느새 직장인들을 향한 콤플렉스도 사라져 있었다. 끝까지 할 만큼 다 한 것이다.
퇴사 후 A씨는 공황장애와 싸워야 했기에, 얼마간 방황의 과도기를 보내야 했다. 쉬면서 여러 경로를 생각했다. 직장에 투신해 일할 당시에는 불평불만 없이 그저 열심히 월급쟁이로서 일을 했지만, 직장생활에서 떨어져 나와 보니 그제야 자기가 직장에서 당한 여러 일들이 불합리하고 부당한 일들 투성이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여러 고심 끝에 결국 그는 ‘내 일’을 해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실제로 그는 몇 년 후 자기 사업을 시작하며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만일, A씨가 직장생활을 미친 듯이 해보지 않았다면 ‘사업’이라는 다음 단계를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물론, A씨는 사업 분야에서도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칠 것이다. 또한 자영업이나 사업만이 누구에게나 들어맞는 정답도 아니다. 무조건 ‘직장인→사업’ 코스를 정석 커리어라고 누구에게나 권장할 수 없다. 다만, A씨는 투신한 직장생활로부터 자기 기질과 성격, 체질 등 여러 요소를 더 잘 알 수 있었고, 그 정면승부 경험으로 인해 자기에게 더 잘 맞는 다음 삶의 단계를 알아낼 수 있었다는 게 중요하다. 거기다 마치 과제처럼 여겨졌던 일에 정면으로 맞부딪혀 모든 걸 걸어봤고 그 덕분에 모든 미련을 훌훌 털어낼 수 있었다. 또 하나 분명한 건 A씨는 이전보다 사회와 인간심리를 꿰뚫는 내공과 통찰력이 훨씬 진일보했다는 점이다. 이는 삶의 다음 단계에서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될 만한 요소였다.
#2. 30대 B씨(男)는 예전부터 격투 관련 종목을 배워보고 싶었다. 남자로서 강해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위급 시에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을 보호하고 싶은 생각이기도 했다. 하지만 생업 등 여러 신경 쓸 일들이 많아 도저히 짬을 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만 흘러갔다. 그러다 여러 일들로 스트레스가 과중했던 어느 날, 그는 집 근처 복싱 체육관을 무작정 방문했다. 그리고 바로 회원 등록하고 그 뒤부터 무아지경으로 복싱에 매진했다. 바쁜 일정 속에서 하루 1~2시간밖에 짬을 낼 수 없었다. 그래도 그는 체육관에 있는 순간만큼은 매우 열심히 운동했다.
B씨는 복싱 체육관을 다니며 목표가 하나 생겼다. 바로 생활체육 복싱인들 다수가 하나의 자격증처럼 여기는 ‘프로라이센스’였다. 국내 복싱 관련 단체가 난무해 프로라이센스 허들이 너무 낮다는 둥, 쓸데가 없다는 둥 별 말이 많았지만, 그래도 B씨는 그걸 은근히 따고 싶었다. 체육관에서 라이센스가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내게도 무언가 하나라도 격투 종목과 관련한 자격증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꼭 주변에 자랑을 하고 싶어서라기 보단, 격투 종목과 관련해 스스로 납득할 만한 걸 성취해보고 싶었다. 일반 생체인들에겐 프로라이센스가 그런 존재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다니던 복싱 체육관이 문을 닫고, B씨 본인도 여러 생활고에 치이면서 복싱을 일순간에 접게 됐다....(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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