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멘탈(申興Mental)]
이 글은 독립탐정언론 <신흥자경소>에 2025년 10월 17일(오후 7시 20분) 올라온 기사입니다→ 원문보기
[신흥자경소] #1. 과거 군대에서 있었던 일이다.
십수 년 전 군인이었던 필자는, 언젠가 낯선 타부대 장병들과 특정 공간에서 같이 머물렀던 적이 있다. 아마 당시 전국에 전염병이 돌아, 휴가가 끝난 복귀자들이 일정기간 한 곳에 머물러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필자도 그 속에 있었다.
거기서 타부대 장병 A를 마주쳤다. A 주변엔 같은 부대 동기 혹은 선임으로 보이는 다른 병사 2명도 늘 함께 있었다. A는 그들에게 항상 자기 여자친구 얘기를 늘어놓곤 했다. A가 늘 아무렇지도 않게 옆에서 그 얘기를 쏟아내다 보니, 필자도 어쩔 수 없이 그 스토리를 알게 됐다.
당시 A는 자신의 여자친구가 일류대(S대)를 다닌다고 했다. A 본인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고졸’이라고 했다. 어떻게 그들이 사귀게 됐는지에 대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점은
A는 늘 자기 여자친구가 “얼마나 대단하고 훌륭한 여성인지”에 대해 넋 나간 표정으로 썰을 늘어놨다
는 거다. 한 마디로 그는 완전히 그 ‘일류대 여자친구’에게 압도된 듯했다. 서로 동등한 관계라기보다는, 남자(A)가 여자를 완전히 떠받드는 구도 같았다. 무척 똑똑하고 대단한 일류대 여성을 인생 처음으로 깊게 사귀게 됐다는 영광이었을까. 당시 옆에서 그 얘기를 듣던 필자는
‘뭔가 좀 쎄한데?’
싶었지만, 그냥 남의 일이니 신경 끄고 잠이나 잤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당시 침을 튀기며 여자친구를 치켜세우던 A의 종속자적 모습은 오래도록 필자 머릿속에 잔상처럼 남았었다.
#2. 군대 전역 후, 20대 중후반이 된 필자는 홍대 근처를 자주 들락거렸다. 그 당시 홍대 주변에서 음악을 하던 한 여성(C)을 알고 지내게 됐다. 그녀는 늘 자신을 ‘엘리트’라고 칭했다. 전국에서도 공부를 잘하는 편에 속하는 학군에서 자랐다는 게 근거였다. 국내에서 알아주는 미대를 졸업한 재원(才媛)이기도 했다.
당시 그녀(C)가 사귀던 남자친구(G)도 홍대에서 음악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G)는 키·덩치가 컸고 얼굴도 잘생긴 편이었다. C는 필자에게 자기 남자친구(G)가 ‘고졸’이라고 했다. 일찍 음악으로 승부 보려고 대학 진학도 하지 않은 채 음악에 몰두해 왔다고 했다.
필자는 처음엔 그 커플을 보며 흐뭇해했다. 그녀(C)가 조건을 따지지 않고 ‘사랑’을 택하는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이상했던 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남자친구 G는 그녀 앞에서 좀 위축되고 말도 잘 꺼내지 못했다. 더구나 G는 자기 여자친구(C)를 ‘엘리트’라고 남들에게 소개하고 다녔다. C 본인이 항상 내세워왔던 키워드(엘리트)를, 남자친구(G)가 앵무새처럼 되뇌는 게 다소 의아한 부분이긴 했다. 다만, 그때도 필자는 그저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그들과 같이 지내면 지낼수록 이상한 느낌은 더 강해졌다. 그녀(C)는 남자친구(G)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머리에 안테나를 단 듯 새로운 남자를 물색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호감 가는 새로운 남성이 나타나면, 바로 갈아타려는 듯 적극적으로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 시도가 실패하기라도 하는 날엔 분하다는 듯, 술자리에서 “그런 남자(남자친구인 G)랑 어떻게 결혼해?!”라는 말을 늘어놓으며, 마치 ‘고졸 남자와는 절대 결혼할 수 없으니 결혼할 스펙의 남자를 찾는다’는 듯한 심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당시 필자는, 그 커플의 모습을 보며 과거 군인 시절 마주친 ‘사병 A’를 떠올렸다. 그들(A·G)이 보였던 ▲여자친구 앞에서 위축되고 움츠러들거나 ▲여자친구를 떠받들고 숭상하는 등 모습은, 같은 남자인 필자로 하여금 가여움을 느끼게 했다.
‘엘리트’라고 자처하던 그녀(C)는, 얼마 지나지 않아 G에게 이별을 고한 것으로 안다. 더 좋은 스펙의 남자로 갈아타지 못했는데도, 그냥 이별을 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필자는 당시 그녀(C)를 향한 G의 마음이 진심이었던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G가 이별 후 어느 정도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었다. 어쩌면, 멘탈이 붕괴될 정도로 실연의 아픔을 겪었을 수도 있다. 내가 알기로 적어도 그(G)는, 음악을 위해 모든 걸 걸 정도로 비교적 ‘순수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결혼적령기던 그녀(C)는 본인 말마따나 ‘엘리트’인 자기 ‘급’에 걸맞는 남자를 찾아 떠난 걸까. 그럼 왜 내심 ‘고졸’이라서 무시하던 G를 사귀고 있던 걸까. 몸이 좋은 G를 성 욕구를 풀기 위한 수단쯤으로 여긴 걸까. 아니면 자신의 음악적 성장을 위해 그를 이용한 걸까. 체면상 남자친구가 없는 상태를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그저 가스라이팅하기 좋은 순진한 ‘남자친구 역할’ 한 명이 필요했던 걸까.
이후에도, 필자는 위 사례와 유사한 여러 일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그러면서 군인시절 마주친 ‘사병 A’ 역시 당시 사귀던 ‘일류대 여자친구’와 끝이 좋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여기게 됐다.
아무리 필자가 반골기질이 충만해, ‘학벌·스펙’이라든지 ‘사는 동네’라든지 ‘부모재산’이라든지 하는 것들로 인간을 등급 나누는 걸 싫어한다 할지라도, 살아갈수록 세상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주 디테일한 통속적 잣대로 상대를 대한다는 걸 차츰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거다.
위 사례를 끄집어낸 것은 “고졸 남자는 고스펙 여자를 사귀거나 결혼할 수 없다”는 일반화를 이끌어내기 위함이 아니다. 그렇다고 반전효과로 “고졸 남성이 자수성가하여 재산을 천문학적 수준으로 불리게 되면 집안·학벌·직장 등을 뛰어넘어 얼마든 고스펙 여성과 사귀거나 결혼할 수 있다”는, 그런 뻔한 얘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상당수 인간들은 그런 자잘한 통속적 조건이라는 걸 가볍게 웃어넘길 만큼의 존재가 되지 못한다
는 걸 우선 짚고 싶었을 뿐이다. 많은 이들이 외부조건에 이리저리 휘둘린다는 거다.
여기서 더 중요한 건, 그 세상 기준과 등급표를 누구보다 더 착실히 내면화한 인간들이, 겉으론 아닌 척하며 순진한 사람을 적극 휘둘러대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이다. 진정 마음으로 상대를 위하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순수한 척 연기한 채 자기 필요한 대로 이리저리 상대를 이용해 먹는 사례들 말이다. 그러니
진실로 자유롭고 순수한 인간은, 그러한 통속적인 인간들의 내심(內心)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악마적 본질을 제대로 관통할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한다. 자유로울수록, 순수할수록, 그런 인간들에 휘둘려 상처받기 쉽기 때문이다. 끝까지 본연의 자유롭고 순수한 마음을 가져가려면, 역설적으로, ‘때 묻은 편견’과 ‘세속적 스펙 놀음’이 세상에 얼마나 퍼져있는지, 그리고 그게 본인을 얼마나 옥죌 수 있는지 인지해야 한다.
필자도 한때는 낭만이 있는 순수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살아갈수록 ‘사랑하면 세속적 조건 같은 것은 전혀 의미가 없겠지’, ‘무스펙인 남자라도 고스펙인 여자가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겠지’와 같은 생각은, 무섭도록 차가운 현실 속의 각종 저울질 앞에서 늘 무참히 깨져왔다. 특히 상향혼을 바라는 여성 입장에서는, 자기보다 ‘아래’로 여겨지는 남성을 꺼리는 게 매우 당연한 현상이다.
물론 어딘가에는 세속적 조건을 뛰어넘는 ‘진심’과 ‘사랑’이 존재할지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은 페이크(Fake)다. 순수한 인간을 휘두르려는 악마들의 손짓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 위 사례 G처럼
누군가를 아무런 경계 없이 무작정 숭상하고 따르면, 언젠가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남녀관계뿐 아니라, 세상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충성하는 직장인(월급쟁이)은 어떨까. 회사 오너들은 대체로 자기 그룹에 속한 직원들을 최대한 부려서 이익을 뽑아내는 게 목표다. 자기 회사 톱니바퀴의 한 부분인 특정 월급노예(직원)를 진심으로 위해줄 오너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므로 직장인은 사장이나 회장, 오너에게 무한 충성할수록 추후 비참함이나 허무감을 느낄 확률도 올라간다. ‘열심히 해서 얻어낸 성과물들을 계속 위로 갖다 바치다 보면 언젠가 큰 보상이 주어지겠지’라고 생각하는 건 순진한 믿음이다. 회사는 그저 소모품으로 쓰다 버리기 위해 직원을 채용했을 뿐이다.
내면의 강인함을 깨우치고 길러내어, 그런 세상의 본질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인간은 당신이 잘 되기를 결코 바라지 않는다. 당연히 당신이 잘 되도록 나서서 돕는 경우도 거의 없다. 오히려 당신이 추락하기를, 나락으로 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인간이 꽤 있을 수 있음을 알아채야 한다. 당신이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만면(滿面)에 함박웃음을 지을 부류다. 더 나아가 순진한 상대를 악랄하게 이용해 먹고 폐기처분해 버리는 악마 같은 부류를 알아채고 경계할 줄 알아야 한다. 이들을 눈앞에 두고서도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의 그 역겨운 이면을 몸과 마음으로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이고도 ‘순수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는 진정 자유로운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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