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사설(申興社說)]
이 글은 독립탐정언론 <신흥자경소>에 2025년 11월 7일(오후 7시 20분) 올라온 기사입니다→ 원문보기
[신흥자경소] 필자가 직장을 구하기 위해 회사 면접을 보고 다니던 시절의 얘기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필자는 먹고살기 위해선 직장에 들어가 월급쟁이 역할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구인구직사이트에 매일 들락거리며 이력서를 고치고 지원 버튼을 눌렀다. 그러다 가끔 어떤 이상한 회사에서 연락이 오면 정장을 입고 면접을 보기 위해 서울 안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한 회사로부터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른 시일 내에 그 회사를 방문했다. 사장과 국장 등 여러 ‘높으신 분’들을 직접 만나 면접을 봤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리고 바로 며칠 뒤로 첫 근무 날짜가 잡혔다.
첫 근무 날, 다소 떨리는 마음으로 회사를 방문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근무 첫날엔 대체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저 회사 분위기를 익히는 시간이 주어진다. 따라서 필자는 찬찬히 그 회사 내부 사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총인원이 사장 포함 대략 7~8명 정도 됐을까. 그렇게 작은 회사인지 몰랐다. 하지만, 동일 업종 내 ‘큰 기업(이하 M사)’ 출신인 사장(A)이 꾸린 곳이어서인지 나름 괜찮게 보였다. 더구나 회사 네이밍부터가 그 ‘M사’ 이름을 포함하고 있었다. 아예 대놓고 사장 A가 “나 M사 출신이야”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실제로 필자가 입사 면접을 볼 때도 사장 A는 본인이 M사 출신임을 강조했었다.
그런데 뭔가 좀 쎄했다. 실질적으로 업무를 도맡는 인원은 남성 3명(팀장 1명 + 평사원 2명)이었는데, 그들의 행동거지나 눈빛 등이 뭔가 이상했다. 그 3명 모두, 두려움과 절박함이 과도하게 뒤섞인 듯한 독특한 분위기를 풍겨냈다.
필자를 처음 소개받은 그들의 태도는 더 이상했다. 어느 회사든 신입을 소개받은 기존 직원들은, 밝게 웃으며 신입에게 악수를 청하거나 “안녕하세요” 등 말을 건네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들은 뭔가 달랐다. 불안하면서도 두려움에 찬 눈빛을 먼저 보였고, 겉치레로라도 신입인 필자를 반기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필자를 경계하는 듯한 기운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심지어 실무직원 3명 중 1명인 팀장은 필자와 따로 1대 1로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뭔가 두려움과 불안함을 잔뜩 동반한 눈빛을 한 채로 필자의 ‘출신성분(?)’이나 ‘사장 A와의 관계’ 등을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듯한 질문을 했다. 팀장뿐 아니라 나머지 2명의 상태도 비슷했다. 그들은 회사 안에서, 마치 호랑이 앞에서 벌벌 떠는 사슴처럼 행동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호랑이는 다름 아닌, ‘사장 A’였다.
왜 그 정도로 살벌한 관계 형성이 된 것일까. 직원 3명은 대체 왜 그 정도로 불안에 떨었을까. 그들은 마치 과거 군사독재 시절 비리와 폭행·학대로 얼룩진 ‘OO복지원’ 내 수용자들이나, 사이비 교주로부터 부당한 폭력을 당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병든 신도들처럼 행동했다. 뭐가 그리 그들을 두려워하고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걸까.
그 이유를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후 얼마간 회의에도 참석하고, 그들의 근무 모습도 여러모로 살펴본 결과, 알 수 있었다.
사장 A는 직원들의 ‘욕망’을 부추기면서, 마치 그 욕망을 풀어줄 것처럼 시늉하는 식으로 그들을 쥐고 흔들고 있었다.
그 욕망이라는 건, 사장 A가 늘 내비쳐왔던, 그토록 대단한 ‘큰 기업 M사’와 관련이 있었다. 그 욕망은 바로
실무 직원(3명) 본인들이 그 M사로 ‘이직’할 수 있으리란 꿈
이었다. 실제로 M사는 해당업종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국민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기업이다. 그 M사 출신인 사장 A는 필자와 면접할 때도 “OO 씨가 여기서 일만 잘하면, M사로 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며, 마치 자신이 여전히 M사 내 주요 간부와 긴밀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는 듯 말을 했었다. 그런 식으로 기존 직원 3명에게도 자신이 언제라도 전화 한 통이면 M사로 꽂아줄 수 있다는 듯한 달콤한 말을 늘 해왔던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사장 A는 늘 자신과 M사를 혼연일체 시키며, 직원들에게 M사로 이직할 수 있다는 꿈을 심어주고, 그 욕망에 휘감긴 직원들을 자기 마음대로 주물러 올 수 있었던 거다. 이러한 행위는 시간이 갈수록 더 교묘하고 깊어져, 결국 사장 A는 직원의 욕망뿐 아니라 몸과 마음, 가정, 미래 진로 등 거의 모든 걸 쥐고 흔들 수 있는 ‘인생의 주인’처럼 돼버린 것이었다.
필자는 그 회사의 본질을 알아챈 이후, 집에 돌아와 여러 각도로 나름 조사해 봤다. 과연, 그 회사는 M사와 실질적인 업무 협약이 돼 있는지, 혹은 사장 A의 사탕발림이 어느 정도 현실성 있는지 등을 말이다. 필자가 당시 그 업종 경력자이긴 했어도, 사장 A 주변까지 깊이 있게 파고들어 갈 레벨은 전혀 아니었기에 100% 완벽한 조사는 불가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 M사로 이직시켜 주겠다는 얘기는, 그저 직원을 쥐고 흔들려는 사탕발림일 확률이 높았다.
사실, 가장 확실한 근거는 사장 A와 직접 대면할 때 온몸으로 느껴졌던 그의 ‘기운’이다. 사탕발림할 때 사장 A의 목소리에는, 상대를 능욕하는 듯한 도취감·비열함이 깃들어 있었다. 음흉한 눈빛, 제스처 등도 느껴졌다. 사장 A 본인 나름대로는 그 의도와 본심을 최대한 억눌렀을 텐데도 필자에겐 그 더러운 기운이 오롯이 전달됐었다. 그랬기에, 더 확신할 수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사장 입장에선 자기가 뽑은 직원이 ‘내’ 아래에서 열심히 일을 해 최대한의 이익을 자신에게 가져다주기를 바라지, 그 직원이 자기를 벗어나 더 높은 곳에서 잘나가기를 굳이 바라지 않는다. ‘선의(善意)’를 가진 사장도 가끔 있긴 하겠지만, 대부분의 사장에게 직원은 그저 ‘남’이거나 ‘노예’일 뿐이다.
안타까운 건, 기존 실무직원 3명은 사장 A의 사탕발림을 진짜 믿었던 것인지 서로 ‘돋보이는 업무 성과’를 내기 위해 각자 피 튀기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는 거였다. 아마 사장 A는 평소에 “M사로 갈 수 있는 인원은 1명”이라고 말하지 다니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 3명 간에도 동료의식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서로 간에 잡아먹을 듯한 살벌한 기운만 감돌았다. 그렇게 ‘나만은 M사로 가야 한다’며 경쟁하던 상황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필자가 새로 왔으니, 그들은 ‘대체 저 인간은 뭐지?’ 싶었던 거다. 심지어 팀장은 필자가 마치 사장 A와 깊은 연줄이 있어 자기네 회사로 굴러들어 온 것으로 오인하는 듯했다. 아무리 작은 규모 회사였을지라도, 그 안에서 3명의 실무 직원들은 눈알 굴러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사장 눈치를 살피고, 서로 시기하고 경계하며 별별 억측과 살 떨리는 경쟁의식 등을 마구 내뿜고 있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회사 안은 살벌한 냉기만이 가득 찼을 수밖에.
흥미로운 점은, 그들(3명) 바로 위 ‘국장’과 전체를 총괄하는 ‘사장 A’는 늘 여유로운 미소를 보인 채 쉬엄쉬엄 업무를 봤다는 거다. 특히 큰 기업에 있다가 그 회사로 흘러들어왔다는 ‘국장’은 일을 대충대충 여유 있게 해도 월급을 엄청나게 많이 받아가는 상황으로 보였다. 아마 그 국장이야말로 사장 A의 깊은 연줄 아니었을까. 그 국장 아래에서, 실무 직원 3명만이 서로 눈을 부라리며 피 튀기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렇게 노예들이 열심히 일을 해서 업무 질이 오르고 여러 성과가 나타나면, 당연히 사장과 국장은 그 과실을 제대로 누렸을 것이다.
앞서 필자는 다양한 업종의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경험해 봤었다. 또한 정규직 면접도 엄청나게 많이 봤었다. 그렇게 면접에서 통과한 뒤 꽤 다니다가 옮긴 경험도 있고, 잠깐 다니다 관둔 적도 제법 있다. 또 건강상 문제로 정규직 직장을 관두고 좀 쉬다가 나이가 좀 있는 상태에서 다시 여러 차례 면접을 보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여러 업종·규모의 회사 내부 분위기나 근무 모습 등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게다가 수많은 스타트업이 입주한 공유오피스 내부를 청소하는 일도 했었던 만큼, 여러 업종의 작은 기업들이 일하는 방식이나 분위기도 간접적으로 보고 들었었다.
그래서 위 사례 회사가 뿜어냈던 그 요상한 기운이 엄청나게 특수하지만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위 사례는 우리나라 회사들에서 은밀히 행해지는 요사스러운 농간이나 사탕발림을 극단적으로 나타낸 것뿐일 수 있다. 또한 기업 책임자 입장에서는 사람을 관리하려면 어느 정도 당근이나 채찍 혹은 사탕발림이나 회유책이 필요한 법이다.
다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단순한 직원(월급쟁이)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의 전체 인생을 폭넓게 관망하려는 사람이라면, ‘나’를 지나치게 휘두르고 능욕하려는 인간과는 거리는 두는 게 매우 적절하다는 걸 분명히 강조하고 싶다. 무엇보다
‘나’를 쥐고 휘두르려는 자들은, 내 ‘욕망’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다
는 걸 알아야 한다. 현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강압이나 폭력을 통해 한 개인을 옭아매는 경우는 잘 없으니(물론 간혹 있긴 있다), 악마들은 상대의 욕망을 우선 파악하려 한다. 없으면, 그 욕망을 만들어내기라도 한다. 인간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자리·돈 욕심 등을 부추기고 끌어내는 것이다. 그리곤 그 욕망이 눈에 보일 만큼 커졌으면, 이젠 그 욕망을 자신이 제대로 채워줄 수 있다는 듯 행동하며 상대와 밀당(밀고 당기기)하며 간을 보기 시작한다. 상대가 얼마나 이끌려 오는지, 어디까지 자신을 포기할 수 있는지 등을 살피는 것이다. 그러다 상대가 그 욕망에 삼켜져 버렸다는 생각이 들면, 본모습을 드러내며 악랄하게 상대를 맘껏 휘두르기도 하는 것이다.
이는 회사와 직원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남녀 간 연애 문제, 친구 사이를 비롯한 모든 인간관계에서 동일하게 적용된다.
당신은 과연, 주체적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과연 내 뜻대로, 의지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위 사례에서 실무직원 3명은 과연, 자신의 불안감·두려움의 원인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 욕망에만 휩쓸려 갔던 걸까. 아니다. 그들도 나름 사회에서 자신의 생존을 걸고 열심히 투쟁한 것뿐이다.
하지만, 알아야 한다. 그게 무엇이든, 어떤 경우든
반드시 ‘그것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
그 정도 규모와 연봉의 회사는 눈을 조금만 돌려봐도 주변에 널려 있다. 당신을 갈취하는, 애인인 척하는 그 악마만이 당신 옆을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다. 편협한 욕구를 탁 내려놓고, 마음 그릇과 시야를 확 넓히면, 당신 앞에 있던 악마 같은 존재는 바로 당신 곁에서 사라지게 된다.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주변을 넓게 둘러보면, 당신을 괴롭힌 그 존재에 굳이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매우 명확한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 오히려 더 나은 존재가 주변에 많을 수 있다.
필자도 당시 그 회사의 정체를 바로 알아채고 며칠 만에 관둔 뒤, 얼마 뒤 더 크고 좋은 회사에 취직이 됐었다. 그 회사의 실무직원 3명은 과연 필자보다 스펙 면에서 많이 모자라서, 그렇게 사장 A 앞에서 벌벌 떨고 있었을까. 아니다. 그저 눈이 트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필자처럼 무수히 많은 기업을 면접 명목을 통해서라도 구경하거나 실제로 다녀보다 보면, 세상에 회사는 정말로 많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니 꼭 특정회사만 고집할 필요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또 반드시 번듯한 회사에 들어가 직장인(월급쟁이)을 하는 것만도 답이 아니다. 정 안 되면 배달도 있고, 경비원도 있고, 청소일도 있다. 그런 일은 왜 안 되는가.
‘체면’이라는 본인이 만든 감옥에 스스로 갇혀서, 자기 욕망을 컨트롤하는 악마 소굴 안으로 직접 걸어 들어간 것은 아닐까.
왜 꼭 그 ‘회사’여야만 하는가. 왜 꼭 그 ‘여자’여야만 하는가. 반드시 그 ‘남자’여야만 하나. 그 존재가 당신을 좀먹고 파괴시키고 있다면, 지금 당장 그 관계를 의심해 봐야 한다. 좁은 시야 안에서 알게 모르게 자기 가능성을 스스로 옥죄고 있기에, 굳이 당하지 않아도 될 ‘악마들로부터의 착취’를 자진해서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자문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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