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작물 생산에서부터 식품 제조와 체험까지
우리는 매일 식사를 하면서도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의 재료들이 어떻게 자라고, 또 어떤 경로를 통해 우리 앞에 놓여지는지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점점 더 우리의 식습관이 외식문화와 배달음식으로 보편화 되어가고 있고, 간편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특히 도시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주식인 쌀을 비롯하여 채소와 육류까지 모두 마트에서 깔끔하게 진열된 상품만을 보고 자라니 더더욱 먹거리의 여정을 이해하기 어렵겠지요.
이러한 문제의식을 안고 농축산물 생산과 유통, 그리고 직접 재배를 통한 힐링 체험까지 접목시킨 획기적인 아이디어의 농업 스타트업이 등장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상하농원’과 류영기 대표입니다. 상하농원은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에 위치하는 9만 9,173㎡(약 3만 평)의 대지에 조성된 농촌 테마파크입니다. 매일유업과 고창군, 농림축산식품부 공동 투자의 상하농원은 건축과 미술, 조경 분야 등 각계 전문가들이 8년간의 기획과 공사단계를 거친 대규모 프로젝트 농장으로 2016년에 첫 문을 열었습니다.
상하농원의 류영기 대표는 국내를 대표하는 식품제조업체 ‘풀무원’에 공채 1기로 입사해 약 30여년 간 몸담았습니다. 풀무원 재직 기간 동안 다양한 유기농 제품을 접할 기회가 많았던 그는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도 중앙대에서 발효공학 석사를, 연세대학교에서 생명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등 식품 산업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가 되기 위한 행보를 한평생 밟아왔습니다. 류 대표는 풀무원의 부사장직까지 오른 후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상하농원 대표직을 맡게 되었다고 합니다.
‘6차 산업’이란 1차 산업인 농업, 목축업, 수산업과 2차 산업인 제조업, 가공업 그리고 3차 산업인 서비스업과 판매업, 관광업 등이 모두 융합된 형태(1차X2차X3차=6차)의 산업구조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새롭게 탄생한 산업구조를 통해 해당 지역의 농산물 재배부터 식품 가공과 서비스, 그리고 유통까지 종합적으로 이뤄지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6차 산업을 잘 활용할 수만 있다면 기존의 파편화된 1, 2, 3차 산업에서 기대할 수 없었던 새로운 부가가치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특수한 자연환경 등의 이점을 활용한 그 고장만의 차별화된 먹거리를 활용할 수 있거나 그 파급효과로 농가소득을 올려 해당 지역의 고용 창출까지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상하농원 역시 농원 내부에 ‘파머스 마켓’이라는 식료품 판매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여기서 고창군의 농민들은 소시지, 유정란, 치즈 등 현지 제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도 6차 산업에서 파생되는 지역 경제 활성화 가치를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 연관된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2017년에 ‘농촌 융복합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전국 곳곳에는 산업 지원센터가 구축되어 ‘농촌 융복합산업 인증제도’ 지원과 함께 창업 관련 자금과 컨설팅 혜택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6차 산업은 사업체와 정부가 협력하여 도시에서 방문하는 사람들이 농촌의 일상 속에서 새로운 경험들을 얻을 수 있게 합니다.
류영기 대표는 상하농원을 여타 농촌체험 프로그램이나 일반 농장과는 차별화된 공간으로 구성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애썼다고 하는데요. 과연 상하농원만이 가지고 있는 특색으로는 어떤 점이 있을까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광활한 자연 환경과 잘 어울리는 건축 디자인입니다. 상하농원 공사의 총괄 계획을 맡은 아트디렉터 김범 작가는 친환경 재료를 배합하여 주변의 경관과 어울리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여러 요소를 고려했습니다.
김범 작가가 추구한 콘셉트는 ‘현대인이 잃어버린 고향 마을’이었고, 갑갑한 도시를 떠나 사람들이 넓은 마을 속에서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남다른 건축 기획력 덕분에 상하농원은 자연과 마을, 사람이 건강하게 공존하는 장소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풍경이 이국적이고 아름다워 결혼을 앞둔 커플들에게는 웨딩사진을 남기는 곳으로도 입소문이 자자하다고 합니다.
농장 내부에는 여러가지 건축물이 있지만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텔 ‘파머스 빌리지’는 친환경적으로 지어진 투숙공간으로, 건축물 자재부터 호텔 내부의 소모품 하나하나에 공들인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건축 자재로는 편백나무와 삼나무 등의 목재와 자연석이 사용되었고, 투숙객에게 ‘자연 속의 휴식’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휴지걸이 하나까지도 나무로 디자인을 해 작은 디테일이라도 꼼꼼하게 공들였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창문도 한국 전통의 창호 형식으로 구성하고 한옥 평상 마루를 들놓으며 한국의 전통문화가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기획했습니다.
호텔에서 조식 등 식음료를 즐기는 공간인 ‘파머스 테이블’의 메뉴는 상하농원과 고창 지역에서 생산되는 신선한 농작물로 만들어지고 있어서 투숙객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합니다. 또한 류영기 대표는 투숙객이 아닌 방문객들도 파머스 테이블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샐러드와 빵, 요거트를 비롯한 서양식과 밥과 나물, 고기, 버섯 등으로 구성된 한식 식단의 가격을 모두 15,000원으로 책정하고, 식사비에 상하농원 입장료 8,000원을 포함시켰습니다. 이로써 이용객들은 7,000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맛있는 한 끼 식사를 즐긴 후에 농원 내부를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호텔 밖을 나서면 농원 곳곳에 여러가지 주제가 담긴 공방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가령 발효공방에서는 건강한 빵과 소시지, 된장을 비롯한 장류 식품이 들어간 음식을 맛보고 만드는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는데요. 또한 점차 사라지고 있는 전통적인 김장 문화를 후세대에 알려주기 위한 김장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어 젊은 부부들과 아이들을 중심으로 한 가족 단위의 참여가 활발하다고 합니다.
이 대규모의 농원은 ‘공동체’라는 단위를 염두에 두며 설계되었습니다. 매일유업의 설립 철학이 ‘하나의 공동체 공간에서 건강한 먹거리의 생산과 가공, 그리고 판매와 유통까지 이어지는 유기적인 시스템을 조성하는 것’이었기에 상하농원은 더욱 의미를 가집니다. 또한 방문객들에게 제공하는 모든 프로그램도 공통적으로 사람과 자연, 동물이 공존하며 세상을 구성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가령 양떼와 젖소 목장, 토끼와 닭을 기르는 동물농장에서는 가축들에게 먹이를 주고 관찰하는 시간 이외에 세심하게 배려된 상하농원만의 철학이 깃들여져 있습니다. 여느 목장보다도 넓은 축사와 높은 천장이 단연 눈에 띄는 점으로, 이는 가축의 위생과 건강한 환경을 최우선으로 구현한다는 상하농원의 의지를 나타냅니다. 더불어 인간의 편의만을 고려하지 않고 가축의 생활리듬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방문객들을 허용한다는 점이 인상깊은 점입니다. 이처럼 분업화된 현대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자연에서의 시간과 그 소중함을 망각하기 쉬워졌지만, 바로 이 곳 상하농원에서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시도를 다방면으로 지속하고 있습니다.
상하농원의 사업규모는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19 사태에도 불구하고 매출은 오히려 이전 대비 15% 가량 증가했습니다. 2020년 기준 상하농원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18만명으로 집계되었으며, 아마도 그 배경으로 어려워진 해외여행과 마스크 착용 없이도 시원하게 숨쉴 수 있었던 예전 일상에의 그리움이 적잖이 작용하고 있을 것입니다. 농장이 문을 연 지 5년 차인 2020년에는 매출액 157억원과 사원수 130여 명을 기록하며 우리나라의 6차 산업을 활성화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전체 직원의 85% 정도가 고창군민일 정도로 지자체의 신뢰성과 협력을 기반으로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작년 겨울에는 파머스빌리지 내부에 수영장과 스파를 새롭게 조성하면서 종합휴양시설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매일유업 측에서는 앞으로 상하농원에 전시관과 미술관을 증축할 예정이고 6차산업과 관련된 교육시설과 농촌학교 등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하면서 농촌지역에 인재를 양성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6차 산업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아가면서 상하농원 외에도 다양한 6차 산업 우수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농사로’ 홈페이지에서 6차산업 우수경영체로 선정된 100곳의 명단과 자세한 스토리까지 살펴볼 수 있는데요. 먼저 사진으로 소개된 영천와인 영농조합법인은 국내 최대 포도 주산지인 경북 영천지역의 24개 농가가 연합해 만들어진 곳입니다. 연 매출은 50억 정도이며,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생산하면서도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방문객들의 큰 호응과 함께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다음 우수사례로는 보은황토사과 발전협의회를 들 수 있습니다. 이곳은 약 80억원의 연 매출을 올리며 사과 재배 기술을 개발하는 한편, 사과나무 체험학교를 운영하고 사과농장에 전통문화를 접목한 컨셉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그리고 이밖에도 연 매출 30억의 게으른 농부 영농조합법인, 연 매출 428억의 서천군 농협 쌀조합 공동사업법인도 대표적인 6차산업 우수사례입니다. 이 외에 지금도 많은 기업들이 전국 곳곳에서 6차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농업에 대한 기존의 관점을 변화시켜 나가고 지역이 가진 자원과 개성을 백분 활용하여 혁신을 현실화 시켜나가는 6차 산업 경영체들의 전망이 더욱 기대됩니다.
Where? 대한민국 전라북도 고창군
When? 2016년
What? 체험형 농장 ‘상하농원’
Who? 매일유업
Why? 농축산물이 자연 속에서 자라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How? 농촌 테마파크 조성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운영
농촌융복합산업(6차 산업)-스마트팜 현황과 미래전망, 서울신문, 2017/10/26
류영기 상하농원 대표 - 6차산업이 미래농업 발전의 솔루션, 남해신문, 2020/09/18
사람도 자연도 행복한 6차 산업의 산실 - 전라북도 고창 상하농원, 행복이 가득한 집, 2016/08
상하농원이 알고 싶다! 6차 산업이 무엇인가요?, 상하농원, 2018/06/29
[인터뷰]류영기 상하농원 대표 "6차 산업이 미래 산업의 솔루션…코로나에도 방문객 늘어", 뉴시스, 2020/06/17
[유은정의 유통 현장 속으로] 매일유업 운영 농장형 체험공간 ‘상하농원, 세계비즈, 2020/01/05
전북 고창 '상하농원'…도시를 잊은 하룻밤 휴식에 딱 좋아, 중앙일보, 2019/09/03
"코로나에도 매출 15% 늘어...6차 산업이 한국 농촌의 살 길", 조선일보, 2020/08/03
6차산업 성과 점검 및 평가를 통한 향후 정책방안 연구, 농림축산식품부, 2017/02
7년간 천천히 만든 유기농 마을 - 상하농원, 디자인프레스, 2019/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