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기쁜 삶으로 가는 길
당신이 말조심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나는 사람들이 말조심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배려하고 조금만 더 말조심을 해 준다면 모두가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랬던 만큼, 나는 말을 신중하게 조심조심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고 긍정적인 말만을 뱉어내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물론,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는 훨씬 안전하고 평화롭게 느껴진다. 긍정적인 기분을 유지하며 즐거운 만남을 이어갈 수 있고, 그들과의 만남이 많이 기다려질 때도 있다. 그러나 시간은 결국 인간 내면의 100% 긍정적이거나 우호적일 수 없는 본심을 어떤 형태로든 드러내고, 상처와 실망은 어떤 관계도 비켜갈 수 없게 된다. 모든 인간의 내면은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감정의 바다이기 때문에, 관계의 어려움은 모두가 겪는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관계는 감정으로 짠 직물이다. 감정이 회복할 수 없이 상하거나, 그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이 대체로 부정적이기만 하다면 더 이상 감정은 직물 제조를 조화롭게 해 나갈 수 없고, 관계는 중단된다. 특히 사람의 수치심, 두려움, 낮은 자존감등의 번갯불을 건드린다면 지금까지 어떤 정성으로 만들어온 관계라도 그 자리에서 한 마디 말로 바로 불타 지금까지 짜내려 오던 역사까지 다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내가 상처받는 원인은 결국 나에게 있는 것이다. 내 안의 몹시도 민감하고 벌건 감정들,... 그렇다고 그 모든 상처의 원인을 상처받는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아니다. 분명 이 시대 사회 문화의 책임이 크다. 모두가 감정이 아프고 모두가 관계가 어렵다고 느끼게 된 것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문제라고 내버려 두어서는 결코 안될, 점점 악화되어 가고 있는 인류 전체가 당면한 거대한 재앙이다.
약화되고 있는 현대인의 감정과 관계
다시 말하지만, 관계 문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앓고 있는 문제다. 감정을 조금만 자극해도 너무 아파 견디기 너무 어렵다고 관계를 단절해 버리는 관계 사막화의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현대인의 감정이 몹시도 약하고 병들어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작은 자극에도 감정이 쉽게 부글부글 달아오르거나, 싸늘하게 굳어지는 것을 느낀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심장이 불쾌하게 두근거리고, 간이 철렁 추락하는 느낌에 어쩔 줄을 모른다. 분노 불안 공포 수치의 감정들이 시도 때도 없이 심장을 가격하고, 우리는 영혼의 평안을 위해 관계를 차단하고 줄행랑치기 일쑤다. 달리 내 마음을 지킬 다른 방도가 없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자극에 민감하게, 감정을 들끓게 만드는 것이었을까. 무엇이 나를 이토록 웬만한 관계들은 다 피하고 도망 다니는 약한 겁쟁이로 만들어 간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가부장제와 미신 가득한 소승 불교가 오래 이어져 내려온 가족 문화 속에 있었다는 것이 나를 여성으로서 수치심과 낮은 자존감을 느끼도록 몰아갔다고 생각한다. 학교에 다니면서는 서열주의가 불러오는 수치심과 두려움의 타격을 입었고, 사회에 나가서는 어린 여자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과 희롱과 경멸을 헤쳐가야 했고, 배금주의와 물질주의는 가진 것, 소유한 것에 대한 타인의 시선들을 몹시 따갑게 만들기도 했다.
지금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면서는, '아시안 아줌마. 당신들의 특징은 이렇지. 영어는 못하면서 돈은 밝히지. 당신 같은 이방인이 우리 사회를 위해 뭘 할 수 있겠어?'라는 고정관념 가득한 이미지가 쉽게 몰아가는 감정들을 견뎌야 한다. 노인이 된다고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미래는 미래대로 아시안 노인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생각들이 두려워 독립적이고 새롭고 기발한 것을 시도하기 힘든 감정들을 견디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어딜 가든, 내가 어떤 모습이든, 시간이 얼마나 흐르건, 선입견과 편견은 어디에나 풍부하게 형성되어 있고, 아무 잘못도 없이 경멸당하고 조롱당할 일도 세상이 넓은 만큼 도처에 깔려있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은 언제나 누군가의 한마디 말, 스치는 시선을 통해 튀어나오게 되어 있다. 친해지고 싶어서 가까이 다가온 사람들조차도 관심과 충언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내게 없는 것, 내게 없어 보이는 것들 언급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사람의 모든 불완전한 것들이 더없이 쉽게 노출되고 밝혀지는 시대, 타인을 평가하고 언급해 줄 경로가 넘치게 많은 시대, 그만큼 감정은 더욱 공격당하고 무력해지는 시대, 통로는 많지만 관계는 쉽게 단절되고 분리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마음이 살아나 강해져야 한다
편견과, 편견이 투영된 말들은 언제나 있을 것이고 어디에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두려워하는 이상은 상처를 피할 수 없다. 모두에게 깍듯한 예의범절과 친절한 배려심을 장착시키자는 생각도 일리는 있지만, 사람은 어떻게든 예의범절 사이사이로 상대를 모욕할 길을 찾을 것이며, 모든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기란 나조차도 하기 힘들다. 또한, 내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 나 자신을 조절하고, 배려하고, 조심했다고 해도, 상대는 여전히 모욕감을 느낄 수 있고 상처받을 수 있다. 상대의 들끓는 감정까지 우리가 다 느끼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 어느 누구도 상처 주는 일 없이 친절하게 살겠다고 결심하고, 부드럽고 온화한 표현으로 스스로를 단련시켜 온 나이지만 때때로 누군가는 내 의도와 상관없이 상처받고 분노하는 것을 종종 경험했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각자의 마음이 어디에 민감한지 온전히 표현될 수도 없고, 그만큼 다 알고 대응할 수도 없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보편적 예의범절 기준을 갖추고 타인의 마음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노력도 해야 하겠지만, 그것에만 의존해 살아갈 수 없다. 약해져 가는 인간의 내면을 그대로 둘 수 없다.
나의 내면이 더 강하게 살아나야 한다.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말과 시선이, 마치 몰아치는 우박 서리 같고, 내 마음은 그것에 옴짝 없이 찢어발겨지는 얇은 비닐 조각 같은 것이었다면, 우박 서리를 내리지 말기를 하늘에 비는 것보다, 내 마음을 이루는 재료를 강화시키는 작업이 훨씬 더 도움이 되는 합리적인 일이다.
내 마음의 재료를 무엇으로 할까. 나무는 불에 취약하다. 시멘트나 대리석은 세상을 볼 수없도록 차단한다. 유리는 잘 깨진다. 강화된 방탄유리, 그래 이것으로 하자. 세상과의 소통을 막지 않으면서도, 모든 자극으로부터 단단히 마음을 보호하는 재료. 단절하지 않고 여전히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하면서도 나를 충분히 지키는 재료.
방탄유리로 내 마음을 짓고, 나는 끊임없는 연결을 시도하며 나아갈 것이다. 나는 현대 사회가 짓누르는 감정들에 억압되지 않을 것이다. 나의 관계들을 너무 약해진 내면이 다 망가뜨리게 두지 않을 것이다. 내 영혼을 두려움과 수치심으로부터 반드시 해방시키고 독립시킬 것이다. 단절이 아닌 연결을 지켜내고 나의 세계를 더욱 확장시켜 나갈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감정들을 무찌르고 내 마음의 땅을 되찾고 정복하는 매일 승리하는 마음의 나폴레옹이 될 것이다.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지고 비굴하게 사는 것은 매일 죽는 것이다. Death is nothing, but to live defeated and inglorious is to die daily.
이제 나는 내 감정을 자극하는 어떤 말 어떤 편견 어떤 무례함에도 결코 지지 않을 것이다.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관계를 무서워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은, 적에게 지는 것이고, 내 마음을 죽이는 것이다. 그것들에 정복당하고 죽었던 내 마음, 도망 다니고 비굴했던 내 관계의 땅을 반드시 살려내고 지키고 승리할 것이다. 매일 죽었었던 나이지만, 이젠 매일 살아날 것이다. 매일 실패했던 나이지만, 이젠 매일 성공할 것이다. 내 마음, 내 삶의 정복자로 우뚝 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