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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법의 정원 Feb 03. 2021

그래, 이 맛이야!




오해가 새로운 기회를 만들었다!



웃픈 나의 오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신혼 초, 처음 맞는 남편의 생일날이었다.

요리에 '요'자도 모르는 새색시는 남편 생일상만큼은 

그럴 사하게 한상 차려 주고 싶은 야망을 품고 있었다.



미역국+달걀말이+토마토야채샐러드+호박전+두부 부침 (요린이 도전과제)

불고기+잡채+밑반찬 (반찬가게 협찬)





주력 메뉴는 역시 미역국.

남편 출근시키고 신난 발걸음은 마트로 향했다.

미역은 '자른 미역' 을 사야 한다는 요상한 철학을 가지고 있어 한참을 미역 코너를 서성였다.

둘이 먹기에 알맞은 양을 고르고, 나머지 필요한 물건들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인터넷으로 미역국 외 다른 요리 레시피들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일단 미역을 불리라고 했으니 볼에 미역을 넣고 물을 부었다.

미역이 불려지는 동안 다른 요리들 레시피대로 하나씩 재료 손질부터 해 나갔다.


호박전을 한다고 밀가루 가루가 사방에 날리고 달걀물이 바닥에 떨어지고,

그릇이란 그릇은 죄다 나와 있고 요리 초보자답게 주방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초토화가 되었다.

사이드 요리에 집중하는 시간이 끝나고 대망의 미역국을 끓이려고 미역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다른 모습.

까무잡잡한 사각 초록 무리들이 둥둥 떠 있는 게 아닌가!


미역국을 끓여본 적은 없어도 먹어본 적도 미역이 불려지는 건 보았던 나인데,

실타래 뭉치처럼 엉켜있는 듯이 보여야 하는데 이건 너무 이상했다!!


인터넷을 다시 검색해 보고 둥둥 떠 있는 물체를 꺼내 보아도

도통 이 정체를 알 길이 없어 뜯었던 미역 봉지를 확인해 봤다.



아뿔싸!!!


볼에 둥둥 떠 있던 낯선 외계 생명체 같은 건 바로  미역이 아니라 다.시.마 였다!

불현듯  마트 미역 코너 앞에서 서성였던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다시마와 미역 두 종류가 같은 진열대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미역의 양을 가늠할 수 없어서 500g을 사야 할지 1kg을 사야 할지 

진열대 앞에서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던 내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고민 끝에 내가 집어온 것은 미역이 아니라 다시마 500g이었던 거였다.






어이 상실.

이 말이 이럴 때 쓰는 듯했다.

한참을 혼자서 다시마 봉지를 붙들고 웃었다.


엉망인 주방보다 더 엉망인 나의 멘탈!

다시 지갑을 들고 슬리퍼를 신고 나간다.

이번엔 미. 역 이 두 글자가 적힌 것을 반드시 쟁취하고 오리라는 비장함까지 더해졌다.


다시마를 미역으로 잘못 오해해 다시마국으로 생일상을 차릴 뻔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오해가 잘 풀려 남편 생일상엔 제대로 된 미역국을 올릴 수 있었다.


미역과 다시마와의 어설픈 오해 덕에

미역국만큼은 이제 자신 있는 요리로 거듭났다.


"그래, 이 맛이야~!"


다시마가 낳은 오해는 나를 미역국 전문가로 만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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