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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g Jan 03. 2024

전 세계적 저출산 현상에 대한 경제학적 답변

저출산 원인에 대한 경제학계의 연구동향과 한국 상황에의 적용에 관한 정리

저출산은 지난 세기에 걸쳐 진행된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인구 1,000명 당 출생자 수는 1960년 전 세계 평균이 31.9명에서 2021년 16.9명으로 거의 반토막이 났다. 저출산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되는 선진국의 경우, 대표적인 선진국 모임인 OECD의 인구 1,000명 당 출생자 수가 1960년 23.4명에서 2021년 10.5명으로 감소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전 세계적인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1960년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률을 경험한 국가 중 하나인 한국은, 1960년 42.6명으로 세계 평균을 상회하였으나 2021년 5.1명으로 OECD 평균보다 빠른 속도로 출산율이 하락하였다. 출산율 하락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아래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 선진국부터 신흥개도국, 더 나아가 저개발국에 이르기까지 최근 60여 년 간 출산율이 지속적으로 꾸준히 하락하는 현상이 공통적으로 발견되며, 하락의 추세 역시 국가별로 대동소이할 뿐 전 세계적인 흐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역시, 저개발국에서 신흥개도국으로 경제구조가 한 단계 성장한 1960~1985년 사이 출산율이 급격하게 하락하다 1990년 이후부터는 전 세계 하락 속도와 거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OECD와 한국이 보여주는 절대적인 1,000명 당 출생자 수는 세계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지만, 출산율이 저하되는 속도에 있어서는 생각보다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는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요인, 혹은 초국가적인 공통 요인이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이를 규명하고자 하는 많은 연구들이 있었다. 학제마다 조금씩 다른 시선으로 원인을 바라보았지만, 경제학의 경우 산업혁명 이후 본격화된 생산성 증대 및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 노동시간의 드라마틱한 변화 등 경제구조 변화를 중심으로 이를 관찰해 왔다. Guinnane (2011)의 선행연구 정리를 따라가다 보면 최근 100년 간 경제적 요인에 의한 출산율 변화를 경제학계에서 어떻게 설명해 왔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위에서 살펴본 인구 1,000명 당 출생자 수 통계자료가 신뢰할 만한 출산율 지표인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이 통계지표의 공식 명칭은 조출생률(Crude Birth Rate, CBR)로, 특정 기간 (보통 1년) 측정된 한 나라의 총 출생자 수와 총인구수를 이용하여 1,000명 당 출생자 수로 단위조정(scaling back)한 숫자다. 오직 총량 만을 고려하여 만든 이 지표에는 한 가지 큰 결함이 있다. 바로 연령별 인구 특성 및 연령대별로 상이한 혼인 구조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특정 기간 동안 가임기 여성의 인구가 비가임기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면, 조출생률 역시 비슷한 폭으로 증가해야 맞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가임기 여성의 인구가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증가했다고 해도 혼인 시기를 늦추거나 혼자 살기로 결심한 여성의 비중이 늘어난다면, 조출생률은 이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연유로 요즘 우리가 언론 등 매체를 통해 자주 접하는 출생률은 조출생률이 아닌 여성 1인 당 합계출산율(Cohort Fertility Rate, CFR)이다. 이는 여성 한 명이 가임기간 (15~49세) 중 출산할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수를 매해 변화하는 출산율 및 인구구조 등을 고려하여 추산한 값으로, 세대별로 상이한 인구 구조 및 혼인 연령 등을 반영하였다는 점에서 조금 더 현실적인 출산율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아래 그림은 한국, OECD, 전 세계 평균 합계출산율 변화 추이를 나타낸 그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60년 가임기에 속한 여성 한 명이 총 5.9명을 출산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2021년 이 수치는 0.81명으로 떨어졌다. OECD의 경우 (3.3명에서 1.6명)나 전 세계 평균 (4.7명에서 2.3명) 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출산율이 하락하였지만, 위의 조출생률과 마찬가지로 198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출산율 하락 속도는 OECD나 전 세계 평균에 비해 아주 약간 빠른 수준이다. 



지표에 의한 착오가 아니라면,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출산율이 공통적으로 하락하는 추세적 움직임의 원인을 높은 차원에서 찾아야 한다. 맬서스(Malthus)로 대표되는 고전적인 경제학자들은 출산율을 억제하는 대표적인 기제(birth control)로 실질 임금(real wage)과 출산율 간 관계성에 주목했다. 맬서스가 이야기한 '절망적인(dismal)' 세계는 과학의 발달에 따른 부양 능력의 확장 속도보다 인구 증가 속도가 더 빨라서 모두가 공멸하는 상황을 말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인구증가 속도를 늦춰야 한다. 개별 가구, 혹은 개별 가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특정 공동체에서 인구 부양 능력의 저하를 체감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는 실질 임금이었을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결혼을 금지하거나 성관계를 금지하는 등 (주로 교회를 통해 이러한 규제가 이루어졌다) 인구 억제 정책이 시행되었다. 하지만 산업 혁명을 거치며 인류의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증대된 이후 맬서스의 모형은 설득력을 잃어갔고, 이후 출산율과 가구의 실질임금 간 관계가 오히려 역(-)의 방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자 다른 이론으로 대체되어야 할 운명에 놓였다. 




 임금을 포함한 경제적 요인이 산업혁명 이후의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론적 연구는 Becker (1960)에 의해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베커의 이론은 미시경제학의 소비자 효용 극대화 이론을 바탕으로 부모가 얼마나 많은 자녀를 원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자녀 수요 함수 (Demand for Children) 형태로 표현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우선 자녀에 대한 수요는 횡단면적으로(cross-section) 부모의 소득에 반비례한다는 실증분석 결과에 대하여, 베커는 자녀가 부모에게 있어 열등재(inferior good)가 아니므로 자녀 수요의 소득 탄력성(income elasticity of children demand)이 음(-)으로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대체효과(substitution effect)의 결과라고 설명하였다. 부모에게 있어 자녀 출산이 기회비용은 시간(time)인데, 소득 수준이 높은 부모일수록 자녀 출산 및 양육으로 인해 희생되어야 하는 기회비용을 더 크게 느낀다는 것이다. 이를 연장시켜 생각해 보면, 자녀 1명 당 지출되어야 하는 비용(child cost)이 증가할수록 이 대체효과는 더 크게 느껴질 것이다. 베커의 후기 연구는 여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자녀 수요량과 자녀의 질(quality) 간의 관계를 "Q-Q model"의 형태로 표현하였다. 부모의 자녀 수요 함수에 잠재적인 자녀의 질이 포함된다면, 출산 및 양육을 위해 소요되는 비용의 일부 역시 이 카테고리 안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즉, 기본적인 출산 및 양육을 위해 고정적으로 지출되어야 하는 비용 (fixed cost, 고정비용)이 있는 반면, 자녀의 질적 성장을 위해 추가적으로 투입되어야 하는 비용 (variable cost, 가변비용)이 있는 셈인데, 베커는 자녀 수요량(quantity)과 자녀의 질(quality) 사이에 존재하는 한계 대체율(marginal rate of substitution)은 바로 이 두 종류의 비용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다산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던 우리 윗 세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부모는 자녀 한 명 한 명에게 신경을 쏟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자녀의 교육 수준을 강화하기 위해 지출되어야 하는 추가적인 비용을 보수적으로 고려할 것이다. ("네 동생 대학 보내야 하니 너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공장에 취직하거라") 하지만 최근처럼 가구당 한 명 정도의 자녀만을 갖는 요즘에는 그 한 명의 자녀에게 거의 모든 자본을 투입할 수 있다. ("학교 마쳤니? 태권도 학원 갔다가 영어 학원 다녀와야지. 아빠가 데리러 갈게") 이 "Q-Q model"은 역사적인 통계 추이를 상당히 정확하게 설명한다는 점에서 이후 오랜 기간 동안 많은 경제학자의 지지를 받아 왔다. 하지만 베커의 단순한 모형 외에도 우리가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가 몇 가지 더 있다. 아마도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급격한 출산율 감소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베커의 기본 모형보다 아래 소개하는 몇 가지 이론들이 더 설득력 있게 와닿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전 세계적인 출산율 저하 현상과 반드시 연결 지어 생각해야 하는 또 다른 전 세계적인 현상은 바로 사망률(mortality rate)의 하락 현상이다. Notestein (1945)은 사망률이 높은 국가일수록 요구되는 최소 인구 수준을 달성하기 위해 출산율을 높이는 경향을 보인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인구 전환 이론 (demographic transition theory)"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가 한국전쟁 이후 베이비붐 현상을 겪은 것도 이러한 논리에서 이해 가능하다. 의료 과학기술의 발달과 저공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구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된 국가에서 저출산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분석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사망률 지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영아 사망률인데, 의료 기술의 발달, 특히 예방접종의 보편적 확대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영아 사망률을 큰 폭으로 떨어뜨렸고, 이는 가구당 출산율을 하락시키는 직접적인 이유로 볼 수 있다. '퇴장'하는 인구가 적어지는 구조에서 혁신적인 생산성의 증대가 없다면, 국가 전체적으로 굳이 더 많은 출생을 간절히 원할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통계 자료와의 적합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이 이론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된다. 예를 들어 미국의 출산율은 사망률이 하락하기 수십 년 전부터 이미 하락 추세에 접어들었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낳은 아이가 질병에 걸려 일찍 죽을 위험이 여전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다음 출산을 꺼려하는 풍조가 이미 퍼져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론적으로도 이 인구 전환 이론은 베커의 "Q-Q 모형"에 의해 비판당할 수 있는데, 만약 사망률 감소가 온전히 외생적(exogenous)으로 자녀 수요량(demand for children)을 줄인다고 가정하더라도, 베커의 모형에 따르면 자녀의 질 향상을 위한 비용 (가변 비용) 대비 자녀의 수 증가를 위한 비용 (고정 비용)을 조금 더 저렴해지는 효과를 발생시키므로 결과적으로 출산율이 높아져야 한다는 모순에 직면한다. 한국전쟁 직후 빠른 속도의 경제발전을 이루기 전까지 한국의 영유아 사망률은 매우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경제성장률이 가파르게 증가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보건의료 서비스의 보편화에 의해 영유아 사망률은 큰 폭의 감소세를 보였으며 그 결과 국가 전체적인 사망률 역시 빠르게 감소하였다. (한성현-김일순, 1990) 미국의 사례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망률과 출산율 간 인과관계를 동시대적으로 추론해 볼 여지는 있는 셈이다. 1950년생인 나의 아버지의 경우 형제가 아버지 포함 총 10명이었지만, 이 중 4명이 어린 시절 사망하였다. 1980년생인 나의 누나의 경우 별다른 질병 없이 건강하게 영아 시기를 통과하였으며, 2년 후 태어난 내가 마지막이자 유일한 형제가 되었다. 하지만 과연 나와 누나를 낳은 부모님이 단지 '더 이상 아이를 낳을 필요가 없어서' 출산을 중단한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다. 




우리가 고려할 수 있는 두 번째 요인은 피임기술의 발달이다.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달한 콘돔의 제작기술 등이 불필요한, 혹은 예상치 못한 임신 가능성을 큰 폭으로 줄여주었다는 주장이다. 이는 부모로 하여금 "너무 많거나" "너무 적은" 자녀수의 발생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을 최소화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최적의 자녀수를 달성하게 하는 훌륭한 조절 수단으로 기능하였는데, 사회적 인식 및 법제적 환경의 변화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즉, 피임을 금기시하는 기독교 문화가 지배했던 유럽 대륙부터 서서히 피임을 금지하는 법안이 독소조항으로 인식되어 법률 상 폐지되어 왔으며, 피임에 대한 거부감이 현저히 낮아진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많은 부부들이 자녀 수를 적극적으로 조절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피임기술의 발전이 출산율의 '저하'와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주장에 상당히 많은 의구심을 보여왔다. 먼저 경제학자들은 콘돔의 사용 빈도 증가가 출산율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본격적으로 출산율이 하락하기 시작한 20세기 초반, 콘돔 하나의 가격은 당시 베를린 성인 노동자의 10~15일 치 임금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출산율이 하락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콘돔 사용 빈도수는 극히 제한적이었으며, 이것이 출산율 하락을 추동한 주요 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위의 "인구 전환 이론"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 오랜 기간 공통적으로 나타난 저출산 추세는 콘돔의 사용 등 국소적인 요소로는 완벽하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 콘돔 등 피임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사용했는지 여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이는 임신의 생물학적 주체인 여성이 얼마나 능동적으로 피임권을 사용할 수 있었는지 여부를 의미한다. 이 단락에서 정리하기에는 너무 광범위한 주제이므로 추후 별도의 글을 구성하여 본격적으로 이야기해야 할 것이지만, 남성에 의한 가부장적 문화가 상대적으로 훨씬 강했다고 생각되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훨씬 빠른 속도로 출산율이 하락하였다는 점에서 피임과 출산율 간 관계를 한국 상황에 적용하는 것에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 시기 한국의 출산율을 결정지은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산아제한 정책이었다)




그렇다면 다시 "Q-Q model"로 돌아가, 자녀의 출산과 양육에 소요되는 실질 비용의 증가가 기능하지 않았을지 살펴보아야 한다. 즉, 자녀 한 "단위"에 투입되는 비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개별 가구로 하여금 작은 규모의 가정을 꾸리게끔 강제하는 사회적 환경이 존재하였다면, 더 나아가 이 변화가 시대의 흐름에 따른 경제 구조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면 조금 더 선명한 설명력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자녀 양육에 소요되는 경제적 비용은 지난 세기 동안 그리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국제 무역의 심화에 따른 국가별 특화 (specialization), 세계화 (globalization)에 따른 제조업 등의 수직적 통합 (vertical integration) 등 국제적인 상품 판매 경쟁의 심화는 일상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대부분의 상품 가격을 큰 폭으로 떨어뜨렸다. 여기에는 식품류와 피복류, 가전제품 등 자녀 양육에 반드시 필요한 고정 비용이 큰 비중을 차지하므로, 큰 그림에서 볼 때 생활비의 증가로 출산율이 감소했다고 볼 만한 근거는 희박한 편이다. 자녀 양육의 경제적 비용을 증가시킨 요소로 거의 유일하게 지목될 수 있는 부분은 지난 세기 동안 전 세계에 걸쳐 공히 발생한 도시화 (urbanization) 과정일 것이다.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이미 19세기부터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었으며, 거의 모든 국가에서 도시화는 거주 비용의 증가로 귀결되었다. Haines (1989)는 1905-10년 미국의 지역 유형별 합계출산율을 추정하였는데, 교외 농촌 지역의 합계출산율이 6.0, 교외 비농촌 지역의 합계출산율이 4.0이었던 반면 도시 지역의 합계출산율은 2.7에 불과함을 밝혀냈다. 한국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주거비용을 출산율과 연결 지으려 한다. 빠듯한 근로소득에 비해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주거비용이 임신과 출산을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2022년 기준 전국의 합계출산율은 0.778이었으나, 전국에서 주거비용이 가장 높을 것으로 능히 예상되어지는 서울 지역의 합계출산율은 이보다 낮은 0.593이었다. 다른 광역시인 부산과 대구, 인천 역시 전국 평균을 하회하였다. 하지만 다른 광역시인 광주, 울산, 대전은 전국 평균보다 높은 합계출산율을 보였으며, 특히 거의 전 지역이 도시 지역이자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었던 세종시의 경우 1.121로 월등히 높은 출산율을 기록하였다. 더 나아가, 농촌 지역의 출산율이 월등히 높은 것도 아니었다. 전남, 전북, 경북, 경남 모두 1.0 이하의 출산율을 보였다. 도시화에 따른 주거비용 상승 만으로는 한국 전체적으로 낮은 출산율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도시화 과정에서 한정된 도시의 면적과 몰려드는 주거 수요자로 인한 공급-수요 불일치가 도시 지역의 주거비용을 상승시켰고, 이것이 추가적인 출산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논리는 넓은 범위에서 보편적 타당성을 획득한다. 그렇다면 농어촌 지역의 출산율 감소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먼저 도시 지역만큼은 아니었지만 농어촌 시골 지역 역시 이주 및 정착 과정에서 지대의 상승을 경험했다. 새로운 땅에 정착한 젊은 커플을 떠올려보자. 그들이 자식을 낳기로 결심한다면, 후일에 조금 더 저렴하게 땅을 구입할 수 있는 황무지로 자녀를 이주시키거나, 좁은 땅에서 함께 지낼 수 있을 정도로 적은 수의 자녀만을 낳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토지는 증식되지 않고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농사를 짓거나 축산업을 하는 지방의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유산 역시 한정적인 면적의 토지로 고정되기 때문이다. Sundstrom and David (1988)의 생각은 조금 더 급진적이다. 이들의 아이디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녀'를 어떤 '재화 (good)'로 볼 것인지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이들의 연구는 1840년 미국의 비농업 부문 노동시장의 기회를 나타내는 지표와 출산율 간 음(-)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실증분석 결과를 도출하였는데, 이 결과는 농촌 지역에서 태어난 자녀가 부모의 품을 떠나 비농업 분야에 종사할 확률이 증가할수록 부모는 자녀를 더 이상 낳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출산을 통한 자녀의 확보는 농촌 지역에서 추가적인 노동력 확보를 의미하였으며, 늙어가는 부모의 저하된 생산성을 보완하는 보험 (insurance)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조금 더 넓은 범위에서, 성인이 되지 않은 자녀를 노동시장에 활용하여 추가적인 수입을 확보하는 행위는 분명 부모 입장에서 자녀 양육의 비용을 감소시키는 효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이는 자녀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기능할 수 있으나, 19세기부터 미성년 노동에 대한 규제가 엄격히 시행되면서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이들을 이용하여 추가적인 소득을 올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 역시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출산율이 하락하게 된 광범위한 요인 중 하나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 글에서 출산율 하락 추세를 이야기함에 있어 '여성 (female)'을 본격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이제 출산과 양육의 '기회비용 (opportunity cost)' 증가를 출산율 하락 현상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고려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여성의 사회진출, 혹은 여성 노동력의 본격적인 공급 현상을 이야기해야 한다. 산업혁명 초기 단계부터 여성이 생산 공정의 각 부문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폭발적으로 증가한 생산기술을 경험한 많은 산업 분야에서 추가적인 노동력의 공급을 간절히 원했고, 미성년 노동과 함께 여성의 노동이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역설적으로 가임기 여성을 고용하기 꺼려하는 오래된 사회적 풍조 역시 이때부터 태동되었다. 특정 공간에서 타인과 함께 작업해야 하는 산업 분야의 경우 기혼 여성의 고용을 노골적으로 거부하였으며, 이는 가임기 여성이 결혼을 연기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Crafts, 1989)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처한 불리한 여건은 남성과 여성 간 실질임금 격차로도 확인된다. Schultz (1985)는 1860년부터 1910년까지 스웨덴의 시계열-횡단면 자료를 사용하여 실증분석을 실시하였는데, 연구 결과 남성 임금 대비 여성 임금 비율이 해당 기간 스웨덴 출산율의 약 25%를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일한 노동력을 제공함에도 불구 남성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는 경험, 혹은 출산 가능성 만으로 노동시장에서 불리한 여건에 처하게 되는 경험은 여성으로 하여금 출산의 기회비용을 높게 책정하게 만든다. 아이를 낳으면 더 많이 잃을 것이다. 최대한 아이를 낳지 말고 오래 버텨야 한다. 그래야 겨우 남성의 임금을 따라갈 수 있다. 여성의 사회활동 참여는 여성의 혼인 시기를 늦추고 출산 시기를 지연시켜 가임기 중 출산 확률을 낮춘다. 미국이나 스웨덴 같은 선진국에서 오래전 정립된 이론이지만, 현시대 한국 사회에도 공명하는 바가 적지 않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딩크족'이라 불리는 기혼 커플 중 상당수가 출산 및 육아로 인한 경제력 저하를 우려하여 출산을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결혼 시기의 지연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을 뿐 아니라 기혼 부부의 출산 결정 역시 빠른 속도로 지연되고 있다. 아이를 낳으면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출산 휴가 및 육아 휴직 과정이 사회활동의 경쟁력 저하 및 기대소득의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베커의 "Q-Q 모형"에서 자녀의 질 (quality) 향상을 위한 가변비용 구조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이 가변비용 구조를 한 번 뒤집어서 다시 질문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한 단위의 가변비용 투입에 따른 기대수익 (return)이 증가하였는가?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녀의 질 향상을 위한 교육 (education) 부문의 비용이 증가, 혹은 감소하였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정규(의무) 교육의 확대는 지난 세기 동안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현상이었다. 이를 통해 교육의 비용이 획기적으로 감소하였음을 물론 문맹률 역시 큰 폭으로 하락하였다. 문맹률은 교육의 성과를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이며, 교육에 따른 자녀의 질적 향상을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기본적인 자녀의 질 향상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교육기간, 즉 시간 (time)이라는 기회비용은 여전히 존재한다. 비록 정규교육 과정이 무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자녀가 학교에 가지 않고 노동에 투입되었다면 회득하였을 기대소득은 여전히 기회비용으로 계상되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기회비용을 여러 가지 비용 중 하나로 고려한다. 회계사들은 이것이 현실화되지 않은 비용이라는 이유로 실제 비용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회계적 시작으로 보면 무상교육에 따른 문맹률의 감소는 사회 전체적인 자녀의 질 향상을 발생해 출산율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인식할 수 있지만, 경제학적 시각에서 보면 무상교육은 그 자체로 미성년자를 학교에 묶어두는 효과를 발생시키므로 (어떤) 부모 입장에서는 오히려 자녀를 덜 낳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그러면 교육에 따른 기대수익 (return)은 무엇일까? 높은 교육 수준은 상대적으로 높은 평생 소득을 기대하게 만든다. 중학교 졸업자보다 대학 졸업자의 평균 소득이 더 높으며, 박사학위 소지자의 1년 차 연봉은 학사학위 소지자의 1년 차 연봉보다 높다. 부모 입장에서 보면, 소수의 자녀에게 집중적으로 자본을 투입하여 더 나은 소득을 보장케 하는 것이 많은 자녀를 양육하여 상대적으로 낮은 소득을 고르게 분포시키는 것보다 현명할 선택일 수 있다. 왜냐하면, 뒤에 이어서 이야기할 '보험으로서의 자녀' 역할이 최근 큰 폭으로 감소하였기 때문이다. 


자녀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저 밝고 건강하게 자라주어 부모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면 자녀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일까? 경제학자들은 그보다 조금 더 냉정한 판단이 출산 과정에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보험에 가입하는 이유는 불확실성 (uncertainty) 때문이다. 미래에 언제 다칠지 모르고 어떤 병에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현재 소득의 일부를 포기하여 미래 예상치 못한 사고에 대한 보상금액을 적립한다. 여기에 더해, 성인 부부의 소득과 지출은 매 시기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한참 소득이 좋은 중장년층 기간에는 지출보다 수입이 더 많을 수 있겠지만, 은퇴 이후 소득이 빠르게 감소함에도 불구 기본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생활비가 존재하므로 이때에는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게 된다. 평생 소득-지출 불일치를 미리 예상한 똑똑한 성인이라면 현재 발생한 잉여 소득의 일부를 미래를 위해 저축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많은 부모들이 다산을 일종의 보험으로 인식했다. 지금은 당장 힘들어도 자녀를 많이 낳아 키워두면 나중에 부모가 늙고 병들었을 때 '효도'의 과정을 통해 자신을 보살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가 많이 발견된 것도 사실이다. 늙은 노모를 모시고 사는 환갑이 넘은 '효자' 아들의 이야기가 당신의 아버지일 확률이 그리 낮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최근 사회적으로 발달한 보험 체계가 '보험으로서의 출산'의 효율성을 저하시켰다고 지적한다. 각종 연금제도의 제도적 발달이 자녀의 대체재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자녀는 늙고 병든 부모를 보살피지 않을 수 있다. 자녀에 대한 투자 행위는 생각보다 큰 리스크가 존재하는 셈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확립된 보험제도는 위와 같은 '불효 리스크'가 존재하지 않는, 매우 안전한 투자 방식이다. 가임기 성인 입장에서는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출산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차라리 출산과 육아에 투입되어야 하는 돈을 차곡차곡 모아 안전한 금융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더 나은 노후대비 수단이 될 것이다. 실제 유럽의 경우, 사회 보험제도의 발달 시점과 출산율 저하 시점이 정확하게 맞물려 돌아간다는 실증분석 결과가 다수 존재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부모-자녀 간 유대관계는 어쩌면 사랑과 같은 감정적인 요소가 아니라 투자와 기대수익이라는 경제적 요소에 의해 더 정확하게 설명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 서글퍼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자녀 출산의 대체재가 금융시장에 존재한다는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꽤나 흥미롭다. 




지금까지 출산율 저하 현상의 원인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생각을 요약하여 정리해 보았다. 그중 어떤 요인은 한국의 상황에도 접목해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짤막하게 직관적인 설명을 덧붙여 보았다. 콘돔 등 피임기술의 발달에 따른 불필요한 임신 가능성 하락, 사망률 하락에 따른 추가적인 출산 수요 감소, 베커의 자녀 수요 모형, 도시화에 따른 주거비용 상승과 경제적 압력, 그리고 사회적 보험 체계 발달에 따른 보험으로서의 자녀 역할 축소까지, 실로 다양한 이론적 접근과 실증분석의 토대 위에서 출산율 저하를 설명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다. 이 중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인지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이 이론들을 훑어보는 것 만으로 단지 돈 몇 푼 더 쥐어주면 아이를 더 낳을 것이라는 허황된 기대 위에 수립된 각종 저출산 관련 정책이 얼마나 멍청한 것인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출산 관련 정책은 역사적인 사회구조의 변화부터 경제적 계층의 이동 방향, 미시적인 부모-자녀 간 관계의 변화까지 다층적으로 이해한 뒤 세심하게 설계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한국의 정책은 대부분 금전적 보조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 것이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인식은 앞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서두에 등장한 두 개의 그림에서 한국의 출산율과 관련하여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는 주요한 특징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1960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출산율 하락 속도가 선진국, 혹은 전 세계 평균보다 훨씬 빨랐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정부 주도의 산아제한 정책이 큰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 한국사회가 빠른 속도로 재편되었음을 상기한다면, 정책적 요인 외에 사회구조적 변화에 의한 개인의 주체적 판단이 개입했을 여지 역시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시기 한국의 가파른 출산율 하락 속도에 대해 추가적인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둘째, 2021년 현재 시점에서 최종적으로 결착된 합계출산율의 수준 (level)이 OECD나 전 세계 평균에 비해 현격하게 낮다는 점이다. 즉, 출산율 하락 속도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비슷한 수준이라고 할지라도, 인구수 대비 태어나는 영아의 절대적인 수 (비율) 자체가 현저히 낮은 것이다. 이는, 위에서 자세히 살펴본 출산율 저하에 영향을 미치는 잠재적 요인들 중 일부, 혹은 전체가 한국사회에 상대적으로 강하게 작용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대체 어떤 요인이 현재 한국사회에서 아이를 낳는 것을 막고 있을까? 이에 대해서도 고민할 지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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