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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g Apr 11. 2024

장혜영과 정의당을 떠나보내며

지지하고픈 진보정치인을 찾기 어려워지는 극단주의 일변도의 정치판을 보며

장혜영 의원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그가 '생각많은 둘째언니' 타이틀로 다큐멘터리 영화의 펀딩을 하면서부터다. 소셜펀딩 사이트에서 그의 영화 계획을 접하고 별다른 거부감 없이 소액을 펀딩하였는데, 이후 정기적으로 보내오는 소식지 차원의 메일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퍽 사려깊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설에서 나온 발달장애 동생과 자신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는 이후 <어른이 되면>이라는 제목으로 완성되었고, 시사회까지 초대받았지만 이차저차하여 가지 못했다. 그가 연세대를 중퇴하며 게시한 대자보를 통해 유명해졌다는 사실도 그 즈음 알게 되었다. 


몇 년 후 그가 정의당에 영입되어 정치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적지 않게 놀랐음에도 꽤 괜찮은 선택이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그의 영화와 대자보는 내게 다분히 정치적으로 읽혔다. 하지만 그가 전달하는 메시지에는 좋은 의미의 정치성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실현되는 수준으로 행동하되 그 의미를 널리 알림에 있어 훨씬 더 높은 차원에 도전하는 인상을 받았기에,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정치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기성 정치인이 갖는 분명한 한계 - 현학적이며 일반인의 삶과 괴리된 담론만 읊어대는 - 를 극복하기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국회의원이 된 후 그의 행보가 모두 마음에 들었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류호정이라는 가짜 정치인, 돌팔이 정치인과 청년 비례대표 출신이라는 꼬리표로 함께 묶여 버리는 바람에 장혜영만이 갖는 진중함이 어느 시점부터 가볍게 비추어지기 시작했다. 박원순 장례식 조문 거부 발언 등 경험 부족에 의한 정무적 판단 미숙으로 안좋은 이미지를 획득해나가는 모습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대표발의한 법안들 - 장애인활동 지원 법률개정안, 차별금지법안,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 등 - 은 소수자의 보호와 다양성의 보존을 위한 분명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가 300명 중 한명으로 존재하여 지난 국회가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그가 속한 기재위는 지금까지 전문가들에 의해 선점된 영역으로 인식이 되었기에 전문가들의 틀에 박힌 시선 이상의 무언가가 나오기 힘든 상임위였다. 하지만 그가 들어오고 나서 그나마 신선한 시각이 더해졌다고 생각한다. 


그가 마포을에 출마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돌을 던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곳은 이번에 낙선한 뒤 10년, 20년 노력한다고 해서 당선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홍대입구와 합정 주변 붉은 벽돌 빌라에 삼삼오오 모여사는 청년들과 가난한 예술가들은 그 지역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곳에는 학군을 보고 들어온 중산층과 아파트 가격 상승을 기대하며 투자한 자산가들, 그리고 주머니 얇은 청년들을 공략하기 위해 최저임금으로 노동자를 후려치는 대기업과 소규모 자본가들이 득실거리는 곳이다. 나는 그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90년대 중반, 홍대입구에 새로운 문화의 흐름이 처음 시작되던 그 때부터 나도 그 근처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해서 이 동네의 변화상을 제법 잘 아는 편인데, 지금의 마포는 그 때와 많이 다르다. 그에게 우호적인, 그의 친구들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겠지만, 정치인으로 입지를 다지기에는 녹록치 않은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하고자 했던 장혜영이 국회에서 몸담을 수 있었던 공간은 정의당이 유일했을 것이다. 정의당은 그녀의 철학을 구현해내기에 완벽한 플랫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선택할 대안도 딱히 없어보였다. 민주당은 이미 청년이나 소수자를 위한 가치를 추가적으로 만들어내기에는 지나치게 비대해졌으며, 통합진보당의 실질적 후신인 진보당이나 당시 원외 정당이었던 녹색당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하기에도 여의치 않았을 것이다. 여튼,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여 출범한 정의당은 장혜영과 류호정이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페미니즘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거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페미니즘을 '구매하는' (혹은 '구독하는') 특정 계층을 적극 공략하였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나는 이것이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진보정당이 껴안을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운명이자, 거스를 수 없는 파국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미투, 래디컬 페미니즘, 백래쉬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정의당은 표류했다.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 논란과 조국 사태에 대한 반응 등 민주당과의 관계정립에 실패하는 과정이 더해지면서 스스로를 일반 대중으로부터 고립시키는 트리거로 작동하였다. 페미니즘을 제외하면, 정의당은 지난 몇년간 아무런 가치도 제시하지 못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쳐도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광범위한 소수자 그룹인 여성의 목소리를 정치적 언어로 대변하는 것은 상당히 고차원적인 노동에 해당한다. 정의당은 이것을 잘 해내지 못했다. 그 결과는 일부 래디컬 페미니스트를 제외하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정당으로의 몰락이었다. 나는 장혜영이 래디컬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지 않고, 정의당이 그런 가치를 적극 옹호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정치는 대중의 언어로 해석될 수밖에 없으며, 일련의 과정에 대한 결과로 이들은 그러한 바구니 속에 가두어졌다. 


노동운동과 페미니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진보당과의 진보정당 선명성 경쟁에서도 밀려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 '조국혁신당'이라는 유치한 이름이 상징하는 것처럼 - 조국이라는 개인의 팬덤에 기대어 선정적인 문구를 남발한 정당보다 낮은 득표율을 기록한 것보다 정의당에 더 뼈아픈 패배는, 정의당의 정확히 반대지점에 서서 우경화한 2,30대 남성을 자신의 지지세력으로 결집시킨 이준석 개인보다도 못한 성적표를 받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류호정이 이준석과 결탁하는 모습까지 지켜봐야 했던 것은 정의당이나 장혜영에게 상당히 아픈 부분이었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는 유리장벽를 낮추기 위해 고군분투한 노력은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 간 갈등에 더하여 젊은 세대간 남녀 갈등이라는 새로운 양상의 근심거리를 우리 사회에 추가하는 방식으로 귀결되었다. 이것은 정의당이 잘못만은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이준석은 살아남았고 정의당은 패배하여 국회 밖으로 밀려났다. 이준석과 젊은 극단주의는 국회 안에서 여러가지 방식으로 소수자의 보호를 위협할 것이다. 민주당이 제안한 비례대표 연합체로의 합류까지 거부하며 정의당은 대체 무엇을 지키려고 했던 것일까. 대변자를 잃은 많은 이들의 슬픔은 심상정의 정계은퇴 정도로 달래질 차원의 것이 아니다. 


정의당이 없는 국회를 보며 나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오직 나만이 옳고, 승리를 위해서는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도 정당화되며, 다양성에 의거한 가치는 패배 앞에서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식의 주장은 국민의힘 뿐 아니라 민주당 내에서도 이미 주류적인 시선이 되었다. (그런 방식으로 이겨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반문하고 싶다) 이재명도 싫고 윤석열도 싫은데 조국은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번 총선 결과는 어떤 의미인가. 내가 원하는 정책을 약속한 정당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리 객관식이라지만, 눈에 불을 켜고 찾아도 정답의 근처라도 다가간 정당이나 후보는 쉽게 보이지 않았다.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이자 근심거리인 기후위기를 예로 들어보면, 모든 정당이 극단적인 해결책만을 제시하였다. 기후위기 문제는 경제성장률의 포기를 전제로 한 회귀적 환경보호나 묻지마식 화석연료 감축과 같은 극단적인 발상에 기대어 해결되어서는 안된다. 엄밀한 과학적 분석 위에 사회적 논의와 타협에 의해 신중하게 포기해야 할 것과 육성해야 할 부분을 정해야 하는데, 선택지에 적힌 정당들은 징벌적 세금 부과, 강제적 에너지 전환, (재원을 알 수 없는) 녹색금융 기금 조성 등 자극적이고 감정적인 정책들만 내놓았다. 대화를 할 수 있는 중간지대, 혹은 타협과 양보를 먼저 제시하는 포용적 자세는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기후위기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자세는, 색깔만 다를 뿐 '내가 옳으므로 (나와 생각이 다른) 너와 싸우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다들 비슷해보였다. 


장혜영이 다시 정치판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그 역시 극단적인 정치인 중 한명이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지난 몇년간 주의깊게 지켜본 정치인으로서의 장혜영은 충분히 생각이 많고, 아직 할 말이 많아 보인다. 섣부르게 타인을 적으로 규정해 싸잡아 공격하는 평범한 정치인들과는 결이 다르다고 느꼈다. 그가 잘못된 플랫폼에 들어가서 고생을 한 것인지, 그 자체로 정의당이라는 공간을 변질시킨 것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몇 년 후 정의당의 옛 구성원들과 그가 다시 기회를 얻게 된다면, 그 때에는 조금 더 정제된 모습으로 더 나은 정책들을 입안했으면 좋겠다. 더이상 심적으로 비빌 구석이 없는 정치판을 바라보는 내내 조금 더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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