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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g May 25. 2024

뉴진스와 민희진을 분리하기

거대자본이 지배하는 케이팝 산업에서 상품과 아티스트의 경계는 어디일까

뉴진스 데뷔 초기부터 버니즈로서의 정체성을 변함없이 지켜온 사람으로서, 5월 31일 열릴 예정인 어도어 주주총회를 앞두고 현재까지 발생한 하이브-어도어 간 충돌 및 민희진, 그리고 뉴진스를 둘러싼 여러 논란들에 대하여 개인적인 생각을 글로 정리할 필요성이 있어 이 글을 쓴다. 


현재까지 드러난 논란 속 양측의 주장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하이브는 민희진과 어도어측이 대주주인 하이브측으로부터 회사 경영권을 찬탈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했다고 의심한다. 민희진은 그 주장에 대해 반박하며, 오히려 하이브의 또다른 자회사가 런칭한 신인 걸그룹이 뉴진스의 많은 부분을 모방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뉴진스의 상업적 성공 과정에서 하이브측으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으며, 민희진 개인과 하이브가 맺은 계약 역시 불공정한 부분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하이브와 어도어 간, 정확히는 하이브와 민희진 간 논쟁에서 양측을 지지하는 집단 역시 최근 입장을 분명히 했다. 어도어 소속 그룹 뉴진스의 팬덤 버니즈는 "민대표와 뉴진스가 앞으로도 함께 하는 것이 아티스트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민희진을 지지하는 탄원서를 제출했고, 하이브 소속 프로듀서 등은 "한 사람의 일탈을 막고 산업 전체의 발전을 위해" 하이브측을 지지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 와중에 뉴진스는 새로운 EP를 들고 복귀했다. EP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How sweet"과 "Bubble gum" 더블 싱글에 해당하는 이들의 신곡은 "Hype boy"나 "ETA", "Ditto"에서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케이팝 걸그룹 사운드 범주 내에서 시도했던 새로운 스타일은 거의 보이지 않으며, 뉴진스가 이미 구축해둔 사운드스케이프를 충실하게 재현하는 수준에서 안정적인 펀치라인을 구성한 정도로 느껴졌다. '더이상의 충격은 이제 없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아쉬움이 있었다. 


뉴진스의 복귀와 상관 없이, 31일 주주총회가 예정대로 열린다면 민희진은 어도어로부터 해고될 것이고, 하이브 자회사인 어도어와의 계약기간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뉴진스는 민희진과 결별한 상태에서 활동을 이어가거나, 최소한 계약기간 중 의무를 다해야 한다. 아마도 버니즈 측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이 지점일 것이다. '민희진 없는 뉴진스가 가능한가'에 대한 의구심, 혹은 염려가 분명 존재한다. 상업적 성공을 거둔 케이팝 걸그룹을 설계하고 디자인한 가장 중요한 공헌자로 민희진을 거론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이제부터 우리는 '민희진 없는 뉴진스도 아티스트인가' 라는, 음악 산업의 역사 내내 계속되어온 뿌리 깊은 논쟁 주제인 제작자-뮤지션 간 관계에 대해 케이팝 산업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다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민희진은 그 역사적인 기자회견에서 뉴진스의 상업적 성공에 대한 자부심을 여과 없이 표현했다. 스스로를 "맘"이라고 지칭하며 뉴진스 멤버들과의 관계가 매우 돈독하다는 사실을 부각시켰으며, 더 나아가 하이브에서 뉴진스 데뷔를 위해 투자한 거액의 자본금 이상을 벌어들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모두 사실로서, 민희진 개인이 갖는 산업 내에서의 역량이나 영향력을 본인의 입을 통해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나는 그 기자회견에서 드러난 민희진 개인의 인성 - 욕설을 사용하여 상대를 비난하거나 지나친 자의식을 바탕으로 타 걸그룹을 비하하는 등 - 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그녀의 태도에 동화되어 - 몇십억원의 연봉에 더해 자산으로 1,000억원을 벌어들인 자본가에 자신을 투영시키는 일반인들의 심리가 잘 이해되지는 않지만 - 감정적으로 민희진을 응원하는 이들은 이 논쟁에서 완전히 별개의 존재, 즉 관람객에 가깝다. 내가 그 두시간이 넘는 기나긴 기자회견에서 인상 깊게 느낀 것은, 민희진이 그토록 사랑하는 뉴진스의 '아티스트로서의 성과'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민희진이 뉴진스 멤버들을 아티스트로 생각하는 것일까, 혹은, 자신이 잘 빚어낸 상품으로 인식하는 것일까? 


케이팝 산업의 성장과 진화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첫째, 멀티-플랫폼이 보편화된 이 시대에도 여전히 모든 아이돌 그룹은 '음악'으로부터 출발한다. 음원 발매 이후 예능에 나가든 드라마를 찍든 마케팅 방향성은 다양하게 뻗어나가지만, 최초 모든 아이돌 그룹은 싱글과 앨범을 발매하고 음악방송에 출연하여 퍼포먼스를 선보인 후, 시상식이나 대형 음악 페스티벌에서 라이브로 원곡을 완창하여 음악가적 면모를 과시한다는 전형적인 음악산업의 공식을 여전히 충실히 따르고 있다.  둘째, 그래서 케이팝 산업에서도 여전히 음악은 매우 중요한 구성요소인데, 이 산업내에서 생산되는 음원은 매우 파편적이고 다원적인 차원에서 글로벌 양식에 맞추어 제작된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작곡가와 프로듀서, 작사가가 동원되어 3분이 넘지 않는 노래를 '조립'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자본이 투입된다. 이후 소요되는 마케팅 비용과 뮤직 비디오 등 관련 컨텐츠 제작비용까지 고려하면, 케이팝 산업에서 생산되는 음악은 사실상 자본투입량에 비례한다고 넉넉하게 추측할 수 있다. 셋째, 아이돌 '뮤지션'을 스타덤에 올려 놓아 대중으로 하여금 그/그녀에 대해 아이돌화(idolizaiton)를 완료하게끔 부추기기 위해, 음악 산업의 바깥 테두리에 있는 거대자본이 추가적으로 이용된다. 뉴진스의 경우, 데뷔 초기부터 멤버별로 유명 럭셔리 브랜드의 홍보대사 마케팅이 들어갔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멤버들의 이미지를 럭셔리 브랜드의 이미지와 연결시키는 전략이 사용되었다. 뉴진스의 성공을 떠받든 것은 이 경우에도 자본이었다. 넷째, SM 시절 민희진에게 명성을 안겨준 아이돌 그룹의 '이미지화' 작업은 이제 보편화되었으며 시스템적으로 체계화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광야'를 떠도는 에스파부터 '두려운 것이 없는' 르세라핌까지, 모든 아이돌 그룹은 각자의 서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서사구조에 맞추어 음악 스타일, 패션, 메이크업 등 모든 차원에서 통일된 이미지화가 이루어진다. 이 역시 자본의 힘으로 많은 부분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음은 의심의 여지 없는 사실이다. 서사구조를 판매하는 대표적 문화산업인 영화의 경우만 봐도 자본의 힘은 서사의 구축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결국 내가 케이팝 산업에서 배운 것은 대기업의 시스템적인 자본투입 능력이 아이돌 그룹의 성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이다. (여담이지만 그래서 이 공식을 깨려는 새로운 시도들, 예컨대 영파씨나 키스 오브 라이프 등의 시도에서 더 많은 흥미를 느낀다) 다시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와서, 뉴진스는 CEO 민희진이 진두지휘하는 어도어라는 공장에서 잘 만들어낸 생산품인가, 아니면 자본과 시스템의 지원을 힘입어 완성된 아티스트의 예술적 결과물인가? 만약 버니즈 팬덤의 탄원서가 주장하는 것과 같이 "아티스트의 성공을 위해 민희진이 필요하다"면, 뉴진스는 역설적으로 아티스트가 아닌 것이 된다. 한 예로, 어도어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민희진을 비롯한 프로듀서진의 리딩을 충실히 따르며 보컬 녹음을 하는 뉴진스 멤버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민희진 등 프로듀서진은 "너무 잘했어", "멋지다" 등 멤버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응원을 수시로 보내며, 멤버들은 녹음을 잘 끝내서 기분이 좋다는 한결된 소감을 영상을 통해 전한다. 이것이 '아티스트적 행위'의 기록인가? 그 어떤 항의나 자기 의견 개진도 없이, 이미 완벽하게 만들어지고 가이드 보컬까지 입혀진 음원 위에 멤버들의 목소리를 얹는 행위만으로 그들을 '아티스트'로 인정할 수 있는가? 백번 양보하여 그 메이킹 영상까지 뉴진스의 '이미지화'를 달성하기 위한 홍보수단이라고 인식하고 뉴진스의 몇몇 노래에 멤버들이 작사가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을 기억하려 애써보아도, 민희진과 어도어는 뉴진스가 '민희진 없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증명하지 못했다. 


여기서 민희진이 비판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점을 찾을 수 있다. 뉴진스는 애초에 하이브가 없이는 탄생할 수 없었다. 민희진은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다른 곳에서도 많은 오퍼를 받았다고 주장하였지만, 100억원이 넘는 거대자본을 신생 자회사에게 투자하여 뉴진스라는 '상품'을 효과적으로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는 기업은 전세계에 그리 많지 않다. 한국에서는 사실상 하이브 하나였을 것이다. 때문에 민희진이 "이미 그 돈 다 벌어다 줬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궁색하다. 이 프로젝트가 실패하여 투자원금을 회수하지 못했다 가정해도, 뉴진스가 대기업의 거대 자본에 의해 탄생한 산업 내 상품으로서의 속성을 갖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희진이 없어도, 혹은 하이브가 없어도 뉴진스는 없었다. 


역설적으로, 민희진과 스스로를 분리하는 과정을 통해 뉴진스는 비로소 독립적인 아티스트로 평가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물론 하이브가 현재 민희진과의 분쟁을 통해 궁극적으로 달성하려 하는 목적이 이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민희진을 조직에서 축출한 이후 하이브는 뉴진스의 커리어를 망치는 방향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 팬으로써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덤이 그들의 아이돌을 예술가라고 인식하고 싶다면, 그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 바닥에서 성공하고 싶은 아티스트는 자본이라는 요소를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지만, 예술적 영역의 창조성이라는 완전히 다른 요소도 갖추어야 한다. 케이팝 산업이 이 경계에서 모호하게 존재하는 점이 이 논쟁의 결론을 내리기 힘들게 만든다. 너무 예쁜 우리 하니는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춘다. 스타일도 너무 좋다. 이것이 하니 개인의 자아, 정체성, 아우라가 반영된 예술의 영역에서 만들어진 개인의 창작품인가, 아니면 잘 만들어진 상품으로서의 '기능'이 충실히 수행되는 것인가. 돈을 받고 팔리는 상업 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던져지는 질문이지만, 거대 자본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케이팝 산업에서 뉴진스의 퍼포먼스와 이미지를 바라보는 양가적인 시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민희진은 기자회견에서 뉴진스의 이 성과가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정작 뉴진스라는 아티스트 본인에게 돌아가야 할 정당한 평가의 기회를 박탈했다. 버니즈로서 화가 나는 지점은 여기다. 


그렇다고 내가 하이브를 응원하는 것은 아니다. 나와 같은 일반인이 모르는 속사정이 더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무엇보다 뉴진스의 커리어가 조기에 종결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하지만, 최근 신곡을 들은 후 감정이 조금 더 복잡해진 것도 사실이다. '7년 수명'이 결정된 채 자기 복제 만을 반복하다 흐지부지 해체하는 과거 다른 아이돌 그룹처럼, 뉴진스도 언제부터인가 같은 음악, 같은 미소, 같은 표정을 팔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작곡, 작사, 프로듀싱을 한다고 해서 모든 아이돌이 아티스트로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음악은 매우 주관적인 영역에서 소비되기 때문에 정답이 따로 없는 상품이고 개별 소비자의 판단이 군집 형태로 누증되면 사후적으로 공감대 정도를 형성할 수 있을 따름이다. 궁극적으로 뉴진스 멤버들이 작곡이나 작사를 하는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는 곡작업 참여 없이도 충분히 훌륭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즉 싱어송라이터 = 예술가 공식은 모든 경우에 성립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부문에서든 예술가의 경계를 극복하는 과정은 충분히 주체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뉴진스는 아직 그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그 기회를 영속적으로 박탈당할까봐 몹시 걱정이 된다. 


마지막으로, 하이브와 민희진 간 갈등은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주인-대리인(principal-agent problem)의 전형이다. 회사의 주인(principal)은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여 자본시장에서의 회사 가치와 주주의 배당을 높이고 싶어하지만 주인이 고용한 회사의 운영자(agent)는 개인의 수익 - 연봉 및 보너스 등 - 을 극대화하고 싶어하므로, 회사 내 거버넌스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언론매체를 통해 하이브와 민희진이 맺은 계약 구조가 지리하게 반복되어 전달되는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회사에서 민희진에게 정당한 대가를 제공해주었다면 민희진 측의 주장은 설득력을 다시 한번 잃게 된다. 만약 회사와 민희진이 맺은 계약구조 상 불공정 요소가 충분히 발견되었다면 반대로 민희진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이것은 뉴진스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지만 이 논란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열받는 또다른 지점은, 뉴진스와 아무 상관 없는 논란에 휩쓸려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뉴진스를 여기에 끌어들인 사람도 민희진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 어른이라면, 개인이 혼자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아이들 끌고 들어가서 "맘" 타령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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