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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센티아 May 24. 2022

같이 여행하기 좋은 사람과 결혼해라

파이어 부부


남편과 처음 만난 날로부터 결혼식을 올리기까지 정확히 1년이 걸렸어요.

2013년 1월 26일 한 밤중에 이태원의 클럽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2014년 1월 26일 함박 눈 펑펑 내리던 정오에 강남에서 결혼식을 올렸죠.


저희는 만나기 시작하자마자부터 여행을 엄청나게 다녔습니다. 둘 다 나돌아 다니는 걸 엄청 좋아했고 같은 회사에서 해외 마케팅 일을 하고 있어 해외 출장도 잦았거든요. 


첫 번째 데이트는 회사 지하 카페에서 잠깐 만남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클럽에서 잠시 스치고 난 후 전화번호 교환도 하지 않았는데, 글쎄 회사 인트라넷 채팅을 통해 저를 찾아낸 남편이 말을 걸어왔죠. 그래서 업무 중에 잠시 짬을 내어 커피 한 잔에 이야기를 나눈 게 다였어요. 


그때가 밸런타인 직전이었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잊을 수가 없는 게 2월 14일에 회사에 출근을 해보니, 제 자리가 온갖 초콜릿 상자와 꽃으로 장식이 되어 있고, 메모 한 장이 남겨 있었거든요. 바로 전날 중남미로 긴 출장을 가니 자신이 돌아오면 꼭 다시 만나자고 적혀있었죠. 그런 감동 이벤트를 남겨두고 떠난 남자인데 당연히 다시 만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ㅎ



두 번째 데이트하던 날에 남편은 저희 집 앞으로 아무런 예고도 없이 캠핑카 한 대를 타고 나타났드랬어요. 당시만 해도 캠핑카 여행이 지금처럼 흔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2월의 어느 주말 그렇게 저희는 서울에서 강원도 겨울 산으로 캠핑을 떠났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몰아치는 남편의 스피드에 제가 휘말려 버렸던 듯하네요. 저희 남편이 엄청 느긋하고 천천히 가는 성격인데, 그때는 어쩜 그렇게도 빠릿빠릿하던지. 성격이 엄청 급한 저는 그 모습에 감쪽같이 교란당했던 거죠. 연애시절의 모습은 절대로 평소의 정상 상태가 아니라는 것에 꼭 주의하세요!


그렇게 정신없이 광란의 질주를 하던 우리의 연애는 6월 초 연휴에 베트남으로 밀월여행을 가면서 만 천하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회사가 워낙 크다 보니 부서가 다르면 눈에 띄지 않았지만, 말하자면 사내 비밀 (?) 연애를 하고 있었던 셈이죠. 그러다 하노이와 하롱베이로 일주일간 여행을 다녀왔더니 빼도 박도 못하는 공식 커플이 되어 버렸더라구요. 


이 세상 풍경이 아닌 듯했던 하롱베이 바다 위의 수많은 봉우리를 선상에서 바라보며 꿈같은 시간을 보냈네요. 그때 처음으로 긴 시간을 함께해보며 알게 되었죠. 이 사람과는 함께 여행하는 것이 참 즐겁다...라는 걸요.


저는 남편을 만나기 전에도 나름 여행에는 일가견이 있었어요. 혼자서도 둘이서도 단체로도 세계 여기저기를 알차게 싸돌아다니는 삶을 살았었답니다. 그리고 그 모든 형태의 여행이 각자 어떻게 의미가 다른지, 또 서로 색다른 즐거움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나름대로 강하기도 하도 동시에 무난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남편과의 여행에는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뭔가 격이 다른 편안함이라는 것이 있었어요. 혼자 여행할 땐 한없이 자유로움을 느꼈지만 어딘가 불안하고 외로웠고, 단체로 움직일 땐 안정감을 느꼈지만 원 없이 즐기기엔 한계가 느껴졌었죠. 그리고 다른 누군가와 둘이 했던 여행은 이만큼 저에게 설레임을 안겨주진 못했거든요. 


그렇게 남편과 떠났던 첫 해외여행이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내친김에 여름휴가를 2주나 내서 이탈리아로 떠납니다. 나름 긴 여행이었기 때문에 계획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도 많았어요. 그리고 이 여행에서 우리는 반드시 싸우게 될 거라고 저는 각오를 단단히 했죠. 2주간이나 여행을 하게 되면 제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도 또는 친구라도 한 번은 티격태격하게 마련이거든요. 


로마에서 자동차로 출발해 나폴리를 거쳐 포지타노와 아말피에서 머물다가 피렌체, 베네치아를 들렸다가 밀라노에서 귀국하는 국토 대장정 로드트립이었죠. 이런 험난한 여정 동안에 과연 아무리 시작하는 연인들이라 해서 말다툼을 하지 않고 버텨낼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게 웬걸요! 저희는 싸움 한번 없이 사이좋게 즐겁게 여행을 해냈답니다. 물론 중간중간 엄청난 해프닝들이 있었어요. 렌터카가 수동밖에 남질 않아서 포지타노 깎아지는 듯한 해안 도로를 아슬아슬하게 초긴장 모드로 운전해야 했구요. 베네치아에서는 가방을 보트에 두고 내렸다가 가까스로 찾아냈구요. 밀라노에서는 기차를 놓쳐 애를 먹기도 했답니다. 


물론 숨 막히게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건축과 예술, 자연미에 취해 황홀경을 맞볼때마다 모든 피로와 시련이 다 씻겨내려가기도 했지만서도요. 


아무튼 2주간 꼭 붙어있으면서 이렇게 다툼도 없이 사이좋게 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같이 살아도 참 좋겠다는 직감이 들어왔던 것 같아요. 물론 대부분의 경우에 마음이 넓은 남편이 저의 신경질을 받아주고 어떤 부정적인 상황이나 감정도 깊이 담아두지 않고 훌훌 털어버릴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치밀하고 꼼꼼한 저는 계획을 세우고 일정을 총괄할 줄 아는 여행가였고, 남편은 추진력 있고 뒤치다꺼리를 척척해내는 실행가였던 겁니다. 그렇게 우리는 여행 궁합이 참 잘 맞았습니다. 그 불가능에 가까웠던 2주 동안의 이탈리아 일주 로드 트립을 기가 막히게 해냈으니 말이죠. 


그 뒤로도 우리 부부는 함께 살아온 8년 동안 수도 없이 여행을 다녔습니다. 국내로 해외로 같이 또는 각자.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함께 해오고 있는 이 결혼과 가정이라는 현재 진행 중인 여정이야말로 일생일대의 최고의 여행임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우리는 부부 여행가였던 겁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곁에 우리를 반반 닮은 아들이라는 꼬마 여행 가도 동행을 하고 있죠. 요 꼬마 여행 가는 한때는 알콩달콩 했던 저희의 로맨스 여행기를 예측불허 판타스틱 정글 대모험으로 전환시켜준 일원이기는 하지만요. 장르가 완전히 바뀐 나름의 재미를 선사해 주고 있답니다.


그렇게 우리 셋의 파란만장 좌중우돌 인생 여행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물론 가끔씩 티격태격하기도 합니다. 8년이라는 세월 동안 싸우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요. 이따금씩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함께 사는 이들 간에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니까요. 그래도 틀림없이 다른 가정에 비하면 그 횟수나 강도가 적은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함께 여행하기 좋은 사람들이거든요. 인생이라는 여행에서도, 지구별이라는 세상을 탐험하는 여행에서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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