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 부부
가족의 형태란 저마다 다른 것이고, 그에 따른 라이프 스타일 차이도 어마어마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은 일인 가족이 대세라 수도권에서는 이미 30퍼센트를 넘는 구성을 차지한단다. 이전에 비해 아이 없이 두 부부만 지내는 딩크족도 상당수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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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냥 크게 묶자면 아이가 있느냐 없느냐로 가족의 형태를 나누어 생각하게 된다. 결혼보다도 그것이야말로 결정적으로 사는 방식에 있어 엄청난 차이를 초래하니 말이다. 딩크 부부라면 라이프 스타일 면에선 그냥 각자 살던 일인이 함께 동거를 하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는 순간, 이것은 정말이지 인생에 있어 요단강을 건넌 것과도 같은 경계와 구분을 짓게 되는 일이다.
아이를 낳고 안 낳음은 이생과 전생만큼이나 다른 세상에서 이질적인 세계관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 본질적인 차이를 은연중에 간과하는 사회일수록 서로 간에 갈등과 반목이 붉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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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아이를 낳으며 내 세상은 완전히 upside down 이 되었다. 내가 알던 이전의 세계는 헝클어지고 이그러진채로, 나 자신조차 여자에서 엄마로 들입다 변신을 해야만 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은 결코 유쾌하고 설레이는 변화는 아니었다. 자정을 넘겨 공주에서 재투성이로 변한 신데렐라처럼 눈부신 유리 하이힐은 벗어던지고 빗자루를 양손에 잡아야 하는 그런 우울한 진화였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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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좋은 것들도 수도 없이 많았다.
가정이 주는 안정감과 아이가 주는 경이로움, 남편의 든든한 사랑을 세상 그 무엇에 비견 하리오.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항상 감사한 일보다는 불평거리만 늘어놓게 마련인지라, 나도 이미 내 창고에 확보해 둔 보석들보다는 아직 채워지지 못한 숭숭 난 구멍들 만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얻은 것들보다는 언제나 내가 잃은 것들에 대한 미련과 회한에만 포커스를 두었다.
한때는 이랬는데, 저랬는데.
예전에는 이럴 줄 몰랐는데.
이러려고 그 모든 걸 포기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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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있는 가정은 달라야 하고, 아이가 중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끗하게 인정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자들이 아이를 낳자마자 바로 그런 모드가 되는 듯 보일지 모르지만 속은 어디 하나 그렇지 않다. 모든 진화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나 역시 아기를 안기조차 어색해 두 손을 덜덜 떨었던 그 순간부터 지금 초등학생 사내아이를 다그쳐 등교시키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능숙한 엄마였던 적은 없었다. 겉으로만 그런 척을 하고 있을 뿐, 내 안에는 여전히 10년 전 시절의 모든 욕망과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뿐이다.
그저 그런 것들을 마음껏 꺼내서 지르기에는 지금 소중한 것들을 지켜나갈 수 없다는 현실을 너무도 명백히 인지하고 있을 뿐이지. 단 한번도 그 모든 욕망이 사그라든 일은 없었다. 그래서 마음 한켠에서는 이미 서서히 부패가 진행되어 가고 있다. 안 쓰고 계속 두는 것들은 썩어갈 수밖에 없쟎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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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되지 못한 내 염원과 욕망들이 그렇게 썩고 썪다가 악취를 풍기게 될 즈음이 어쩌면 흔히들 말하는 갱년기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어머님들 세대만큼 딱히 희생이나 헌신을 강요받지는 않았을지언정, 엄마로 산다는 것은 근원적으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런 것들이 패키지에 포함된 역할 일 수밖에 없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누구보다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았던 나조차 어느새 나는 잃었고, 낯선 여자의 모습만 남았다. 그리고 그 모습은 그닥 마음에 드는 내가 아니다.
아이가 없는 딩크 부부였으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지 가끔 상상해 본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하므로,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다면 이라는 상상은 하지 않기로 한다. 거기까지 가기엔 마음에 너무 여유가 없다.
아마도 어느 시점에 둘이서 세계 여행을 다녀왔을 것 같다.
요즘 그렇게 살고 있는 부부들의 유튜브를 자주 찾아서 본다. 알콩달콩 둘이서 세계를 여행하는 모습을 보며 무한 부러움을 느낀다. 나라고 저렇게 못할쏘냐 하고 생각해 보지만 당연히 못한다. 가장 큰 걸림돌은 아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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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좋자고 아이 학교를 무단결석시키고 갈 것인가?
더군다나 영어 한 마디 하지 못하는 아이는 외국이 싫다는데.
이런 건 예전에 내가 상상했던 시나리오가 전혀 아니지만, 현실은 점점 원래의 내 계획과 동떨어진 장르로 전개된 지 오래였다.
내 일신의 안위만 생각하며 살 수 있다면 그냥 무엇이라도 저질러 보고 싶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고 있으면서 그런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이라도 그런 엄마는 싫을 것 같다. 어린 시절 내가 원했던 엄마는 그냥 아주 평범한 엄마였다. 다른 엄마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무난한 엄마. 엄마는 그렇게 있어주면 좋은 존재다.
그런데 또 조금 더 크고는 힘 있고 돈 있는 엄마를 원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비빌 언덕이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싶었다. 우리 아이도 조금 더 크면 그런 엄마를 원하지는 않을까? 세계 일주를 하며 모험을 떠나고 자신의 모습으로 살기 위해 목소리를 발신하는 그런 엄마를 과연 자랑스러워할까? 그래서 돈을 많이 번다면야 상당히 좋아할지도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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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모든 판단 기준에 아이는 배제할 수 없는 제1 요소다. 남편이야 알아서 제 앞가림이 가능한 어른이다 보니 아이가 더욱 우선순위에 오게 된다. 그러니 마음껏 과감할 수도 없고, 언제나 안정감, 현실감이 중요해진다.
안 그럼 소(?)는 누가 키운단 말야!
과연 아이가 있는데도 나만을 위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우리 부부만을 위한 결정을?
우리는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그리고 보통이 아닌 라이프 스타일을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우리는 결국 하기로 했다.
그냥 가보기로.
그리고 다르게 살지 않으면 영원히 차이가 만들어지지 않을 것임을 아이에게도 가르쳐 주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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