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가 노랗게 물들어가는 8월 초가 되면 경상북도 김천이란 시골 마을로 출근한다. 물론 직장에서는 명목상 '휴가 중'이다. 휴가를 위한 금요일 야근을 하고 토요일 아침 열차를 타고 푸르른 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바로 시댁이다. 시댁에서는 복숭아 농장을 운영하는데, 직장인들의 휴가철인 7~8월이 제일 바쁜 시즌이다. 시댁에 도착하면 나보다 일주일 먼저 휴가를 받아 열심히 일하던 남편이 기차역으로 나를 데리러 온다. 일손이 부족한 시골이다 보니 시부모님께서도 나를 무척 반가워해주신다. 아직 아기가 없는 우리 부부는 매년 여름휴가를 이렇게 시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우며 보낸다.
#복숭아 농장의 하루
새벽 5시가 되면 시어머니가 가장 먼저 일어나 아침과 점심에 먹을 음식을 준비하신다. 이른 아침을 먹은 남편과 시부모님은 해가 뜨기 전에 복숭아를 따러 밭으로 출근하신다. 7시 반쯤 남편이 복숭아 한 트럭을 작업장에 옮겨놓고 나를 데리러 온다. 뒤늦게 출근한 나는 복숭아를 싸고 있던 봉지를 벗겨내며 선별작업을 한다. 복숭아에 조금이라도 금이 그어져 있으면 배송과정에서 물이 나오고 썩을 수가 있기 때문에 이를 분류하는 것이다.
9시 반쯤 복숭아를 다 따고 난 뒤 시부모님이 오셔서 선별해 놓은 복숭아를 크기별로 분류해 저울에 무게를 잰다. 이렇게 선택받은 아이들은 핑크 색종이에 예쁘게 포장되어 복숭아 상자에 담긴다. 작년에는 내가 이 포장 업무를 했었는데, 올해는 손이 무척 빠르신 아주머니를 고용했다. 쉴 틈 없이 작업을 하다 힘들면 막걸리를 한잔씩 마신다. 업무가 끝나면 예쁘게 포장된 복숭아 박스를 싣고 물류 집하장으로 간다. 집하장에 모인 과일들은 공판장으로 향해지고 다음 날 아침 새벽에 경매에 붙여진다.
# 복숭아 집 며느리의 포도밭 추억
작년 결혼하고 처음 복숭아 농장에 갔을 때 시어머니는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새침하게 생긴 며느리가 일도 못하고 옆에서 쭈뼛거리면 어쩌나 하고 말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일을 잘해서 깜짝 놀랐다고 하셨다. 사실 우리 집이 어렸을 때 포도농장을 했었다. 때문에 과수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 두 과일박스는 접는 순서도 동일했다. 손이 빨라 빠르게 많이 접었더니 '생활의 달인에 출연해도 되겠다'며 칭찬받았다. 운전하는 것을 좋아해 이앙기를 직접 몰고 운전하니 일 도와주러 오신 아주머니들께서도 '며느리가 일머리가 좋아 농사해도 잘 살겠다'라고 칭찬해주셨다. 오시는 분들마다 '이 집 며느리 일 잘한다, 예쁘다, 요즘 이런 며느리 없다'하시며 칭찬해주시니 시부모님 어깨도 들썩, 남편도 들썩, 나도 들썩. 뿌듯했다. 회사에서는 일을 잘하면 당연한 거고 어쩌다 실수하면 질책을 받기 일쑤인데, 이 곳에서는 조금만 잘해도 그 이상의 칭찬을 받으니 보람차고 행복했다.
트럭을 운전에 아빠를 도와주려고 스무한 살에 1종 면허를 땄다. 그래서 그런지 시댁 복숭아밭에서 일하며 아빠 생각도, 옛날의 우리 집 포도밭 생각도 많이 났다. 21살에 딴 면허를 이제야 제대로 운전해보고 이앙기도 몰아보는데 왜 그동안 힘들게 일하던 아빠의 밭일을 도와드리지 못하고 외면했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 '시부모님도 우리 부모님이다'생각하고 그동안 도와드려야겠다 생각하는데 아쉬움이 못내 한이 되어 복숭아를 선별하며 눈물이 나기도 했다. 어렸을 때 엄마랑 포도 선별 작업하면서 옆에서 포도 따먹으며 수다 떨던 기억, 포도박스를 트럭에 싣고 과일 도매상에 아빠를 따라다니던 기억이 몽실몽실 떠올랐다. 그러면 아빠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꼬마애가 귀여워 과일가게 아저씨들이 선물로 과일 하나씩 챙겨주시곤 했었는데 그때 그 시간들이 참 많이 생각났다. 초등학생 때 하루 일당 오천 원 받겠다고 아빠 포도농장에서 열심히 포도박스를 접고 나르던 그 꼬마숙녀가 오늘은 무척이나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