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우리 외할머니의 팔순이었다. 장녀인 우리 엄마는 한 달 전부터 할머니의 팔순잔치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고민하였다. 근사한 식당을 예약해서 가족들과 식사를 하려고 혼자 인터넷을 검색하며 준비를 하셨다. 그러나 할머니 팔순을 앞두고 코로나가 기승을 했고 하루에 500명이 넘게 확진자가 나오고 있었다. 넌지시 엄마한테 이번 생신은 각자 집에서 보내자고 말씀을 드렸으나 그냥 생신도 아니고 '팔순'인데 그럴 수가 없다고 하셨다. 삼촌이랑 이모들도 근사한 곳에서 외식하기를 원했으나 의견을 조율해 엄마 집에서 보내기로 하였다. 엄마는 일주일 전부터 어떤 음식을 만들지 알아보더니 할머니 생신 당일에는 밀푀유, 한땀한땀 직접 묶은 오리고기 월남쌈, 한우소갈비, 오징어와 문어숙회, 연근지짐, 도라지무침, 고급참치회, 모둠회를 준비하고 모든 반찬을 새로 만들었다.
"엄마 혼자서 이걸 만들었다고?"
우리 엄마지만 대단했다. 나는 집에서 잡채 하나 만들어가기로 해놓고, 그것 하나 만들다가 손이 베여서 아침부터 남편한테 툴툴거렸는데, 엄마가 만든 음식을 보니 저절로 반성하게 되었다. 엄마는 손맛이 좋아서 음식도 맛있었다. 오빠가 할머니를 모시고 왔고, 할머니한테 엄마가 음식한 것을 말씀드렸더니
"딸 노릇하려나 보다"
역시나 엄마랑 할머니는 티격태격 하셨다. 그렇게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고 엄마가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고, 술도 들어가고, 팔순 축하 메시지가 들어있는 미니 화환에서는 할머니에게 드릴 용돈이 나오고, 초등학생 저학년인 막둥이가 '할머니의 손주라서 자랑스럽습니다. 300살까지 사세요~'하는 아부가 듬뿍 담긴 편지를 읽고 모두가 하하호호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엄마가 감사장을 읽으려는데 한 줄을 채 읽기도 전에 울컥해버렸다. 목이 메어 차마 감사장 한 줄 마저 제대로 읽지 못해 둘째 아들인 삼촌이 대신 읽었다. (감사장은 내가 인터넷에서 퍼온 글이었다) 글이 슬펐던 것도 아닌데 엄마는 왜 울컥하셨을까?
문득 12년 전 그날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고등학생 1학년이었고, 친할머니의 팔순잔치가 있는 날이었다. 그때만 해도 팔순이면 큰 뷔페를 빌려 동네 사람들을 초대했고, 축의금을 받았다. 할머니는 고운 한복을 입고 사람들께 인사를 했고, 많은 동네 사람들이 축하해주러 오셨다. 아빠는 생각했던 것보다도 사람들이 더 많이 왔다고 좋아해 주셨다. 사회자를 불러 행사도 하고 장남이었던 아빠가 할머니를 업고 뷔페를 한 바퀴 돌기도 했다. 행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고 우리도 정리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아빠가 우셨다. 너무나도 서럽게 우셨다. 그렇게 우는 아빠를 나는 처음 봤다.
그때 아빠는 왜 우셨을까
남편이랑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며 '우리의 부모가 팔순이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하고 대화를 나눴다. 남편은 아버지가 10년 전과만 비교해도 훨씬 늙으신 게 느껴진다며 팔순이 되면 마음이 찡할 것 같다고 했다. '길어야 10년'을 내다보게 된다는 생각이 들면 눈물이 날 것 같다고. 우리 엄마, 아빠도 그런 마음에서 우셨던 걸까. 12년 전 팔순잔치를 했던 할머니는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 잘 지내고 계신다. 그리고 오늘은 아빠의 제삿날이다. 엄마는 지난주처럼 혼자 장을 봐오더니 음식을 준비하고 계셨다. 나는 수산물시장에서 회를 떠서 엄마랑 오빠랑 남편이랑 먹었다. 아빠 생각이 조금 났지만 예전처럼 많이 슬프지는 않았다. 오늘 아빠한테 절하면서 물어봐야겠다. 그때 왜 우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