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는 참 어렵다. 나란 존재는 얼마나 쉽게 상처 받는 존재인가. 관계에 상처 받지 않으려고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도 않았다. 이런 나와 '친하다'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거리에 들어온 관계는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몇 명뿐이었다. 옹기그릇처럼 소심한 내가 그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결국 깨달았다. '마음의 문을 열되, 활짝 열지 말 것' 오픈한 크기만큼의 생채기가 가슴에 박혔다.
초등학생 때의 일이다. 그 당시의 여자 아이들은 또래 무리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중요하다. 화장실도 같이 다닐 정도로 친한 친구들이 있었고, 나를 싫어하던 무리가 있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중 하나가, 나를 싫어하던 무리에 가서 내 욕을 같이 했다는 것이다. 정말 용서할 수 없을 만큼 그 친구가 미웠다. 그때 처음 배신감이란 단어를 몸소 배웠다.
중학교 올라가면서 친한 친구들이 갈라졌다. 여학생들 무리가 '편먹기'가 되면서 졸지에 나는 혼자가 되었다. 여자아이들에게 또래의 '무리'가 주는 소속감이 얼마나 큰 지, 소속감을 잃어버리고 혼자 내팽개쳐진 기분은 세상을 잃은 것 같기도 했다. 그 이후부터는 상처 받지 않으려 혼자가 되었다. 철저히 '마이웨이'를 외치며 나의 갈 길을 가고, 되도록 눈치도 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무리를 지어 어울리는 건 어린애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어른들의 세계는 그런 게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서른인 지금도 여전히 그런 세계는 존재한다. 무리에서 비껴나가면 군중 속의 고독이 된 듯 외로워졌다. 스무 살 즈음만 해도 쉽게 사람들과 어울렸던 것 같은데, 이젠 사람을 재고 따지게 되었다. 중학생 때 읽었던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의 좌우명이 생각난다."나무젓가락에 기댈망정 사람에게 기대지 말라"라고 했다. 사람에게 기대는 만큼 상처를 받았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것.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이 관계 속에서 상처 받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것을 깨달았다. 관계에 쿨해지고 조금 더 뻔뻔했으면 좋겠지만 나는 그 정도의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우연히 보게 된 나만 없는 친구의 SNS 사진에 상처를 받았다가, 우연히 읽게 된 SNS의 글에 위로를 얻는다.
"상처 받을 일이 생기면 그때 인간에 대해
알게 됐다고 생각하라.
어차피 우리는 살면서
인간관계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
그리고 상처 받았던 열네 살 소녀가 중학교 도서관에서 읽은 책의 한 구절 역시 떠올랐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무소의 뿔처럼 강해질 나의 내일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