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순이 츤데레 엄마의 차마 뜯지 못하는 케이크
#독하게 살아온 엄마의 청춘
우리 엄마는 짠순이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장을 보러 가는데 밤 열 시가 다 되어야 출발을 한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마트에선 마감시간이 다 되면 신선식품을 세일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마트 입구에서 쇼핑카트를 밀고 바로 향하는 곳은 생선파는 곳. ‘30% 할인’이라는 스티커가 붙어있는 갈치 두 마리를 집어 드신다. 어쩌다 마트에 일찍 도착해 식품이 할인하지 않으면 그 주변을 서성이다가 가격표가 바뀌어야 사 오신다. 그렇게 아낀 돈은 3000원 남짓. 한 평생 돈 걱정을 해온 우리 엄마는 알뜰 정신이 몸에 배어있다.
엄마는 친구도 없는 타지에 시집와 문구점 장사하며 결혼생활을 했다. 돈 때문에 속 썩이는 남편과 시어머니를 모시며 두 자식 뒷바라지를 했다. 하루 종일 가게를 지키면서도 저녁 시간이 되면 반찬을 만들고 남편 공장으로 저녁밥을 날랐다. 다시 일터로 돌아온 엄마는 500원짜리 샤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밤 열 시까지 가게 문을 닫지 못했다. 엄마의 청춘은 그렇게 흘러갔다.
어느덧 엄마 나이 환갑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엄마는 이제 장사를 하지 않고 있다. 청춘을 쏟아부었던 두 아이는 성인이 되었고, 미운 정 고운 정들며 원수 같았던 남편은 하늘나라로 갔다. 악착같이 살아온, 혼자가 되어 버린 우리 엄마. 그런 엄마를 뒤로 하고 나는 시집을 갔다.
# 츤데레 친정엄마의 첫 생신
결혼하니 엄마를 부르는 호칭에 변화가 생겼다. 결혼 전엔 그냥 엄마였는데, 결혼하고 나니 밖에서 '친정엄마'가 되어 버렸다. 주말에 어디 가냐는 질문에 '엄마 집에 간다'는 표현보다 '친정에 간다'는 표현이 더 편해졌다. 별것도 아닌 어쩌면 사소한 이 호칭하나가 막연하게 슬픈 날도 있었다.
친정 엄마의 첫 생신. 결혼하고 처음으로 맞는 엄마의 생신이다. 참 이상하다. 엄마가 친정엄마가 되고 나니 별게 다 애틋해졌다. 엄마를 위해 남편과 내가 살고 있는 '우리집'에서 엄마 생신파티를 준비했다. 아침 일찍 미역국을 끓이고 남편은 사위표 갈비찜을 준비했다.
우리 엄마는 츤데레다. 시집가기 전, 오랜 기간의 백수 생활로 돈 없는 딸이 어버이날을 맞아 카네이션을 사다 드려도 ‘쓸모없다’며 버리시는 분이다. 삶의 무게를 견디며 살다 보니 감동도, 감성도 메말라버렸다. 츤데레 엄마는 사위의 갈비찜을 향해 정확하고 인정사정없는 한 마디를 날렸다. "맛이 없다"
최고의 효도선물 1위는 ‘용돈’이라고 한다. ‘우주최강미녀 송여사님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는 문구와 신권 백만 원을 돌돌 말아 만든 돈 케이크를 드렸다. 츤데레인 그녀는 '뭘 이런 걸 준비하냐'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감동적이라며 눈동자가 촉촉해지셨다. 문구가 감동적이었을까, 돈이 감동적이었을까. 아니면 음식이 맛이 없다고 장난스레 툴툴거렸지만 아침부터 분주히 준비했을 자식들의 모습이 감동적이었을까. 츤데레인 척 하지만 여린 소녀다.
엄마가 돈케이크에서 지폐만 챙긴 후 박스는 바로 버리실 줄 알았다. 시집가기 전 버렸던 카네이션처럼. 하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도 엄마의 집에는 처음 만들어놓은 케이크가 그 모양 그대로 있다. 친척들이 올 때마다 자랑하신다. 우리 딸이 만들어줬다고. 너무 좋아하시는 그 모습을 보니 나 또한 뿌듯하다. 이제는 그 안에 있는 돈을 쓰실 때도 됐는데 말이다. 차마 아까워서 쓰실 수 없다고 하신다.
남의 돈 벌기 어려운 혹은 더러운 세상이다. 회사에서 뛰쳐나오고 싶을 때,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한숨 쉬고 싶을 때, 엄마의 생신 때 찍어놓은 돈 케이크 그리고 그 앞에서 환하게 웃는 엄마의 사진을 본다. ‘그래 이 맛에 돈 벌지, 효도도 돈이 있어야 하는 거지'하면서 행복감이 몰려오고 버티는 힘을 얻을 수 있다. 드라마 미생의 대사처럼 나는 엄마의 자부심이니까.
“엄마, 나 열심히 돈 벌 테니까 이제 그 케이크 뜯어서 엄마 사고 싶은 거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