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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땡땡 Jan 31. 2022

두 시간 반을 대기하면서 전시회를 본다고요?

교양이 별건가



먼저 도착한 친구에게서 받은 사진을 보고 뜨악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 대기시간 2시간 30분. 찰나의 순간, 집 가서 쉬라는 악마의 속삭임이 들렸지만 1시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지하철의 지루한 파동을 견뎌냈을 친구를 떠올리며 마음의 소리는 잠시 꺼두기로 했다. "어쩔 수 있냐, 기다려야지 뭐."


2년 만에 전시회로 발길을 향하게 된 건 순전히 친구 때문이었다. 얼리버드로 예매한 표의 기한이 임박했다고. 근데 누구라고? 달리..?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긴 한데... 애매하게 익숙한 이름에 머릿속에 물음표가 띄워진 와중에, 친구는 흘러내리는 시계 있잖아! 하고 대표작을 말했지만 선뜻 떠오르는 이미지는 없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 정도로 미술에 문외한이다. 손으로 꼽을 수 있는 몇 번 남짓한 경험 모두, 지금처럼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보조를 맞추었던 것이었다. 그런 나로서는 500팀이라는 줄어들 것 같지 않은 압도적인 숫자와 끝내 내 차례가 되어 마주한 전시회장을 빼곡히 채운 인파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예술에 이렇게 진심이었구나.


이전 관람 때는 도슨트가 있는 시간에 맞췄었는데, 이번에는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더욱 길어진 웨이팅 시간에 추운데 발 닦고 잠이나 자자하며 아마 입장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대신 발달한 문명의 이기를 통해 휴대폰 어플로도 해설을 들을 수 있음이 다행이었다. 단돈 3000원이면 귓속에 나민의 미술 선생님이 들어와 앉는다.


바닥에 그려진 화살표를 따라, 과장 조금 보태 출퇴근길 지하철을 연상케 하는 빽빽한 어깨들과 보조를 맞춰 한 발자국씩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앞선 행렬이 멈춰 서면 그림에 이르기 전 다소 빨리 멈춰서 각 그림 아래 써져있는 번호를 어플에서 찾아 누르고, 이내 다정한 목소리에 귀를 쫑긋 세운다. 이게 없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아마, 별 다른 감회나 공명 없이 머릿속에 물음표만 가득 채우며 작품 앞을 배회했거나, 긴 대기행렬로 뻐근해진 허리를 부여잡으며 빠르게 지나쳤으리라.


하도 인원이 많다 보니, 안에서도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기다림이 필요했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작품보다는 사람들에 눈이 갔는데, 연인이나 친구끼리 온 경우가 가장 많았고, 어린 자녀들의 식견을 넓혀주기 위해 휴일을 반납한 부모님도 많이 계셨다. 각자의 미술 선생님에게 청각을 맡긴 우리완 달리, 다들 일행과 저마다의 감상을 주고 받고 있었는데, 제법 그럴싸한 해석들이었다.


나는 누군가가 읽어주지 않는다면, 유명한 작품 앞에 선들 가슴을 꿈틀거리게 하는 무언가가 없고, 누군가 손을 이끌어주지 않는다면, 이곳으로 발걸음을 향할 이유조차 없었다. 그런데, 서울 사람들은 아니 내 기준에 서울 사람으로 상징되는 중산층의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자연스레 교양을 학습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스스로 고결한 취미, 고귀한 취향을 이어가는 것이겠지? 이런 생각에 미치자 교양인들 사이에 둘러 싸인 비교양인이 된 거 같아 조금 위축되었다. 별 관심도 없고 어울리지 않는 곳에 떨어져 있는 것 같아 이 공간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오랜 시간을 체류한 끝에 드디어 전시회장을 빠져나갈 수 있었는데, 긴 터널 끝에 빛을 본 해방감마저 들었다. 엉덩이에 느껴지는 뜨뜻한 온기와 단조로운 파동 덕에 온몸이 녹초가 된 나는 눈을 감았다 뜨자 친구 집 근처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집에서 이전에 없던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다.


"야, 그림 위에 속옷 널어두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다. 선물 받은 거 아냐?"

"아니 내가 그린 거야."


당연히 선물 받거나 구매했으리라 생각한 작품이었는데, 그녀의 말에 눈이 동그래져서는 속옷을 바닥으로 제쳐두고 바닥에 있던 캔버스를 들어 올렸다.


(친구한테 달라고 해서 받은 사진)


파란색은 바다고 초록색은 산일까. 이 흰 선은 수평선 끝에 보이는 빛이 아닐까. 주황색에 검은 점은 노을지는 저녘을 표현한 걸까.


"이 흰색 터치는 뭐야, 작가의 의도가 뭔데?"


그녀는 쑥스러운 듯이 분명 이유가 있었는데, 하면서 기억을 더듬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잘 아는 친구의 작품이어서 더욱 주의 깊게 캔버스를 들여다보았다. 그날 봤던 어떠한 그림들보다 더욱.


교양이 별건가.


교양이라는 건 어떤 고귀한 것으로 치부될 것이 아니라, 지금처럼 스스로 관심을 둘 의지가 아녔을까. 다만 나는 지금까지 남들이 말해주는 대로 쉽게 생각해오려던 것만 같아 조금 부끄러워졌다. 대신, 내가 관심을 주고 싶은 분야에선 나 또한 교양인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되어 마음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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