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멍청함을 탓할 수있지만 변론하자면 평소엔 그렇지 않았다. 만 원짜리 하나를 살 때도효용가치를 곰곰이 따졌고, 이직처럼 중요한 결정을 할 땐각 항목마다 점수를 매겨 최선의 선택을 내리고자 했다. 명석한 두뇌는 아녔지만 대학땐장학금을 놓친 적이없었고, 완벽주의자라는 얘길 귀 아프게 들을 만큼 닥쳐올 일을꼼꼼하게 준비하고 확인했다. 이렇듯 늘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며 극 J의 삶을 살아온 내가, 왜 투자에 있어서는 무모할 정도로대책 없이낙관했는지 스스로 이해되지 않는다.
내투자금은 3억 원을약간 넘겼다. 이는 코로나로 낮아진 은행 문턱과 투철한 경제관념 덕분이었다. 신입생 때부터 부모님께 받은 비싼 가방을 든 동기들을 종종 보곤 했는데, 나는 이 나이 되도록 전남친이 준 하나를 제외하면 명품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늘 결혼식에 같은 가방을 메고 간다.)
패션에 관심은 많았지만 감가상각되는 물건을 비싸게 주고 사는 게 아까웠고, 신줏단지 다루듯 소중히 모시고 다닐 바엔 편하게 들고 다닐 능력이 됐을 때 갖고 싶었다. 그러나간혹 유명 브랜드 택 하나 없는 차림으로 백화점에들어서야 할 땐쪼그라드는 기분을 피할 순 없었는데 '내용물이 괜찮으면 포장은 중요치 않다.'는 논리로 스스로를합리화하곤 했다. 또 필요한 물건을 당장 가질 수 있는 편리함을 포기하고 인터넷 최저가에 쿠폰까지 먹일 땐작은 이득이나마 넉넉하게 뿌듯했다.
그렇다고뷰 좋은 카페테라스에 앉아커피 한잔에다소 비싼 디저트를 곁들이는 소확행을 포기하진 않았고, 취준생인 친구에게 밥사는 걸 전혀 아까워하지도 않았다. 즉옹졸하진 않았으며사치하지 않는 경제관념 있는 인간정도였다. 다만 언젠가부터 갖고 싶은 게 사라졌다. 물론 명품이든 뭐든 준다면 고맙게 받겠지만 그 돈을 아껴 투자하는 게 더 즐거웠다. 실제로 작년 생일, 뭘 받고 싶냐던 전 남친의 물음에 고심 끝에 물타기가 급하던 해외주식을 말하기도 했다. (결국 물을 타긴 탔는데, 지금에서야 원금이 되었다.)
그러한 작은노력으로사회초년생치곤 적지않은 액수를 모았다. 물론 빛나는 수저를 물고 태어났거나 엄청난 수익률로 꿈을 이룬파이어족에겐'에게?' 하는 금액일 수 있다. 하지만나는대한민국 인구를 줄 세워놓았을 때 딱 중간쯤에서 시작했다. 머리가 굵어지고출발선의 차이를 깨달은 뒤론달리기를 멈추지 않았고사회인이 되어선4년간(의도치 않게) 전국을 떠돌며 개미처럼 일했다.그 결과 차곡차곡 모인 원금이라는 재료에 투자수익이 덧붙여지면서 어떤명품 가방보다 든든한 백이 되었다.
당시 나는 내게 생기는 일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SNS에 '플렉스'로 전시할만한 값비싼 물건을 소유하지 않아도, 대중교통 막차 시간이 통금시간이 될지라도, 대학생때와 다를 것 없이 방 한 칸짜리 월세에 살더라도 스스로 '잘' 살아내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를 증명하듯 존재하는 내 명의의 집과 주인이 잠든 와중에도 일하고 있는 주식이라는 분신이현재를 살아가는 기쁨이자 장밋빛 미래에 대한 희망이었다. 2021년 10월까지는.
'내 이름은 김삼순'에 이런 장면이 있다. 재벌인 현빈이 삼순이 앞에서 5천만 원짜리 수표를 찢어버린다. 자신에게 그녀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려주기 위해서라나. 이 모습을 보고 기가 찬 삼순이 말한다.
"5천만 원이 아니라 5백만 원이 없어서 죽는 사람도 있어."
십수 년도 더 지나 기억이 온전치는 않으나 이 대사만은 뇌리에 박혀있다. 어렸음에도 남자주인공의 무모하고 허세 가득한 행동이 어이없긴 했나 보다. 젖과 꿀이 흘러넘치는 환경에서 자라온 그에게 직장인 평균 연봉을 웃도는 돈을 버리는 행위란 '이거내 사랑에 비해선 아무것도 아냐. 나 이만큼이나 너 사랑해.'라는 초등학생 수준의 보여주기식 사랑 표현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평범한 여자주인공에겐 그것은 쉽게 찢어지는 가냘픈 종이가 아니었다. 어떤 삶에선 간절한 동아줄이며 다른 한편에선 숨이 끊어지도록 옥죄는 밧줄임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돈의 힘이란 그런 것이다. 돈 때문에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돈은 사람을 비참하게도 처량하게도 참담하게도 한다. 근 1년이 넘는 동안 1억은 내게 그런 돈이었다.
오르겠지. 이제 거의 바닥에 다 왔어. 원래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잖아. 지금 포기하면 안 돼.
손절하라는 주위의 조언에 고개를 내저었다. 되려 이럴수록 힘을 내야 한다며 고강도의 업무 대신높은 페이를 보장하는 곳으로 이직했다. 투자를 시작한 목적과반대로더욱더 노동을 팔아 돈을 벌어야 했지만 열심히 일하면 회복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있었다.그러나 그러한 발악에도불구하고 돌아오는 것은,물을 부어도 밑이 빠진듯한 계좌의 상태와늘어만 가는 마이너스 통장의 금액이었다.편의점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고된 일과의 대가로 월급이 이삼백 늘어난다 해도, 출근 전 확인한 잔고엔 하룻밤사이 그 늘어난 월급만큼이 증발해 있었다.
긴 터널에 갇힌 듯했다. 빛이 보이는 듯해서 뛰다가 힘이 빠져 걷다가끝내 출구를 찾지 못해 주저앉아 울곤 했다. 그러나 그 소리는이불 밖으로 새어나가선 안 됐다.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아는이들에게, 그저 그런 관계들에게결핍을 들켜서는 안 됐다. 그러다 곪고 곪아 터져 나오는 날이면 한없는 비관주의자가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명품을 살걸. 하고 싶은 거나 다 할걸. 주식이고 부동산이고 아무것도 하지 말걸.
의미 없는 후회만 뱉는 내게 수화기너머 상대는 '너 능력 있잖아, 괜찮아. 다시 일어날 수 있어.'라며 최선의 위로를 건넸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몇 년간 열심히 달린 궤적이 알고 보니 역방향이었다는 허무함과 공부만 할 줄 알았지 한 치 앞도 못 보는 헛똑똑이라는 끝없는 자책은 나를 병들게 했다.
정신이 병든 나는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이상한 길로 들어섰고이상한 사람들을 만났다. 상황은 악화되었고모든 걸 관두고 새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짠하고 1억이 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실제로는 훨씬 더 필요했지만.) 그럼 투자 같은 거 손도 안 댈 텐데.수 없이 상상했지만역시 뇌내 망상에 불과했다. 위를 향해 발버둥 칠수록 아래로 빠져들었고 가라앉는 스스로를 구할수 없다고 느꼈을 때이곳으로돌아왔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야 실은 제일 이상한 내 얘기를 할 수 있을 테니까.
똥차를 손절하긴커녕 울며 붙잡아을의 연애를 자처하는 미련함이 수익률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상황을 구제해 보겠답시고 싸한 촉을 간과한 채 입사한 고연봉의 직장을 왜 관두고 대표를고소하게 됐는지, 만난 지 한 달밖에 안된 연인에게왜펑펑 울며 돈얘기를 했는지등등.(빌려달란 건아녔다.)
나에겐그간의사연을 풀어낼 대나무숲이 필요했다.결핍은 뱉어내고 후회는 떼어낼 공간이.
곪고 곪아 찐득하게 달라붙어 있던 것이 사라지고 산뜻해진 후에야 다시 위로 떠오를 테니까.이제 시작점에 선다면 제대로 된 길로 달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