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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샛별 Jul 07. 2020

13. 네 덕분에 엄마는 자격지심을 내려놓는다.

'못' 듣는 엄마가 아닌 더 '잘' 보는 엄마로 성장하기

회사에서 업무에 파묻힌 채 시간을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마주하는 아이의 미소는 늘 봐도 사랑스럽고 힘이 난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밤마다 엄마와 잠자리에 누웠을 때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가까이 보며 대보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의 작디 잔 손가락이 엄마의 얼굴을 스치는 감촉은 마치 일상 속의 힘든 순간을 달래듯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아이의 손가락이 엄마의 눈꺼풀에 닿았을 때, 엄마는 반응한다. 

“이건 엄마 눈~” “예준이 눈은 어디 있을까?”

엄마의 대답에 아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엄마의 얼굴 곳곳을 만지작거린다. 엄마의 뱃속에서 힘찬 발길질을 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훌쩍 커버린 채 엄마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니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산부인과에서 처음으로 입체 초음파 사진을 봤을 때 양수 안에서 불었던 얼굴 생김새가 신기했고 누굴 닮았을까 하고 남편과 재잘거렸던 시간도 떠올랐다.     

아이와 함께 하는 ‘눈코입 찾기 놀이’는 엄마와의 애착 형성에 도움을 주고, 아이도 자신의 신체에 대해 알아가는 방법이다. “엄마 입~”이어서 엄마의 콧등을 스치는 예준이의 손가락을 따라 또다시 대답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예준이의 손가락은 바빠졌다. 그러다 문득 엄마의 귓불에 예준이의 손가락이 닿았을 때 움찔거렸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만큼은 자유로울 줄 알았다. ‘장애’에서. 그런데도 아이는 나와 다른 언어와 소리를 배워가는 과정에 있다. ‘청각장애’를 어릴 때부터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움츠러든 마음을 다시 회복하는 데에도 ‘장애’를 받아들인 시간만큼 오래 걸렸다. 그렇게 아이에게도 ‘자격지심’을 느낄 수 있겠다 하는 엄마의 마음이 아이에게 닿지 않았으면 했다. 아이의 손가락이 유난히 엄마의 귓불에 자주 닿을 때마다 ‘자격지심’이라는 문장이 맴돌았다. 그러면서도 엄마의 목소리는 아이에게 “그래~ 엄마 귀는 여기 있지~”라고 말하며 아이의 등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엄마의 검지를 붙든 채 잠든 예준이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나는 엄마로서 살기 전까지는 ‘청각장애’라는 이유로 많은 차별을 받아왔다. 차별을 눈으로 배운 이상 사회 안에서 견뎌야 할 일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장애’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시간에서 비장애인이 사용하는 음성언어와 다른, ‘보는 언어’인 수어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시간이 더 행복했다. 엄마가 행복해지는 만큼 이 아이는 장애를 수용하고 있는 엄마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욕심이 나는 만큼 엄마의 ‘자격지심’을 접어야 했다. 늘 미안한 마음으로 내 아이에게만큼은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모든 엄마의 마음이 그렇듯. 사회에서 ‘장애’를 구분하는 데에 ‘차별’과 ‘다름’을 먼저 배우게 된다. 하지만 나를 의지하며 꿈을 꾸고 있는 이 아이에겐 ‘장애’는 또 다른 ‘이해’를 배우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차별이 아닌, 조금 다를 뿐 더 알아가는 ‘이해’를 통해 엄마를 받아들이는, 다른 사람을 이해할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하길 바라며. 아이의 호기심이 엄마의 장애를 톡-하고 건드렸을 뿐인데 왜 엄마만 움찔거리며 자격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사회에서 오랫동안 배워온 차별이 그렇게 엄마의 양육 자세에 영향을 주고 있었을까 하는 마음을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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