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듣는 엄마가 아닌 더 '잘' 보는 엄마로 성장하는 일기
나이 들수록 내 어린 시절은 빛바래져 가는 모양이다. 나도 이제 나 어릴 때가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아직 생생하게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소리’의 부재에도 감히 갈라놓을 수 없었던, 나와 부모님의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내가 아이였을 때, 세상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말하는 방법을 배우느라고 아침마다 분주하게 충주에 있는 특수학교에 기차를 타고 엄마와 함께 등교했다. 엄마의 시간이 흐르는 만큼, 내 시간도 흘러갔다.
금요일 오후, 엄마 손을 맞잡고 있는 내 앞에 커다란 그림자가 나타났다. 이내, 엄마 얼굴이 환해졌다. 멀찍이서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향해 걸어오던 아빠의 우직한 어깨가 보였다. 엄마의 반가움이 내게도 전해져서 나는 엄마 손을 놓고 아빠에게 달려갔다.
“아-빠!”
아이가 아플 때, 아이에게 장애가 있을 때 부부 사이에 금이 간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우리 엄마 아빠에게서 그런 ‘틈’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 아이는 청각장애입니다”라는, 가혹한 문장 그대로 말하는 의사의 목소리에 엄마의 눈물과 아빠의 슬픔은 내가 나의 장애를 받아들이던 그 순간과도 같았겠지만, 두 분은 그저, 나를 사랑하는 일, 나를 받아들이는 일에만 집중해 주셨다. 그 덕분일까. 나는 고스란히 그 사랑을 받아들이며 컸다.
아직도 내가 “아빠!”하고 부르며 아빠에게 달려갔을 때, 나의 미소를 반기며 환하게 웃던 아빠의 얼굴이 떠오르는 이유도, 그리고 나와 아빠를 뒤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던 엄마의 얼굴이 생각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두 분의 사랑 덕분에 나의 사랑은 아들 예준이를 향해 빛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준이는 엄마 목소리를 알지만, 나는 예준이 목소리를 모른다. 우리 엄마 아빠도 내 목소리는 알지만, 나는 엄마 아빠의 목소리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도 사랑하는 데에는 이유가 없는지라, 소리가 부재해도, 목소리가 없어도 우리의 사랑은 늘 한결같다. 예준이가 내 얼굴 마주 보며 이야기하려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내가 예준이의 얼굴을 마주보며 사랑을 말하려고 애쓸 때, 예준이가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듯이 말이다. 오늘도 예준이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에게 사랑을 들려줘서 고마워. 너의 목소리로.”
출처 : 베이비뉴스(https://www.ibab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