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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샛별 Sep 20. 2020

손님을 대하는 방법

“손님을 대할 줄 아네, 샛별이가...”

어렸을 때의 일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대문 옆의 초인종 소리를 듣기 위해 현관 앞에서 장 보러 나갔던 엄마를 기다렸다.

귀걸이형 보청기보다 골도형 보청기가 효과가 좋아 머리띠 형태로 맞춘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띠리링~’
익숙한 소리가 들려 후다닥 뛰어가 벨을 눌러 대문을 열어줬다. 낯선 사람인지 미리 고개를 내밀어 확인하던 평소의 습관을 잊은 채로.

몇 초가 흘러 내 눈 앞에 나타난 그림자의 정체는 희끗희끗한 머리의 어르신이었다.

“아? 네가 샛별이구나? 엄마는 어디 가시고?”
처음 보는 얼굴에 뒷걸음을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도 경계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이 평온한 인상이었다.

“어... 저기 앉으세요.”
안방으로 안내하고 나니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 졌다.
(엄마... 언제 오는 거야...)

정체 모를 어르신은 친할아버지가 지내시던 안방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신 채 앉아 계셨다. 문지방 건너 슬쩍 보기만 하다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냉장고를 열어 보니 뭐가 뭔지도 모르겠다. 이리저리 둘러보던 중에 우유가 보였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어 그런지 까치발로 겨우 꺼냈다.

‘뭐야? 왜 조금밖에 없어?’ 하필이면 그날 아침에 시리얼을 두 번 먹는다고 우유를 많이 넣었다. 번뜩이는 재치가 위기 속에서 빛을 발한다더니, 주방에서 나와 내 방으로 갔다.
돼지저금통을 탈탈 털어 있는 돈 모두 쥐어 슈퍼로 달려갔다. 참으로 엄마가 돌아오는 시간이 유난히 길구나 싶었다.

어르신은 문 소리가 나자 고개를 돌리시더니 이내 신문을 보고 계셨다. 헐레벌떡 우유를 사들고 왔더니 숨이 차오른다.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고 싶은 마음을 누른 채  우유 한 잔을마저 채웠다. 평소에 엄마가 손님을 대하던 모습 그대로 부엌 곳곳을 뒤져가며 예쁜 쟁반을 찾았다.

어렵게 채워둔 우유 한 잔이 한 방울이라도 흘릴까 싶어 사뿐사뿐 안방으로 걸어갔다.

말 한마디 없이 아담한 손길로 건네는 우유 한 잔에 어르신의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아유, 잘 마실게. 고맙다.”
몇 분이 더 흘렀을까.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엄마가 돌아왔다.

“어머! 오셨어요? 오래 기다리셨어요? 죄송해서 어쩌죠?”
“허허, 괜찮아요.”

내 몫은 여기까지다 싶어 방에서 풀썩 누웠다.
엄마와 어르신의 대화가 끝났다.
어르신이 마신 우유 잔을 치우던 엄마가 말씀하셨다.

“아까 그 할아버지 말이야. 네가 준 우유 한 잔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맛있었다고 하시더라. 나이도 어린 게 손님을 어찌 그렇게 진심으로 대할 줄 아냐고. 밖으로 뛰어나가는 네 발걸음도 그렇게 느껴진다며. 참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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