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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샛별 Sep 23. 2020

서로를 부르는 방법은 다양하지요.

못 듣는 엄마가 아닌 더 잘 보는 엄마로 성장하기


‘엄마-’


하고 부를 때마다 바로 반응하지 못할 때가 많아질수록 아이는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그 대신 엄마의 뒤에서 ‘톡톡’하고 손바닥으로 두드리는 ‘배려’가 내 마음에도 와 닿기 시작했다. 


아들 예준이가 지금보다 한참 어렸을 때, 보청기를 착용했다. 울음소리 외엔 의사표현을 알아차리기가 어려웠기에. 늘 노심초사하며 돌봤던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아들 예준이의 성장이 눈부시기 시작했다.


엄마보다 먼저 다가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말해 주는 아들에게도 대견함을 배웠다. 어쩌면 다른 아이들보다 더 빨리 자신의 엄마가 '못' 듣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위축되거나 슬퍼하지 않는 일을 보지 못했다. 아직까지는.

'장애'가 있는 부모 가운데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아이의 마음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 자세를 바꿔 주는 역할은 바로 부모 자신이라는 것을.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부모 자신이 '장애'를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아간다면 그 부모 아래 아이들도 고스란히 물려받는다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일찍 '장애'를 삶의 일부분으로 수용하며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는 중이었다.

'엄마' 그리고 '예준아!' 

서로를 부르는 방법은 다양했다. 어느 날은 엄마가 예준이의 등을 두드리면서 눈이 마주칠 때까지 기다렸고, 또 어느 날은 예준이가 먼저 다가와 엄마의 등을 두드린 것처럼.


사랑하고 존중하는 방법도 다양하다고 새삼 느꼈다. '장애'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우리는 이미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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