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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샛별 Jan 26. 2021

다른 게 뭐 어때서?

나는 엄마다. 배 아파 낳은 아들은 나와 남편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건 맞지만 하나는 다른 게 있다. 바로 엄마 아빠의 언어와 다른 음성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집에서 부모와 같이 있을 때 또박또박, 천천히 엄마 아빠에게 몸동작을 동원하며, 엄마 아빠가 사용하는 수어와 음성언어로 자기의 생각을 표현한다. 맞벌이로 일하는 엄마 아빠의 품을 잠시 떠나 있는 어린이집에서는 거의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는 음성언어로 재잘재잘 말을 배우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다. 나도 예준이처럼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성장했다. 태어나자마자 달팽이관 기형으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지도 배우지도 못했다. 잔존 청력이 있어 청각 보조기기인 ‘보청기’로 소리의 유무만 느낄 수 있었다. 소리가 있거나 없는 구분은 가능했지만 어떤 소리인지를 구별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부모의 언어를 따라 배우며 크기엔 너무 어렸다. 어린아이가 장애를 스스로 깨우치며 크는 데에 부정적인 감정을 너무 많이 배웠다. 그 경험 덕분에 엄마가 된 나는 아들 예준이에게 최대한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부모의 언어를 배웠으면 했다.     

어느 날, 예준이가 동화책 한 권을 집어 들고 내 무릎에 앉았다. 같이 보면서도, 예준이는 엄마의 얼굴을 돌아봤다. 돌아본 이유는, 엄마의 표정과 어떤 수어가 나올지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그 마음을 안다는 듯이 나는 평소보다 크게, 우스꽝스럽게도, 오버해서라도 아이의 웃음이 터질 때까지 반복했다. 아들의 시선은 엄마의 수어를 따라 움직이니 이내 아들의 귀여운 손가락이 엄마의 손가락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아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미소가 번졌다. 엄마와 아들의 웃음소리가 거실을 채우는 순간 소통이라는 이름 가운데 이미 서로의 마음을 더 가까이 이어주고 있었다.     

 “그래, 다른 게 뭐가 어때서?”     

엄마와 아들로 만난 관계에서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의 사이에 균열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의 언어에 공감해 주며 눈 맞춤에 진심으로 대하니까 어느새 사랑이 굳건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 들어 발생하고 있는 아동학대 사건에서도 서로의 관계에서 증오와 미움, 어떤 차이가 오히려 방해물이 되었을까 하며 안타까웠다. 친부모든, 입양가정이든 사랑의 본질은 서로를 이해하는 데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이해하기 힘들어서, 이해하기 싫다는 이유로 서로를 밀어내느라고 지쳐서, 결국 비극을 만난 것이 아닐까? 사랑은 서로를 위한 마음으로 자신의 반절 정도는 내려놓아야 한다고 배웠다. 나의 언어가 다르다고 해서 아들의 언어를 반쯤 포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언어를 먼저 이해하고 수용하면서도 나의 언어를 알려주는 마음이 더 와 닿았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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