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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순 Dec 29. 2019

마음도 찾으러 시장을 간다

사는 냄새가 좋다

                                                         마음을 찾으러 시장을  간다

                                                                                                                이 영 순

     

 재래시장이 좋다.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무언의 다짐을 하게 하는 곳이다. 거 칠은 목소리가 좋다. “사세요.”라고 말을 건네는 그들의 용기가 부럽다. 저들의 세계에는 세상을 다 팔아 치울 거 같은 자신감이 있다. 가격도 싸지만 사람 냄새 폴, 폴. 높게 쌓은 짐을 밀고 가면서 “비켜요. 비켜.” 목이 터져라 질러대는 소박한 우렁참이 좋다. 심장이 펄떡펄떡 살아 있는 거 같다. 살아가는 소리다. “나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라는 진실이 보인다.

     

 야채 몇 가지를 산다. ‘세발나물’은 데쳐서 하얗게 무치고. ‘시금치나물’은 고추장에 무쳐야지. 상추도 오늘은 ‘꽃상추’를 산다. 과일. 상자마다 희망하는 몸값을 붙여 놓고 있다. 물론 파는 자의 희망 가격이다. 어떤 이는 사과의 몸값을 흥정하고 있다. 옆에서 들으니 천 원만 깎아 달라는 거다. 승리자는 파는 사람인 듯. 도매시장이라 흥정은 금물이란다. “흥정을 위한 변호사 비용까지 미리 계산해서 산출된 가격이라나?” 재밌는 변론이다.

     

 딸기다. 12월의 막바지인데 제철을 만난 것 같다. 갓난아이 주먹만큼 굵직하다. 미리 만난 햇과일이라 가격이 만만치 않다. 망설이는 내게 미안한 듯이 말한다. “너무 가격이 비싸죠?” 하면서 볼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다. 곧 봄이 올 거 같다.

 

 커다란 대봉 감. 통 실한 몸매에 비해 가격은 날씬하다. 몸값은 미스코리아 뺨치게 아름답다. 외모 또한 미스 대전은 뽑히고도 남을 듯한 미모다. 너무 아름다워서 진, 선, 미를 따지고 싶지도 않다. 가격과 미모에 그냥 감사하다. 농사짓는 수고에 비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너무 고마운 마음에 번쩍 들고 왔다. 농심은 만족하지 못한 가격에 서운하겠지만 도시에서 사 먹는 나는 그저 감사할 뿐이다. 누군가는 흡족하고 어떤 이는 억울한 듯도 하다. 가격이 만족한 계절에는 농부의 웃음을 보면서 도시 아낙들은 소박한 바람을 보낸다. 하늘은 특별히 한쪽만을 편애하지는 않는가 보다. 자연은 돌아가고 있다.  누구에게나 평등함을 주는 것 같다. 세상일 공평한가 보다. 한 번을 참으면 한 번은 기회가 오는 것을. 그걸 못 참고 투덜대는 것이 이해심 부족한 인간들이다. 나 또한 참지 못하는 대열에 당당하게 줄 서 있다. 반성해 본다.

     

 단골 생선가게를 간다. 남편이 좋아하는 고등어를 산다. 사장님은 “졸이시려고….”

“네. 자르지 마시고요.”

동태도 산다. 턱. 턱. 토막을 내더니 미더덕 한 움큼을 넉넉하게 넣어준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오늘 대봉감도 싸게 사고 후덕한 인심도 받아온다. 시장의 매력이다. 굳이 더 달라고 안 해도 그네들이 줄만하면 알아서 주는 곳이 재래시장이다.

     

 청양고추를 썰어 넣는다. 고추장을 한 수저 넣고 자작하게 고등어조림을 한다. 대파 잎은 어슷하게 썰어 올린다. 보글보글 맛난 소리가 들린다. 뚜껑을 연다. 와, 빨간 가을 단풍처럼 곱게 물들어 있다. 언젠가 방송에서, 고등어조림에 상추쌈을 곁들이는 식당이 소개되었다. 흉내 내어본다. 푸짐하게 꽃상추를 한 접시 올린다. 남편은 맛있다면서 밥 한 공기를 비운다.

“집 밥이 최고야”

칭찬을 한다. 누룽지는 뜨겁게 끓여서 개운하게 후식으로 만든다.

     

 시장에서의 행복, 후한 인심도 있다. 열심히 살아가는 삶의 목소리도 들린다. 희망찬 당당함도 읽어진다. 자신감도 넘쳐난다. 투박한 듯 하지만 부드러운 정도 있다. 싱싱했다. 가끔씩 가는 재래시장. '감사'의 의미를 생각나하는 곳이다.

“비켜요. 짐 가요. 짐 가.”

거친 목소리 속에 '꼭 붙잡고 있는 희망'이 들어있다.  살고 있다는 본보기가 보인다.

잊을 만하면 정초에 다짐했던 각오도 되새길 겸 흔들리는 마음을 찾으러 시장을 간다.


지난 일 년 동안의 감사함을 담아 아쉬운 이별을 준비한다. 힘차게 달려오는 경자년의 뜨거운 태양 속에 새로운 마음을 담아 새해에도 '잘 살아보리라, 열심히 살을 것이다'.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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