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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채윤 Jul 20. 2023

둘째 밤

 230720

 


 이모가 내 글을 아카이브 할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록 하루 종일 노트북을 붙잡고 글을 쓰는 게 내가 하는 일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하나쯤 더해도 상관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오전 열한 시부터 한겨레교육에서 진행하는 온라인 플롯강화입문반 수업이 있었는데 더위에 지쳐 깬 것도 잠든 것도 아닌 상태로 계속 자다가 열한 시 십오 분에 일어나 시계를 보곤 불에 덴 듯 놀랐다. 서둘러 접속했는데 다행히 본격적인 수업은 시작하지 않은 상태인 것 같았다. 오늘 강의에서 강사 서유미 작가가 가장 먼저 한 말은 ''내가 왜 소설을 쓰는가'라는 질문을 버리세요'였다. 하긴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소설을 쓰는지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가지는 순간 소설 쓰기를 그만두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비단 소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글을 쓰는 것은 당장 나에게 먹고 입고 자고 할 것을 보장해주지 않으니까. 매일 꼬박꼬박 회사를 나가 자신의 시간과 최소한 최저임금 이상을 교환해 오는 이들과는 비교되는 것이 사실이다. 삼 주에 한 편, 원고지 8-9매에 9만 원. 내가 칼럼을 써서 버는 돈이다. 이 돈으로는 아무것도 대비할 수 없다. 티클은 모아봐야 티끌일 뿐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 주는 액수다. 물론 '땅을 파 봐라, 9만 원이 나오나' 하는 식의 말에는 대꾸할 말이 없다. 그러나 나는 인생을 갈아서 칼럼 한 편 한 편을 쓰는데 편당 10만 원도 안 되는 돈이라니. 칼럼을 모아 낸 책도 생계를 꾸려갈 수 없을 만큼이었던 것은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책은 성경이나 해리포터 시리즈처럼 계속 팔리지 않는 한 단기적인 수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가? 자꾸 써지니까.라는 대답 말고는 할 말이 없다. 구태여 노트북을 켜지 않아도 종이만 보이면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쓴다. 나는 이렇게 되어먹은 인간이구나-싶다. 

 

 


 오늘은 하루 종일 더웠다. 기온은 삼십 도를 웃돌았고, 노트북은 미친 건지 날씨 표시 란에 '더 더운 것 같음'이라고 써서 내보였다. 구조신호인가, 싶어서 노트북 밑에 받쳐 놓은 팬을 켰다. 엄마 아빠와 호윤이는 내 친구 학부모님들과 함께 인제의 계곡에 놀러 갔다. 점심때 엄마에게서 카톡이 왔다. 

 -너무 덥지 않게 하고 있어.

 세 시가 넘어 할머니가 오고 나서야 에어컨을 켰다. 엄마는 내 병원비보다 전기세가 적게 나온다며 더위 먹지 말고 건강을 가장 아끼라고 말했지만, 역시 나 혼자 있는데 에어컨을 켜기에는 눈치가 보인다. 일곱 명이 사는 이 넓은 집에서. 항상 와글와글 물건들과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 넓은지 알 수 없는 이 집은, 덥거나 추울 때 나를 눈치 보게 함으로써 그 넓이를 증명한다. 넓은 집은 응당 전기세가 많이 나오기 마련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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