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단상
올봄에는
꽃피는 순서가 없나 봅니다
잠시 한눈팔다 보니
목련도 개나리도 산수유도 벚꽃까지
한꺼번에 앞다퉈 핍니다
아침에 훈풍이 불길래 가볍게 나섰는데
해 질 녘에는 찬바람이 몰아칩니다
아직, 봄이라 방심 마라
겨울이 떠나가며 마지막 시샘 하나 봅니다
큰아이 수술이 잡혀 오랜만에 지나게 된
청라언덕
목련이 피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잠시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습니다
내일, 큰딸 수술방에 넣어 놓고
여기로 와 스케치북을 펼칠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은 동산의료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동무생각에 나오는 그 청라언덕에는
몇 채의 선교사 가옥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선교사 가옥 뒤쪽의 건물은
십여 년 전에 새롭게 지은 대구제일교회입니다
대리석으로 욕심껏 지어 올린 저 건물 덕에
청라언덕과 나지막한 선교사적벽돌 가옥들이
하늘과 머리 맞댄 정겨운 풍경은 이제 없습니다
인근에 백 년이 넘은 역시 근대문화유산이었던
대구 제일교회가 구건물을 남겨두고 새롭게
옮기면서 만든 풍경입니다
혹, 대구 근대문화유산골목 투어를 다녀 보신 분들을
이 건물이 얼마나 건방지고
위풍당당하게 하늘을 찌르고 있는지 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세월이 흐르면서
원래 있던 하나의 풍경처럼 조화가 생기는 것도 참 신기한 일입니다
어제는 인근 이상화 고택에서 퇴근하는 딸을 기다리다
30분쯤 비길래 휘리릭 그림을 그렸지요.
수술을 앞두고 머리가
어지러울 텐데 근무한 딸과 함께
귀가하려 직장 앞으로 갔습니다.
이제는
집을 나설 때 스케치북하나 있어야
맘이 든든해집니다
그림이야
늘 그 자리고, 모자라지만
늘 집을 나설 때 묵직한 화구들이
따라 길 나서는
이런 봄날이 참 좋습니다
소박하고 순결했던
백 년 된 제일교회당처럼
다닥다닥 머리 맞댄 소박한 근대인물들의 고택처럼
정갈한 하루가 되기를
혹여라도
대리석으로 언덕높이
십자가보다 높이 위선의 탑을 쌓지 않는 날들을
기도하렵니다
비록, 간단한 수술 이긴 하지만
이름 도 모를 조선땅으로
신앙에 기대 찾아온
선교사들의 순진한 기도처럼
기도하렵니다
봄입니다
목련이 피고 진달래 개나리 벚꽃이
앞다투어 피어오르는 봄입니다.
모두 같이 가시지요
봄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