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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 Feb 03. 2023

엽서 한 장 써주세요

아침바람 찬바람에

   

   쎄쎄쎄

   아침바람 찬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우리 선생 계실 적에 

   엽서 한 장 서 주세요

   구리구리구리 가위바위보



"아침바람이 찬바람이 되어 불고

기러기들이 울며 날아가는 날

글씨를 아는 선생님한테

나는 잘 지내노라

엽서 한 장 써달라 부탁하는" 

가사는 아침바람보다 더 쓰라립니다.


가만 돌이켜 생각하면

엽서 한 장 부탁하는 이는 바로

징용 간 아버지 일 수도 있고

팔려간 정신대 누이일 수 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동요가

일제의 잔재임을 알았을 때

아련하고 낭만적인 가사 속에

쎄쎄쎄( せっせっせ ) 구리구리(ぐりぐり)

같은 일어들이 버젓이 

사용된 것을 이제야 느꼈을 때

내 유년시절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었지요.


사라져 가는 것들은

잊혀가는 것들은

모두 다 아쉬운 것일까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사라져 가는 것들

잊혀 가는 것들에 미련이 많은 것은

새롭게 다가올 것들에 대한 불안이 높아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과

잊혀야 할 것,

구분할 지혜가 우리에게 필요한 

시기 일지 모르겠습니다.


띄워 보낼 곳 없는 엽서에 그리는 그림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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