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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 Mar 21. 2024

넷플릭스의 한국어 자막이 불편하다

예술을 소비재로 전락시키는 천박한 기술, 모국어 자막

넷플릭스를 비롯 한 거의 모든 OTT 서비스들이

하나같이 한국어 콘텐츠에 한국어 자막을 지원한다.


모국어 자막지원은 어디에서 왔을까?

 한국어 콘텐츠에 한국어 자막이 나가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예능프로그램들이 원조가 아니었나 싶다.

가끔씩 영상 한구석에서 등장하던 모국어 자막은

“무한도전” “1박 2일”이 전성기를 이루던 시절을 지나며

다양한 형태의 자막과 아이콘들을 통해

집중과 강조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 같다.

특히 “무한도전”의 해골모양의 아이콘과 같은 이미지와 문자, 문장이

효과음향과 함께 영상의 보완재로 완벽히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것 같다.

웃어야 할 포인트를 짚어주고 흐름에 따라올 수 있도록

자막은 여러 가지 도움을 제공한다.


요즈음에 모든 한국어 OTT 콘텐츠에는 한국어 자막이 붙는다.

굳이 한국어 영화에 왜 한국어 자막이 붙이기 시작했을까.

가만히 살펴보면 여기에는

예능에서 사용된 자막과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건너뛰고, 생략하고 빨리 보며 스토리를 파악하려는 우리의 습성

아마도 추측건대 “빨리 보기”

배속시청이 그 원인 중 하나 일 것도 같다.

천천히 스토리에 몰입하고 동화되는 것보다

스피디하게 작가의 설정에 동의하고

다음으로 다음으로 빠른 전개를 원하는

시청자들의 요구에 가장 적절히 부응하는 방법 중 하나가

자막인 것 같다.


성적지상주의 교육의 세례를 온전히 받은 우리들은

건너뛰고 생략하고 빨리 보고 요약할 수 있는 능력을

무기라 생각하며 자라왔다,

자막은  영상물에서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또 다른 치트키이다.


더 많은 콘테츠의 빠른 소비를 위한 방법 자막

한국어  자막지원은

최대한 실용적으로 스토리를 요약하고 압축하여

빠르게 이해하고자 하는 시청자들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반응한 방법이다.

이를 통해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렸다,

거의 모든 유투브영상들이

자막을 같이 사용하는 이유도 동일하다.


스토리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영상시청의 목표로 착각하는 시대

자막은 놓치기 쉬운 대사를. 작가의 의도를, 영상의 분위기를

문자로, 또 한번 읽는 방식으로 보완해 줌으로

배속시청을 더욱더 용이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

빠르게 감기를 통해 주요 장면의 자막만 읽고 지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보고 느낄 자유마저 박탈하는 자막

이 것뿐일까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지문을 자막으로 제공하는 것

‘의미심장한 음악’ ‘긴장감이 고조되는 음악’ 같은 지문의 제공은

도대체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마치, 제작자 속에 들어간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하는

다양한 지문들


마치 시나리오 그대로를 옮긴 듯

“숨을 헐떡이며” “거친 숨을 몰아쉬며 “"숨 고르는 소리"

같은 자막을 도대체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음악의 느낌, 배우의 연기의 의미를 자세하게

문자로 설명을 해주고 있다.

시청자 감상자가 음악을 효과음을 들으며

생각하고 느껴야 할 감정을

배우의 연기를 보며 공감하고 느껴야 할 장면을

미리 재단하여 알려준다.

이 음악은 긴장감이 고조되는 음악이라 미리

알려준다. 이 숨소리는 배우의 공포감을 표현해준다 며

세세히 감상의 가이드를 제공한다.


드라마 혹은 영화를 감상한다는 것이

작가의 의도를 최대한 올바르게 따라가야 하고

스토리를 알아가야  정해진 결론에 도달하는 하는 것이라면

자막은 의미 있는 작업일지 모르겠다.


예술을 소비재로 전락시키는 천박한 기술, 모국어 자막

하지만 지금 OTT의 자막은

영상의 빠른 소비, 대량 소비를 위해

일방적으로 소비자의 편의를 핑계로

영화 드라마 소비자의 감상의 기회를 박탈하고

생각하고 느낄 주체성을 빼앗고 있다.


감상의 미덕을 가로채고

드라마 영화를 통해 소통하고

공감에 이르는 데까지의

크고 낮은 진입장벽을

아예 없애고 있다.


이것이 예술일까, 드라마일까, 영화일까,

OTT 플랫폼들의 폭력적 소비유도에

무기력한 우리는 허무해진다.


작품과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하고 생각하며 공감에 이르는

기회조차 빼앗아 버리는 자막

OTT 플랫폼들이

드라마 영화들을

예술이 아니라

소비오락재로 용도를 바꾸고 있다.


느끼고 생각하고

다양한 감상을 허용하지 않고

음악의 느낌, 배우의 연기의 감상법을

자막으로 친절히 가이드하면서

일방적인 소비를 하도록 요구한다.


감상조차 사치가 되는 시대가 된 것인지 모르겠다.

의도와 줄거리를 빠르게 이해하고

버리는 시대 .

즐기는 인스턴트 영상


쓰고 버리는 감정소비재로 전락하는 드라마, 영화

나는 넷플릭스, OTT의 자막이

불편하다.

아니, 혐오스럽다.

내 감정을 내 오감을

가로채고 재단하려 한다.

드라마와 영화 영상을

느끼고 생각하고 다양하게 감동하는

예술로부터

소비하고 버리는 단순 오락물로 바꾸려는

그들의 저열한 의도


나는 내가 스스로 느끼고 싶다.

드라마와 영화 영상들을

다양한 감성으로 내 방식으로

예술로 느끼고 싶다.


나는 한국어 자막이 싫다..

나를 바보로 만드는

모국어 자막이 정말 싫다.

나는 살아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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