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운 Oct 11. 2023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알빠노를 조장하는 사회


명절을 사촌형제들과 조카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24명이라는 대 식구가 오랜만에 모여 저녁만찬을 나누고

추석아침 예배를 같이 드리고 정을 나누는 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대가족이 모여 뷔페처럼 각 가정에서 준비해 가져 온  음식들을 차려놓고

긴 저녁만찬을 즐기고 그러고도 아쉬움이 남아

마당 한 귀퉁이에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불멍'을 갖고자 시작했지만

불곁에서 세대를 넘나드는

대화의 성찬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가끔 만나도 " 잘 지내지?" "공부는 잘하고?" 일상의 안부 이상의 대화를

가져보기 힘든 조카들과 삼촌들 숙모들이 모여 앉아 보름달을 벗 삼아 나누는

'대화의 성찬'은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모닥불은 고모부의 연애이야기를 꺼내놓게 만들었고 중학생 조카들의 목소리도

듣게 해 주었습니다.

'모닥불' '마당' '보름달'은 일상의 삶에서 우리 모두를 행복한 일탈의 대화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정서의 세계가 좋은 이유 일 것입니다.

아마도 일상으로 복귀한 가족들은 가끔 모닥불에서의 시간을

꺼내 덮으며 힘든 일상을 이기는 에너지로 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 중학생이 된 조카는 질문의 요정입니다.

평소에도 주말마다 만나는 아빠 곁에 붙어서

질문하기를 좋아한답니다.


"아빠 북두칠성은 어디 있어" " 어, 저쪽 북쪽 하늘에 오늘은 잘 보이지 않지만 7개의 별이 국자모양으로

늘어져 있어." " 그러면 북극성은 어디 있어?" " 북극성은 지구의 자전축의 중심을 따라가면 밝게 빛나는 별이지" " 지구의 자전축은 어떤 거야?""어 지구는 똑바로 서서 회전하는 것이 아니라 23.5도 기울어져있어 지구는 약간 비스듬히 누워서 회전하고 있어."


하지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아빠는 신기하게도 그 모든 질문을 최대한 성실히 답변해 줍니다. 저녁 내도록 지켜보던 부녀는 끝없는 질문과 끝없는 답변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일상에서 주고받는 질문은 사실 질문이 아닐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생각을 정리하고 확인을 받고자 할 경우에도 질문의 형식을 빌립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맞지?' 질문이라기보다 동의, 동조를 구하는 과정일지 모릅니다.

그런가 하면 처음부터 질문의 형식을 빌렸지만 질문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자 질문의 형식을 빌렸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때 답변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더라도 교정하거나

답변을 수용하는 경우도 잘 없습니다.


또 다른 의미의 질문도 있습니다.

지적이나 교정을 요구할 때 스스로 에게 환기시키도록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이거 맞나요?" 이 질문을 상사에게 받았더면,

남은 하루 시간은 마음이 무척 불편하게 지내야 될 것 같습니다.


"잘 지냈지?" 오랜만에 만난 조카에게 이런 질문을 던질 때는  잘 지낸 구체적인 이야기 혹은

잘 지내지 못한 이야기를 듣고자 함이 처음부터 아닙니다.

"공부는 잘하고?" "시험 잘 쳤어?" 많은 질문들은 사실은 공부를 얼마나 잘하는지

시험을 얼마나 잘 쳤는지 처음부터 궁금하지 않습니다.

질문을 한다는 것 관심의 표현이고 소통의 시작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호기심 충족을 위한 일방적인 질문이 아니라면

질문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의도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답을 귀담아듣지 않는 질문은 공격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은 상대방에 대한 일방적 공격입니다.

어릴 때 우리 모두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합니다.

그때의 질문은 공격이 아닌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는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학령기에 접어들고 까지 이런 식의 질문은 난감합니다.

좋은 질문이 좋은 답변을 만듭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질문이 필요합니다.

아니 관심과 애정이 필요합니다.

'알빠노'라는 신조어가 판을 칩니다.

'내 알바가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이 신조어는 사실 정치적 무관심을 조장하는

의도성이 있어 보입니다.

정치적 무관심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노리는

혐오조장과 다름없는 악행입니다.


비록 모닥불 곁에 따스한 질문이 오가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질문은 필요합니다.

알빠노가 아니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웃을 알아야 하고 사회를 알아야 합니다.

질문 그 너머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듣는 것 에서부터 이 사회는 회복될 것이니까요

모닥불가로 모이는

가을이 되기를 빌어 봅니다.

말의 성찬과 애정과 관심의 충만을 기원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심야출동! 당근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