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돌풍"의 나쁜 전제
스포일러가 일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글을 적으면서 이 드라마에 스포일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박동호가 자살한다' 정도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을까 싶습니다. 12회 차에 걸쳐 음모와 음모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스토리는 마지막 회쯤 되면 1,2부에 도대체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없습니다. 어찌 되었던 스토리에 의지하여 감상하는 분께는 일부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설경구와 김희애, 박경수작가와 김용완 감독의 넷플릭스 드라마 "돌풍"이 1부 12회를 공개했다
개인적으로는 박근혜의 탄핵 이후로 정치드라마의 흥미가 없어졌다.
최근에 정치현실을 바라보노라면 현실보다 더한 정치 드라마가 어디에 있을까 싶어서 인가 보다.
2015년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이 나왔을 때 '설마 저렇게 까지......'라며 영화적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다가 곧이어 벌어진 '박근혜정권의 국정농단'에 관한 사실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자 모두는 "내부자"가 결코 영화가 아니었다고 다시 한번 주목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서울의 봄'과 같이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제외하고 정치적 상상력으로 구성한 영화들이 성공한 예를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아무리 상상해도 현실의 정치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조진웅과 이성민, 김무열이 함께한 넷플릭스 영화 "대외비"만 해도 설정 자체가 도식적이라 느껴지며 인물 간의 갈등 역시 현실감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왜 그럴까, 몇 가지 가정을 하자면 박근혜 탄핵사건을 기점으로 정치드라마의 효용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과거 정치영화 드라마는 영화적 상상력과 드라마틱한 반전도 중요하지만, 정치드라마가 가지는 가장 중요한 미덕은 "공의" "공감"과 "공분"이다. 그것은 우리의 정치가 적어도 지금까지는 독재와 민주 부패와 반부패의 대결구도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의"와 "불의"의 싸움을 지켜보며, 다양한 정치적 장치들을 통해 우리는 영화, 혹은 드라마 속에 몰입되어 갔었다.
하지만. 돌풍에는 공의와 공분이 없다, 모든 것은 거짓말이라는 함의 하에 진행되는 정치배틀 여기에 진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변절한 민주투사들의 역겨운 정치싸움" 작가는 이를 두고 "위험한 신념"과 "타락한 신념"이라 설명한다.
돌풍에는 정치의 효용성과 가치는 없다, 설정을 조금만 바꾸면 한 편의 잘 짜인 도박 드라마처럼 보인다. 거짓과 거짓이 충돌하고 블러핑과 블러핑이 대결하며 결국은 더 큰 거짓이 승리하는 도박영화
청와대의 전경이 첫회부터 무수히 등장한다. 부감샷을 비롯해 배경의 바위산까지 무수히 등장한다. 너무나 촬영세트임을 짐작케 하는 조경과 청와대 지붕의 색깔, 왜 굳이 극의 몰입을 방해하고 퀄리티를 떨어뜨리는 허접한 세트를 계속 등장시킬까. 마지막 박동호의 죽음의 장면을 위한 장치로만 보기에는 아쉬움이 많다. 마치 부엉 바위를 연결하기 위한 장치라면 아쉽다.
수많은 전직대통령의 사진을 전시하고 있는 청와대 회랑과 대비되는 갓 조경한 허접한 청와대는 "돌풍"의 구성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읽힌다.
박경수 작가가 설명한 "위험한 신념"과 "타락한 신념"의 대결구도가 마치 잘 정리된 청와대의 회랑과 같다면, 끝없이 반복하는 반전의 반전들은 결국 허접한 청와대세트장의 조경과 같다.
1. 괴물로 전락한 민주투사
인권변호사 장일준은 부패한 대통령이 된다.
전대협의장 출신 한민호는 타락한 CEO가 되어 재벌과 결탁 부패한 행보를 계속한다.
민주투사 정수진은 권력의 야망에 빠진 채 정치적 아버지인 장일준대통령을 시해한다.
박동호는 장일준과 정수진의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대통령을 시해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전대협출범식 현장에 함께 투쟁하던 청년은 민주노총의 대표가 되어 정수진의 회유에 넘어가고, 민주노총은 대표의 한마디에 따라 모든 조직이 움직인다.
한민호에 우편에서 함께 구호를 외치던 청년은 대한변협의장이 되어 정수진의 의도대로 움직인다. 대한변협이라는 조직과 함께 정수진에 뜻에 따라 움직인다.
"전대협, 한총련을 비롯한 386세대 그리고 당시 그들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인권변호사들 역시 결국은 모두 타락했다. 심지어 악랄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가의 기본 설정은 거의 모든 대사에 투영되어 있다
2. 무뇌의 국민
정수진에 의해 동원된 민주노총과 태극기 부대는 같은 시간 사이좋게 대열을 꾸렸지만. 뉴스 속보 하나에 뒤엉켜 난장판의 싸움터로 변한다. 박동호와 정수진이 만드는 반전 하나하나마다 마치 개돼지처럼 무지성으로 반응한다. 반전의 반전이 있을 때마다 Tv앞에 있는 시민들은 파브르의 개처럼 반응한다.
심지어 몇 번에 걸쳐 대통령의 시해범이라는 빼박 증거가 드러나도 또 다른 반전의 증거 앞에 모든 국민들은 곧장 의심을 거둔다.
태극기 부대와 민주노총, 혹은 시민단체들 까지도 정수진의 지휘아래 혹은 박동호의 계획 아래 감정 한번 없이 분노하고 반응한다.
적어도 "돌풍"속의 국민들은 무뇌아들이다. 회차마다 그 숱한 반전마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그저 집단적으로 움직인다.
돌풍"속의 국민은 어쩌면 가끔씩 정치인들의 발언 속에 등장하는 바로 그 개, 돼지이다. 들쥐떼들이다.
3. 덫과 음모만 난무하는 정치
회차마다 반복되는 반전은 음모와 증거의 연속이다. 심지어 한번 나왔던 증거 만으로도 그다음 회차가 이어질 수 없을 정도의 내용이지만, 또 다른 반전의 증거로 앞서 증거는 휘발된다. 작가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지만 그는 작품을 써내려 갈 때마다 다음 회차에서 결코 부활할 수 없는 만큼 극적인 장치를 몰아갔다 했지만, 회차가 바뀌면 전회의 내용은 휘발된다.
정수진의 비서관은 박동호의 비서관에게 동일한 덫에 빠진다.
정치는 국민의 생존과 삶이 직결되어 있다.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적어도 "돌풍"속의 정치는 국민들의 삶은 안중에도 없다. 정의와 공의도 없다. 신념이라 포장된 욕망과 욕망이 부딪힌다.
4. 반복되는 패턴
드라마의 박진감을 위해 시간적 장치나 현실적 구성은 처음부터 비켜갔다.
대통령의 임종과 관련해 소수만 개입했다던지. 대통령의 죽음과 관련한 어떠한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든 지, 청문회와 대통령의 회견이 동시화면에 잡히다 못해 실시간 관여한다 든 지. 대통령의 유고상황에서 국무총리의 유고까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국무의원들이 사퇴한다든지, 현실 행정부에서는 겵코, 이루어지지 않을 설정을 반복하여 사용한다.
대충 숨겨둔 카메라나 녹음기로 비밀 대화를 기록하고, 그것을 터뜨리거나 협박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패턴이 계속 반복된다. 끝없이 이 패턴이 반복되지만, 또다시 녹취당한다 아무도 주의하거나 의식하지 않는다.
12회가 진행되는 동안 모든 반전의 소재는 거의 동일하다. 마치, 도박영화에서 더 높은 패가 난데없이 등장하고 그러자, 그 패을 이기는 상상할 수 없는 패가 또다시 등장하는 방식이다.
정치적 현실감은 배제된 채, 아예 게임처럼 도박처럼 정치를 희화화시킨다. 헌법재판소의 모든 판사도 가볍게 회유되거나 뇌물 앞에 굴종하고, "신념"을 가진 박동호와 이장석검사 서기태의 동생 외에 모두는 강영익 회장의 손아귀에 휘둘린다.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그것이 푸르른 청년의 때에 한목숨 민주주의의 재단에 바친 청춘이라도 세월과 삶 속에 변한다.
불의에 맞서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으며 거리로 뛰어나가던 청년들도 가장이 되고 어머니가 되면서 자신의 안위를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진리의 상아탑에서 불의에 맞섰던 기억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박근혜탄핵시위 때 장성한 자녀들과 촛불을 같이 들었고, 윤석열정권의 폭정에 지금도 분노한다.
변절자들이 있다. 인천노동자시위의 최선봉에 서 있던 김문수는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변절했다,
믿지 못하겠지만 원희룡도 80년대 노동운동의 최전선에서 독재타도를 외치던 사람이다.
2008년 치러진 18대 국회의원 선거는 386 급진세력들, 특히 노동운동을 하던 많은 이들이 한나라당으로 변절하여 정치에 입문한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도 민주당을 이끄는 중추는 386 세력들이다, 물론, 이들도 변했다. 최근 우상호의원은 국회의장선출과 관련하여 우려스러운 행보를 해 온 것도 사실이다. 송영길도 다양한 문제들을 보여준다.
386세대들의 세계관을 움직인 변증법의 기본원리가 "모든 것은 변한다"이다.
하지만, 변절과는 다르다. 변절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절개나 지조를 지키지 않고 배반함'이라 적혀있다. 이는 기회주의적 속성과 함께한다. 386 출신 중에 많은 사람들이 정치인의 행보를 걸어왔고 이 과정에서 기회주의적 속성과 함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변절을 택한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386이 변절의 길을 택하거나. 기득권의 삶을 살면서 기회주의자로 변절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돌풍은 모든 386세대를 변절자로 낙인찍는다.
결국 정치는 더러운 것이고, 이해관계에 얽힌 권력자들의 암투이며 우리는 마치 개, 돼지와 같이 그들이 벌이는 게임의 결과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인다.
1부의 마지막까지 따라가보아도 박동호의 열사적 이타적인 죽음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목숨 걸고 도박을 한 타짜의 모습이 보인다.
지금, 현실 정치에는 채상병의 죽음 만으로도 일 년이 넘는 진실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생물의 정치는 이러하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것이 정치이다.
"돌풍"은 민주화세대의 변절을 기정사실화하고, 마치 도박판과 같은 정치판에서 국민들은 개, 돼지처럼 그들이 보여주는 패에 따라 요동치는 들쥐떼와 같이 묘사한다.
요즘 정치의 효용감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정치인들이 민의를 대변한다고 느낄 때 우리는 정치의 효용감을 느낀다.
"돌풍" 12부가 마쳤지만. 또다시 2부가 예고된다.
12회나 끌어 온 동일패턴의 반전과 국민이 없는 정치, 도박판과 같은 정치 외에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있기나 할까?
자그마한 바람은 "돌풍"이 이대로 끝나기를 말 그대로 돌연히 불어왔던 돌풍이 잠자기를 바랄 뿐이다.
미안하다, 잔정 한 "돌풍"은 국민들의 가슴에 불어야만 한다.
더 이상 정치를 비하하고 희화하 하지 마라, 정치는 그래도 우리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