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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 Aug 29. 2024

그날이 오면

구월을 기다리며 - 달력과 심훈



지인이 가죽종이를 재단하여

달력을 보내주셨습니다.

한해분은 정갈한 글씨로 적어주시고

나머지는 빈여백으로 두해 분을

여분으로 챙겨 보내주셨습니다.


날짜를 기억하는 것이야

이미 핸드폰과 워치 PC로 바뀐 지 오래되었지만

한 달 동안 처다 보지 않다가도

달이 바뀌면 달력을 바꾸는 일이 즐겁습니다.


어릴 적 달이 바뀌면 월력을 찢어 넘기며

다음 달에 생일이며, 대소사를 적어 넣던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


달력에 날짜를 그려 넣다 문득

"내가 살아 낼 날들을 내가 적는" 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쓴 날짜만큼 내가 살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내가 달력에 쓴 날짜만큼 내가 누릴 수 있다면

나는 얼마나 많은 날짜를 그려 넣을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적당히 살만큼 날짜를 적고 싶은데

적당히 살만큼은 얼마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디까지 욕심인지 모르겠습니다.


한 달 한 달 

내 살아갈 날짜를 적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도대체 꺾이지 않을 것 같은 더위가

어제, 그제부터 수그러지기는 합니다.

어쩌면 광복의 기쁨이 도대체 뭔지 모른다는 인간들에게

독도마저 지우려는 매국노들에게

8.15 광복의 뜨거운 그날을

기억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심훈은 3.1 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1930년 <그날이 오면 >이라는 시를 씁니다.

1919년 3,1 운동을 기억하며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꿈꾸며 이 글을 씁니다.

심훈은 1936년 향연 36세로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병마로 사망합니다.

이 글은  심훈이 죽은 후 1949년 그토록 그리던 조국이 해방된 후  

간행되었습니다.




           그날이 오면 


                                                          심 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두개골이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겠다는 심훈의 노래가

새삼 안타깝고 죄책감이 듭니다.


오늘은 경술국치일입니다.

나라를 잃어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것인지

새삼 돌아봅니다.


가을이 옵니다.

책장에 먼지 털어내고

항일운동사. 민족해방운동사. 해방전후사

한번 꺼내 읽어 볼까 합니다.


내 살아갈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날이 오면 두개골이 깨져도 좋다는 심훈이

그토록 원하던

해방된 조국을 살고 있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구월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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