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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 Jun 29. 2024

대궁밥을 아시나요? II

엄마와 동생의 밥상



사실은 대궁밥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https://brunch.co.kr/@topgunkk/226(대궁밥을 아시나요?)

생각의 갈피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주제가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대궁밥은 풍족하지 않은 공동체에서 배려와 존중을 통해 

적당한 허세의 밥상을 모두가 즐기게 했다."는 

주제로 글을 써나갔지만 또 다른 갈피로 글이 같이 쓰였습니다.

자꾸만 글이 커지고 하나의 글을 묶어 내기는 벅찼습니다.

서둘러 첫 번째 글을 처음 생각했던 주제대로 정리하고

복잡하던 갈피를 찾아 또 다른 대궁밥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대궁밥 국어사전에 보면 먹고 남긴 밥이라 쓰여있습니다.

문화사전에는 웃어른이 먹고 남은 음식을 아랫사람이 받아서 먹는 식생활 풍속이라 적혀 있습니다.

궁중에도 그러했고 가정집에서도 그러했습니다. 가부장 사회는 식사예절도 대궁밥상이었습니다.

물론, 사전의 뜻처럼 남긴 밥. 남긴 그대로의 밥이 아니라

다시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을 뜻합니다.

궁중에서도 왕이 식사한 후 그 상을 물려 다시 정갈히 차려내는 상을

대궁상이라 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저녁 식사 풍경이 있습니다.

그래도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대여섯 살 쯤 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지간에서 방으로 나있는 작은 쪽문으로 준비된 식사가 들어오고

방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내가 받는 작은 개다리소반 하나

그리고 커다란 호마이카 밥상에 나머지 식구들, 그리고 군식구들의 밥상이 차려집니다.

머리에 흰 수건을 쓰고 있는 어머니는 두 밥상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가족들의 식사를 위한 군 심부름을 합니다. 

물 달라 외치는 아들에게 물을 떠다 주고 식사가 마칠 때쯤

잘 끓인 숭늉을 밥상으로 들입니다.


어머니가 언제 식사를 했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찬찬히 기억을 더듬어 보면 모두가 밥상을 물린 후

아마도 고모랑 함께

정지간에서 식사를 하셨던 것도 같습니다.


엄마는 대궁밥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이 식사를 마치면 하던 식사마저 멈추고

밥상을 물리고 설거지를 했습니다.


아마도 기억하건대 70년대 초반 어드메였던 것 같고

시골에 있던 삼촌 고모들은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를 마치면

대도시에 있는 우리 집으로 올라와 우리 가족과 기숙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 유년의 기억 속에는 항상 삼촌 고모들이 있었습니다.

이제와 보면 제법 먼 친척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통칭, 고모 삼촌이라 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내 기억으로도 그리 오래지 않아

이런 이촌향도 속에 군식구와 함께하는 

대도시의 대가족의 식사풍경은 

얼마 가지 않아 사라졌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어머니는 식사 중에도 가족들의 

식사 수발을 들었습니다.


또 다른 장면도 있습니다.


지금도 여동생은 명절에 모이면

할아버지와 오빠 밥 속에만 몰래 묻혀있던 날계란 이야기를 합니다.

매번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밥그릇 맨 아래 날계란 하나가 왜간장과 함께 묻어져 있는 밥

겉으로 봐서는 구분이 안되지만 숟가락을 푹 찔러보면 노란 노른자가 숟가락에 묻어나옵니다.

매번 계란밥을 먹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내 기억에 동생은 주지 않고 나 혼자 먹었던 

계란밥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대궁밥은 여자의 밥상이었습니다.
대궁밥은 아이의 밥상이었습니다.
대궁밥은 사회적 약자의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밥이었습니다




배려와 존중의 대궁밥

아무리 배려해도 마지막 순서는 슬픈 법입니다.

아무리 배려를 해도 분명히 약자는 있었습니다.


물려받은 대궁상에는 모자라는 찬이 분명 생겼고

식사량도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양보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고 

그 양보, 배려의 크기에 따라 대궁상의 푸짐함은 결정됩니다.

배려와 존중은 완벽한 하나의 짝처럼 보이지만

서열과 권력은 엄연히 정해져 있습니다.

대궁밥의 의미가 아름답려면

어느 한쪽은 배려 반대편은 존중이 아니라

상호 배려와 존중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합니다.

배려라는 말에 시혜라는 의미가 조금만 개입하고

존중이라는 말에 관례와 약자의 조금만 끼이게 되면

배려와 존중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도 대궁밥을 먹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풍족한 세상은 적당한 배분을 요구합니다.

배려도 필요 없고 존중도 필요 없습니다,.

매 몫을 챙기고 남기도 버릴지라도 

내 몫을 누구에게 나눠주지 않습니다.


먹고 싶은 찬이 있어도 배가 덜 불러도

"어 잘 먹었다~" 하며 상을 물리는 어른도 없고

맛있는 것이 생기면 어른을 먼저 생각하는 아이들도 없습니다.

어른이 숟가락을 들기 전에 식사를 시작하지 않아야 된다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없습니다.


대궁상에 깃든 남녀차별, 가부장사회의 기억은

아프고 슬픕니다.

하지만, 대궁상이 사라진 사회에서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조차 사라져 가는 것 같아 

더더욱 안타깝습니다.


할아버지가 자전거 짐받이에 싣고 오셨던 

후지카 곤로가 들어오던 날을 기억합니다.

곤로 하나로 온 가족이 오랫동안 행복했던 그날,



내 기억에는 파란색 후지카곤로였었는데. 내쇼날 난로를 그려봅니다. 



어머니의 미소가 떠오릅니다.

밥상을 제일 먼저 받는 시아버지는

곤로를 사들고 오시면서

항상 밥시중하며 대궁상을 받는 며느리를

생각하며 더 기뻤을지 모릅니다.


대궁상보다 온 가족이 둘러 먹는 

진짜 공동체의 밥상이

그리운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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