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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종말은 오고 있는가?

" 아름답고 닫힌 세계의 끝에서" AI 문명 전환기에서의 기술철학 에세이

by 여운



2009년 겨울 아이폰3GS가 내 손에 들려졌을 때, 폰 뒷면의 사과로고는 새로운 세계의 입장권처럼 느껴졌다,

아이패드2를 장만하고 두 기계가 말없이 연동하는 것을 알아챘을 때 이 것이 신세계이며, 나는 그 선택된 특별한 리더그룹의 일원임을 느꼈었다.


2025년 15년의 세월을 지나는 동안 소위 "애플생태계"는 점점 더 확장하며 완벽해졌다. 아이폰은 끝없이 진화 헸고 아이패드와 맥북, 워치 등등 그들의 영토를 확장해 나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애플의 완벽하고 아름다운 닫힌 세계를 더욱더 치밀하게 관리하고 있을 동안 애플 밖은 서로가 서로를 찾아가며 연결하는 초연결의 시대를 만들어가며 무한확장하며 애플의 철옹성을 둘러싸고 말았다.


애플이 완벽미학을 추구하는 동안, 애플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서로를 필요로 하며 소통하기 시작하고 연결하기 시작했다, 초연결의 시대, ai의 시대가 도래하자. 애플은 더 이상 자신들의 제국을 외부 세계보다 더 발달된 제국으로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리는 무능한 비서로 전락하고 아름다운 PPT를 위해 선택하던 키노트를 사람들은 더 이상 찾지 않는다. 음악은 맥, 디자인은 맥이라는 사고는 무한으로 확장하는 세상 앞에 더 이상 최고라는 수식어를 가질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제, 애플은 스스로 철옹성을 걷고 세상을 향해 걸어 나올지, 완벽한 자신들의 세상에 갇힌 채 박제되고 말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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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종말은 오고 있는가?

"아름답고 닫힌 세계의 끝에서" AI 문명전환기에서의 기술철학 에세이


Ⅰ. 서론 ― 미완의 완벽과 연결의 부상


우리는 오랫동안 기술이 선사하는 ‘미완의 완벽’에 매료되어 왔다. 스티브 잡스가 완성한 “It just works”의 미학은 사용자에게 완벽한 일관성과 숭고한 안정감을 약속했다. 그것은 마치 잘 세공된 보석처럼, 내부의 복잡성을 완전히 감춘 채 매끄럽고 윤이 나는 표면만을 드러내는 기술이었다. 이 폐쇄적인 완벽은 우리의 일상에 깊은 신뢰를 심어주었지만, 동시에 그 완벽함이 스스로를 가두는 '기술적 유폐(幽閉)'가 될 수 있다는 역설을 잉태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세계는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기술의 가치가 ‘통제된 일관성’에서 ‘열린 연결성’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AI 혁명은 더 이상 하나의 주체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음을 선언하며, 기술의 진정한 힘이 분산되고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관계의 지평에서 발생함을 증명한다. 완벽을 위한 폐쇄성은 이제 성장의 족쇄가 되어가는 중이다.


이 에세이는 이 문명 전환기에서 기술철학이 마주해야 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AI 시대, 통제된 미학은 어떻게 관계의 언어로 재탄생하는가? 우리는 닫힌 세계의 끝에서 비로소 기술이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인간과 인간, 기술과 기술 사이의 활발한 대화 속에서만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획득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Ⅱ. 애플의 철학 ― 완벽의 미학에서 멈춘 기술


애플로 상징되는 닫힌 세계의 미학은 20세기 후반 디자인 인문주의의 정점이었다. 그들의 UX, 보안, 일관성에 대한 집착은 기술을 단순한 도구가 아닌, 신뢰할 수 있는 생활의 동반자로 격상시켰다. 이 느린 완벽함의 역사는 치밀하게 짜인 하나의 유기체와 같았으며, 외부의 먼지나 불순물이 침입할 틈을 허용하지 않는 성채와 같았다. 한국 사회가 아파트라는 폐쇄적인 공동체에 안온함을 느꼈듯, 우리는 애플의 '벽돌집' 안에서 디지털 안정을 구가했다.


스티브 잡스의 디자인 인문주의는 기술을 인간의 감성 영역으로 끌어들였고, 기술 결정론이 아닌 사용자 중심의 경험을 최우선에 두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철학은 그 시대적 한계에 갇혀버렸다. 잡스가 꿈꾼 세계는 한 명의 완벽한 지휘자 아래 모든 악기가 조화롭게 연주되는 오케스트라였다. 하지만 AI 시대는 오케스트라가 아닌, 수천 개의 거리 공연이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는 '광장(Plaza)'의 시대다. 이 광장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상호작용과 끊임없는 노이즈 속에서 새로운 창조가 일어난다.


잡스의 유산이 남긴 완벽주의는 속도의 시대에서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다. 세상이 초당 수억 개의 에이전트 요청과 API 호출로 움직이는 동안, 애플은 여전히 '하나의 완벽한 업데이트'를 위해 숨을 고른다. 이것은 결함이 아니라 철학의 차이겠지만, 느린 완벽함은 이제 시대착오적인 숭고함이 되어버렸다. 완벽의 질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Ⅲ. AI 혁명의 열린 질서 ― 연결이 만든 새로운 문명


AI 혁명의 본질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 간의 무한한 상호작용에서 비롯되는 ‘연결의 밀도’에 있다. 거대 언어 모델(LLM)이 촉발한 에이전트 네트워크와 API 생태계 더 이상 하나의 OS나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는, 무정형의 디지털 문명을 구축하고 있다. 이는 과거의 수직적 계층 구조가 아닌, 수평적이고 복합적인 '리좀(Rizome)'적 질서이며, 매 순간 건설되고 해체되는 유기적인 도시다.


구글이 지향하는 "풀스택 AI"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에이전틱 웹" 개념은 이러한 개방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이들은 특정 하드웨어의 미학을 완성하는 데 주력하기보다, 정보의 흐름 자체를 최적화하고 지능을 분산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특히 개인용 컴퓨터(PC) 위에서 구동되는 로컬 LLM의 부상은 통제된 서버의 손아귀를 벗어나 사용자에게 진정한 주권을 되돌려주려는 기술적 민주화의 시도이기도 하다.


애플의 완벽한 폐쇄성을 “성전 안의 완벽”에 비유한다면, AI 혁명의 열린 질서는 “광장의 역동”이다. 성전이 율법과 정제된 의식으로 질서를 유지한다면, 광장은 익명의 군중, 상인, 예술가, 시위대가 뒤섞여 예측 불가능한 활력과 논쟁, 그리고 창조를 낳는다. 기술이 광장으로 나왔을 때, 그 완벽함은 훼손될지 모르나, 그 영향력은 무한대로 확장된다. 성전의 아름다움은 고정되어 있지만, 광장의 아름다움은 매일 재정의된다.


Ⅳ. 사용자 경험 ― ‘아름다운 감옥’에서 만나는 갈등


아이러니하게도, 닫힌 세계의 미학은 사용자에게 ‘아름다운 감옥’을 선사한다. 이는 미학의 폭력성이다. 만약 애플이 iOS 26 Liquid Glass라는 궁극의 유선형 인터페이스를 선보여 모든 움직임이 물 흐르듯 아름답더라도, 그 완벽한 흐름이 단 하나의 외부 에이전트 개입조차 허용하지 않는다면 어떠한가. 사용자는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완벽함이 불편함의 다른 이름이 되는 순간이다.


최근 겪는 ChatGPT 연동의 절반 개방 현상은 이 모호함의 극치다. LLM의 지능을 받아들이되, 시스템 핵심을 내주지 않으려는 통제된 개방이다. 마치 철옹성(鐵甕城)의 문을 아주 좁게만 열어 외부 문물을 제한적으로 들이는 격이다. 이로 인해 사용자들은 진정한 연결이 아닌, 겉핥기식 통합에 만족해야 하는 기술적 딜레마에 빠진다.


이러한 갈등은 세대·문화별 딜레마로 이어진다. 변화에 민감한 젊은 세대는 AI의 실시간 역동성을 갈망한다. 반면

기성세대는 예측 가능한 시스템, 즉 애플의 '기술적 안정성'을 선호한다. 이는 단순히 선호의 문제를 넘어선다. 기술적 환경이 개인의 사회적 함의와 심리적 안정을 결정하는 기술시간의 정치학을 내포한다. 폐쇄된 시스템은 사용자에게 묻는다. '이 완벽함은 누구를 위한 유폐였는가?'


이 갈등은 시간의 문제로 이어진다.



Ⅴ. 기술시간의 정치학 ― 느림과 속도의 충돌


AI 시대의 기술은 느림과 속도의 충돌이라는 근본적인 시간적 갈등을 유발한다. AI는 사용자 데이터와 상호작용을 통해 실시간으로 학습하고 매초 진화한다. 이는 ‘순간의 완성’을 지향하는 역동적 시간이다. AI의 즉시성은 인간의 사유보다 빠르다. 반면, 애플이 고수하는 주기적 완성의 시간은 수년간의 엄격한 테스트와 검증을 거친다. '영원의 완성'에 도달하려는 장인정신에 가깝다.


두 시간의 충돌은 미학의 전환을 강요한다. 과거의 “아름다운 폐쇄”는 잡티 하나 없는 매끈한 표면과 예측 가능한 움직임에서 미적 쾌감을 얻었다. 하지만 이제 미래의 미학은 “아름다운 연결”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연결 자체, 즉 데이터의 역동적인 흐름, 에이전트 간의 기민한 협업이 새로운 시대의 아름다움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예측 불가능한 창발성(Emergence)이 곧 미학이다.


이를 중세 대성당 vs 르네상스 광장의 은유로 확장하자. 중세 대성당은 신의 완벽한 질서를 지상에 구현하려 했고, 느린 건축 과정은 신성함과 경외감을 불렀다. 이는 애플이 추구해 온 통제된 미학의 완벽한 상징이다. 반면, 르네상스 광장은 일상의 상업, 정치, 예술이 즉각적으로 교차했다. 매일 다른 형태로 재구성되는 소통의 장소였다. AI 시대는 기술의 가치를 숭고한 대성당 벽 안이 아닌, 끊임없이 진화하는 광장의 소란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선언한다.


이제 우리는 미래의 방향을 묻게 된다.



Ⅵ. 결론과 전망 ― 관계의 언어로 말하는 미래


AI 문명 앞에서 닫힌 세계가 취할 수 있는 미래 전략은 세 가지 갈래로 나뉜다.

복속(Subjugation): 자체적인 AI 역량 구축을 포기하고 외부 거대 AI 플랫폼(OpenAI, Google 등)에 의존하는 길이다. 단기적인 안정은 확보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스템 주권과 철학적 독립성을 잃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융합(Fusion): 현재의 많은 빅테크 기업들이 선택하는 전략으로, 핵심 OS의 보안성은 유지하되 제한적인 API 개방을 통해 외부 AI 에이전트를 끌어들이는 하이브리드 생태계 구축이다. 이는 과도기적 최선일 수 있으나, 여전히 '감옥의 문지기'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재창조(Re-creation): 기술철학적 대전환을 통해 시스템의 근본부터 개인화된 온디바이스 AI와 프라이버시 퍼스트(Privacy First) 패러다임을 구현하는 것이다. 완벽한 폐쇄가 아닌, 개인의 주권을 지키는 '주체적 폐쇄성'을 AI와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개방형 완벽을 창조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향이다.


애플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미래는 세 번째 재창조의 길 밖에 없다. 기술은 홀로 빛나는 독백이 아니라, 상대를 향한 대화가 되어야 한다. 디지털 공동체의 회복은 결국 기술이 투명하고 주체적인 열린 연결을 제공할 때 가능하다. 신뢰가 통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투명성에서 발생한다는 깨달음이야말로 이 시대 기술철학의 핵심이다.


완벽은 더 이상 닫힌 세계의 특권이 아니다. 관계의 언어가 곧 미래의 미학이다.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도구가 아닌, 인간의 관계를 증폭시키는 매개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AI 문명 전환기에서 진정한 자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 하나가 빠졌다

애플이 간과한 또 하나의 사실

애플이 문을 닫고 완벽한 업데이트를 준비하는 동안

세상은 마치 사계가 지나가듯 단 한순간도 정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또 다른 연결과 또 다른 관계를 끝없이 찾아 진화하는 중이라는 것을

즉, 완벽한 업데이트가 완성되는 순간,

이미 세상은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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