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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짓것 Jan 03. 2020

글을 쓴다는 것이 위로가 되기까지

01 그냥 일상, 소소한 생각들

어려서부터 막연한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글을 쓰면 당장 유명해질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환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생각이다. 왜 이런 환상이 들었을까. 아마 시골 동네에서 같잖은 공부를 조금 한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리라. 괜히 공부를 조금 하면 무엇이나 잘할 것 같은 생각을 주위에서 은근히 심어주었다. 아무 근거도 없는 허상이지만, 어린 마음에 잘못된 자신감은 거침없이 생긴다. 자신을 미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기대만 높아진다.


처음으로 난관에 부딪힌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로 기억된다. 공부만 조금 하면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도에서 주관하는 대회다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대회다 하는 곳에 내보내 진다. 그러고 보면 그때 선생님들도 공평하게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기보다는, 상을 타올 만한 학생에게 몰아주기를 한 것 같다. 어쨌든 그것이 선생님들에게 행정상 편의가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나도 글짓기, 서예를 비롯하여 심지어는 육상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육상은 도저히 내 취미와 능력에 맞지 않는 짓이었다.


글짓기 선생님은 어린 마음으로 보기에 엄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멋진 가르침이지만, 그때는 벅벅 빨간 글씨로 수정해주는 것이 어찌나 원망스러웠던지. 마치 매를 맞는 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대회에 나가면 상을 받았고, 그것이 마치 내가 잘한 것인 양 착각이 되었다. 나는 그저 순전히 선생님이 고쳐준 글을 대회에 나가 옮긴 것뿐이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문학청년을 꿈꾸는 학생들이 동아리에도 들어가고 작품집도 냈지만, 나는 들어가지 않았다. 공부도 해야 했지만, 아마 내가 진짜 글쓰기에 열정이 있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부럽기는 했다. 벌써 교내에서 누가 글을 잘 쓴다는 소문이 돌았고, 나도 그 글을 읽어보았지만, 그렇게 잘 쓴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 생각은 나의 교만일 뿐이었다.


밥벌이를 위해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글쓰기 때문에 호된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대리 시절인가 그랬는데, 회사 행사를 위해 글을 써야 하는 일이 부여되었고, 나는 절치부심하며 글을 썼는데, 부장님이 얼굴이 사색이 되어 나에게 말했다. 내 글은 질책을 많이 받았고, 다른 사람이 처음부터 다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부장님 눈에도 내 글이 신통치 않았으나, 점잖으신 분이라 결재를 올라갔다가 호되게 야단을 맞은 모양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회사에서 쓰는 글은, 감상문도 아니고 그 회사의 분위기와 상황에 맞게 써야 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체계적으로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다. 남들도 다하는 국어시간에 배운 게 전부다. 국어 성적이 잘 나왔다고 글쓰기가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글쓰기를 처음으로 배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이가 들어서 취미로 글쓰기 과정에 들어가서였다. 현직 작가들이 이론 강의도 하고, 첨삭도 해주고, 동료들끼리 작품 비판도 했다. 작품 비판 시간에는 혹독했다. 가슴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말들 때문에 상처를 받는 이도 있었다.


이제 글쓰기는 조용히 나를 정리하고 뒤돌아보는 도구로 활용하고자 한다. 나의 정신에 위로를 주고, 어루만져 주는 시간이 되고자 한다. 도를 닦듯 글 쓰는 시간 동안 마음을 차분히 정리하고, 영혼을 담아내어 다시 영혼을 건드리는 과정이 되리라. 할 일이 없다고 징징거릴 시간에, 차라리 글쓰기를 통해 시간을 보내고 수양할 수 있을 것이다. 자판을 꾹꾹 누르며 한 글자씩 나의 마음과 정신을 담아보리라. 이제야 글쓰기가 나의 친구이며 나를 위로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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