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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우 May 18. 2023

엄마도 엄마가 있단다

심쿵아, 엄마도 엄마가 있단다.


심쿵이가 엄마 뱃속에 열 달을 있다가 엄마가 배가 많이 아파서 나온 것처럼 엄마의 엄마도 나를 그렇게 낳았단다.


심쿵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는 두 시간에 한 번씩 젖을 먹었단다. 밤낮없이 젖을 먹는 아기를 위해 잠을 포기하고 젖을 물리던 엄마처럼 할머니도 엄마에게 밤낮없이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며 나를 돌보았을 거야.


백일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심쿵이와 엄마가 단둘이 있었던 그 새벽의 시간은 엄마의 삶에서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어. 두 시간에 한 번 눈도 제대로 못 뜬 채로 아기에게 젖을 물렸던 그 시간은 비록 몸은 너무 고되고, 힘들지만 그 어떤 시간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단다. 나의 삶에서 신이 주신 가장 축복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지.


아직 초보 엄마인 나는, 심쿵이가 이런 시간을 겪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임신 기간 동안 아파도 먹을 수 있는 약이 거의 없었고, 너무나 불편했고, 아기를 낳는 일은 너무도 큰 고통을 견뎌야 하는 일이었거든. 또 신생아를 돌보는 일은 몸과 마음이 모두 아기에게 묶여 있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었어. 행복했지만 또한 고통스러웠기에 내 딸은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생긴단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 삶에서 가장 큰 행복을 준 너를 보며 고통을 겪어 내고 서야 비로소 행복이 찾아오는 것이라면 심쿵이도 이러한 큰 행복을 맛보는 것이 좋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는구나.


할머니는 엄마를 스물다섯 살에 낳았고, 엄마는 심쿵이를 마흔한 살에 낳았어. 할머니가 심쿵이를 안아주시는 모습을 볼 때면 할머니는 심쿵이를 돌봐주시려고 오실 수가 있었는데 엄마는 심쿵이가 아기를 낳을 때쯤에 나이가 너무 많아서 손주를 안아줄 수 없는 것은 아닐까, 나는 심쿵이에게 내가 엄마로부터 받은 사랑을 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어.


심쿵이가 기침이라도 한 번 할 때면 엄마는 가슴이 철렁해. 심장이 바닥에 뚝 떨어지는 느낌이야. 내가 대신 아프고 싶다고 간절히 기도하게 되는 엄마의 마음을 이제야 깨달았단다. 엄마는 어린 시절에 잔병치레도 많고, 입원도 했었어. 종교도 없는 할머니가 엄마가 자는 동안 간절히 기도하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아.


아기가 아프다는 것은 세상이 다 무너지는 것 같은 고통이지만 아기가 깨어 있는 동안에는 강한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 엄마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 엄마는 아기가 빨리 낫도록 아기를 꽉 잡고 먹기 싫어하는 약을 억지로 먹여야 하더라. 심쿵이가 커서 엄마의 마음을 알아줄지 잘 모르겠지만 몰라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어. 엄마는 그저 심쿵이가 아프지 않으면 좋겠어.


엄마가 결혼을 하고, 심쿵이를 임신하고, 낳고 하는 동안에 전 세계는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 때문에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어. 엄마는 마스크를 쓰고 진통을 해야 했는데 숨 쉬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어. 할머니는 혹여 심쿵이에게 바이러스 같은 것이 옮을까 봐 심쿵이를 보러 올 때면 늘 마스크를 하고 오셔. 할머니는 엄마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신 좋은 엄마이기도 했는데 심쿵이에게도 좋은 할머니가 되어 주셨네.


잠깐 일을 쉬고 심쿵이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이 시간에 할머니도 함께 해주셔서 참 감사해. 1년이 그리 길지 않을 시간인지도 모르지만 심쿵이가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그리고 엄마도 엄마의 마음을 조금씩 배워갈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야. 그러나 여전히 엄마는 할머니에게 많은 것을 의지해. 엄마도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엄마의 엄마에게 잘하고 싶은데 엄마에게는 그저 마음을 의지하게 되는가 봐. 엄마는 참 철이 없는 딸이네.


심쿵이가 아주 컸을 때, 엄마가 문득문득 외할머니를 그리워한다면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지 하고 생각해 주면 좋겠구나.


심쿵아, 엄마도 엄마가 있단다.

엄마에게는 참 좋은 엄마가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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