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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우 Dec 24. 2023

그 해 겨울, 나는 엄마가 되었다.

열세 시간의 진통 끝에 엄마가 되었다.

죽을 것처럼 아팠고, 죽을힘을 다해 힘을 주었다.

아기 머리가 나왔으니 이제 내게 맡기라는 원장님의 목소리에 살았구나 싶었다.

뭔가 몸에서 크고 부드러운 것이 흘러나오는 느낌이 들었고 이내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입과 코에서 양수를 빼내고, 아빠와 간호사 선생님이 아기를 가볍게 목욕시킨 후, 내 가슴 위에 아주 작은 아기를 안겨주었다.


이렇게 힘들게 낳았는데 내가 아기를 낳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의 눈빛에서 아기에게 무언가 말을 해야 한다는 무언의 신호를 읽었다.

“심쿵아, 고생했어. 이렇게 엄마 아빠를 만나러 와주어서 고마워…“

아기가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안정감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두서없이 말하고 있었다.

너무 정신이 없었던 아빠는 분만 내내 녹음하던 것을 꺼서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정확한 내용은 아무도 기억을 못 한다.

그래도 심쿵이가 내 목소리를 듣고 울음을 그쳤으니 되었다.


입원실에서 회복을 하면서 그저 아프기만 했다.

신생아실에 가서 아기를 보면서도 내가 아기를 낳은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빠를 너무 닮아서 누가 봐도 우리 아기였는데 조금 어색했다.

낳자마자 막 내 아기구나 하고 뭉클하고 눈물 흘리고 그러던데 내게 그런 감성은 없나 보다.


내가 엄마가 되었다고 처음 느낀 것은 아기를 낳았을 때가 아니라 처음 젖을 물렸을 때였다.

병원에서 아직 젖이 나오지 않지만 그냥 젖을 물려주라고 했다.

아주 작은 아기는 힘이 없어 잘 빨지 못하지만 내내 온몸에 힘을 주며 젖을 빨았다.

그런 아기를 보며 비로소 내가 엄마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열 달의 준비 기간이 있지만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다.

출산 휴가 이후에도 집에서 재택근무를 했고, 겨우 생기부를 마감한 후에 아기가 나오면 큰일이라며 손수건부터 각종 아기의 옷과 이불을 빨고 널기 시작했다.

출산 가방이 완성된 것은 예정일을 코앞에 두고였다.

어쩐지 빨리 나오지 않을 것 같다며 여유를 부렸고, 아기는 예정일보다 5일이나 뒤에 나왔다.

아기를 낳는 것이 무척 두려웠는데 예정일이 지나니 조바심이 나고 몸이 너무 무거워 이제는 얼른 나왔으면 싶었다.

아기가 더 크지 않아서 유도 분만을 결정하고, 유도 분만을 하기로 한 날 새벽부터 가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심쿵이는 그날 나오기로 했나 보다.

(케이크를 따로따로 먹고 싶은) 엄마의 바람대로 크리스마스를 약간 피해서, 병원 마사지를 받을 수 있도록 평일에!


분만실에서 한가운데에 있었는데 양쪽 모두에서 산모들이 소리를 계속 지르며 무통을 빨리 놓아달라고 했다.

비명 소리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연습했던 라마즈 호흡을 계속했다.

연습은 중요하다.

긴박한 순간에는 생각보다 훈련한 것이 먼저 나온다.

라마즈 호흡은 도움이 많이 된다!


양수가 터지고 3cm 정도 열리고 한 시간쯤 뒤에 숨이 가빠오며 참기 힘든 통증이 몰려왔다.

소리를 지르면 힘이 빠질까 봐 라마즈 호흡을 했는데 “으으윽”하는 소리가 호흡과 함께 흘러나왔다.

수간호사 선생님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며 무통 주사를 맞겠냐고 물었다.

아직 4cm가 안 됐지만 고개를 겨우 끄덕였다.

그리고 한 시간 만에 6cm까지 진행되었다.

하마터면 무통을 못 맞을 뻔했다.

무통 주사의 “무통”은 거짓말이었다.

아프다.

주사 맞아도 고통스럽다.

“통증 감소 주사” 정도로 별명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제때에 맞을 수 있어 정말 감사하며..

그리고 한 시간 만에 자궁 경부가 거의 다 열려 가족 분만실로 들어갔다.


눈물이 많은 우리 남편은 진통과 분만 과정에서 울지 않았다.

내가 힘을 잘 줄 수 있도록 유튜브에서 본 남편의 도와주는 자세를 성실히 하며 힘을 내라거나 할 수 있다거나 하는 아무 말이나 뱉고 있었다.

아마 무슨 말을 하는지 정신없는 채로 눈물을 참고 뭐라도 하기 위해 하는 말이리라…

남편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한 채로 진통과 분만을 해야 했다.

엄마가 이렇게 힘들었다고 아기를 낳으면 꼭 말해주려고 했는데 너무 작은 아기를 보니 이 아기가 그 좁은 산도를 나오려고 얼마나 고생했을까 싶었다.

고마워. 고마워.


모두가 나에게 순산이라고 했다.

열세 시간인가 열네 시간의 진통 끝에 자연분만을 하느라 나는 죽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순조로운 출산인 거라고 했다.

다른 엄마들은 아기를 어떻게 낳은 것일까?

엄마가 간절히 보고 싶었다.

코로나 때문에 친정 엄마를 병원부터 조리원에 있는 보름 가량을 볼 수가 없을 예정이었다.

나를 이렇게 낳았을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그 해 겨울, 아기가 태어나면서, 엄마로 태어났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그 전의 내가 죽고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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