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다닐 때는 한참 도산에 빠져 지냈는데..
(논문은 너무 많아서 주제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좋아하는 사람을 주제로 써야 하는 것 같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연구하는 것이 몹시 어렵다.)
요즘은 도산보다 이혜련 여사에게 마음이 많이 간다.
독립운동가의 아내들은 무슨 마음으로 그 시간을 견디며 홀로 아이를 키웠을까.
이제 나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희생하겠다는 그 편지들에 그들의 아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또 홀로 독립운동을 했을까.
그냥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했을까?
조국의 독립...
그러니까 지금 결과를 알고 보면 당연히 온 독립이 대체 그들에게 정말 올 거라는 희망은 대체 무엇이 주었는지 알 수가 없다.
혹 희망이 없었다면 정말이지 그 길을 어찌 걸었을까.
한국을 떠나 살았으니 마음도 떠날 수도 있었을 것인데 무슨 믿음으로 임시정부나 단체들에 돈을 모아 보냈을까.
미국에서, 쿠바에서...
아이들을 맡기고 목숨을 걸었던 리추악 같은 여성들은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이해할 수가 있을까.
동지들에게 아이를 맡긴다고?
그러고 부부가 다 죽는다고?
간장 없는 날을 매주 지켰다고?
나이가 드니 더더욱 그 마음이 어렵고 무겁다.
아기가 생기니 그 큰 뜻이 더욱 고귀하고 한편 안타깝다.
이혜련 여사의 이야기를 극으로 만들어 연기한 적이 있었다.
별로 큰 호응은 없었다.
아기를 낳고 나서 그 연기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아마도 이 여사는 더욱 강인한 사람이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창호의 죽음은 삶이 무너져내리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독립운동하러 가서 돌아오지 못해 아버지의 얼굴도 보지 못한 막내의 얼굴을 보는 그 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지키고, 지역 여성들을 격려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더욱 힘겹기 내디뎠던 그 발을,
그때의 나는 몰랐던 것 같다.
(지금도 그 고귀한 뜻을 다 알 수 없다. 다만 그 힘들었을 마음을 아주 조금은 알겠다.)
좋은 시절에 태어났으니 더 감사해야겠다.
타국의, 타민족의 어려움에 공감해야겠다.
오늘의 기도 제목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주님, 그들을 지키소서.